책소개
‘박학한 무지’의 깨달음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속성들마저 절대적인 단일성 안에 포용하는 신을 알아보는 일이 신학에서 중요한 과제였다. 쿠자누스 또한 이슬람, 동방·서방 교회 등 다양한 종파 및 교파로 갈라선 ‘교회의 일치’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1437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다른 종교인들과 대담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인간이 알 수 있는 진리를 능가해,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바를 알아듣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그리고 그 체험을 ≪박학한 무지≫에 요약해 놓는다.
최대의 지식=최소의 지식
≪박학한 무지≫는 인간에게 최대의 지식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쿠자누스는 시작부터 이미 결론을 내렸다. 인간에게 최대의 지식은 결과적으로 최소의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세 단계의 논증을 펼친다. 가장 먼저 검토하는 측면은 통상적으로 가장 명료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수학·기하학적 방식이다. 그다음으로는 가장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의 지식으로 간주하는 자연학·천문학적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삶의 완성 및 구원과 직결된 지식으로서 강생(降生)한 신 예수 그리스도, 곧 종교·신학적 방식을 통해 최대의 참된 지식을 검토한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를 바라보는 두 시선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는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팔켄베르크 및 카시러 등의 평가다. 그들은 쿠자누스가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를 여는 길목에서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토대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다른 하나는 빌페르트, 슈탈마흐, 자콘 등의 평가다. 그들은 쿠자누스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 현실태’ 이론을 과감하게 확장한 모험적인 사상가로 내다보았다. 순수 현실태로서 절대자[神]를 고려하는 그의 태도는 분명 현실태와 가능태로 구분되는 만물의 처지를 초월한다는 점에서도 근대주의적 사고방식이 유보하거나 포기한 길이다.
200자평
‘박학’과 ‘무지’라는 모순된 언표의 결합 안에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이 깨칠 수 있는 최대의 ‘지(知)’란 무엇인가. 진리에 닿기 위해 끝까지 그를 좇다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최대의 ‘지(知)’는 결국 ‘무지(無知)’였다.
지은이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1401년 독일 모젤 강 유역의 쿠에스(Kues)에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당시 교양 과정인 자유 학예(artes liberales: 문법·수사학·논리학·대수학·기하학·음학·천문학)를 이수하고, 파도바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Doctor decretorum)를 받았으며, 쾰른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431년에 개회한 바젤 공의회의 신앙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어 다양한 종교 및 종파의 신앙고백 형식의 일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 따라 ≪공동체의 친밀성(De usu communionis)≫, ≪교회의 일치(De concordantia catholica)≫, ≪박학한 무지(De docta ignorantia)≫, ≪가늠에 관하여(De conecturis)≫, ≪가려 계신 하느님(De Deo abscondito)≫, ≪하느님을 찾아서(De quaerendo Deum)≫, ≪하느님의 자녀-됨(De filiatione Dei)≫, ≪성부께서 비추신 빛(De dato patris luminum)≫ 등을 집필했다.
1450∼1455년에는 교황 사절(Delegatus apostolicus) 직분을 겸하면서 독일과 보헤미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지역 분쟁을 해결하는 데 공헌했다. 1464년 8월 11일 교황 비오 2세의 명에 따라 터키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고자 베네치아로 가던 중 산악 도시 토디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그가 첫 본당을 맡았던 빈콜리의 성 베드로 쇠사슬 성당에 안치되었고, 뒤에 그의 심장은 그가 생전(1458년)에 고향 쿠에스에 봉헌했던 성 니콜라우스 병원의 부속 소성당으로 이전되었다.
옮긴이
조규홍은 독일 밤베르크에 있는 오토ᐨ프리드리히 대학교(Otto-Friedrich-Uni.)에서 ≪영원의 모상으로서 시간(Zeit als Abbild der Ewigkeit): 플로티노스의 ‘영원과 시간에 관하여(≪Enn.≫ III 7)’ 해제 및 번역≫(Peter Lang, 1999)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간과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철학에 발을 들여놓았던 만큼 연구는 그와 관련된 주제를 맴돈다.
저서로는 ≪시간과 영원 사이의 인간존재≫(성바오로, 2002), ≪플로티노스: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살림, 2006)가 있으며, 신학과 철학 번역서로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하느님 나라≫(공역, 가톨릭, 2002), ≪다른 것이 아닌 것: 존재 및 인식의 원리≫(나남, 2007), ≪신약성경신학≫(전 4권, 공역, 가톨릭, 2007∼2015), ≪플로티노스의 중심 개념: 영혼ᐨ정신ᐨ하나≫(나남, 2008), ≪플로티노스의 ‘하나’와 행복≫(누멘, 2010), ≪플라톤주의와 독일 관념론≫(누멘, 2010), ≪박학한 무지 천줄읽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사랑에 관하여: 플라톤의 ≪향연≫ 주해≫(나남, 2011), ≪플로티노스의 신비철학≫(누멘, 2011), ≪헬레니즘 철학사≫(한길사, 2011), ≪일치의 성사≫(공역, 분도, 2013), ≪박학한 무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원인론≫(대전가톨릭대학, 2013) 등이 있다.
차례
헌정사
첫 번째 권(제I권)
제1장. 어떻게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인가
제2장. 뒤따르는 진술들을 위해 앞서 밝힘[槪觀]
제3장. 가파른 진리를 알아듣기 어렵다는 사실에 관하여
제4장. 절대적인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이 그와 결합되어 있는 까닭에,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유하게 된다
제5장. ‘가장 큰 것[神]’은 단일하다
제6장. ‘가장 큰 것’은 절대적 필연성을 함축한다
제7장. 셋이자 하나인 영원성에 관하여
제8장. 영원한 낳음에 관하여
제9장. 결합의 영원한 진행 과정에 관하여
제10장. 어찌 하나-됨을 통한 삼위일체성에 대한 이해가 모든 것을 능가할까
제11장. 수학은 우리에게 신적인 다양한 것들을 납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제12장. 앞서 제시된 것 안에서 수학적인 표지들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
제13장. 가장 크고 무한한 선(線)에 대한 [우리의] 경험들에 대하여
제14장. 무한한 선이 [곧] [정]삼각형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제15장. 저 [무한한] 삼각형이 곧 원이요, 구(球)라는 사실에 대하여
제16장. 어떻게 가장 큰 직선이 [모든] 직선들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가장 큰 존재가 모든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고 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가
제17장. 이 같은 사실로부터 도출되는 가장 심오한 가르침들
제18장. 이 같은 사실로부터 우리가 존재의 분여(分與)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게 됨에 대하여
제19장. 무한한 삼각형에서 가장 큰 삼위일체성으로의 도약(跳躍)
제20장. 덧붙여 삼위일체성에 대해, 그리고 신적인 것들 안에선 사위일체성(quaternitas)이나 그 밖의 경우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하여
제21장. 하나-됨을 향한 무한한 원의 도약
제22장. 어떻게 신의 섭리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하나로 만드는지
제23장. 무한한 구(球)에 대한 생각에서 신의 실제적인 현존으로의 도약
제24장. 신의 이름과 긍정신학에 관하여
제25장. 다른 백성(이교도)들은 피조물들의 관점에서 신의 이름을 다양하게 불러 왔다
제26장. 부정신학에 관하여
두 번째 권(제II권)
서언(Prologus)
제1장. 하나의 무한한 세상(삼라만상)을 도출해 내는 일과 상관된 전제 조건들
제2장. 피조물의 ‘있음’이 첫 번째 것의 ‘있음’과 사유할 수 없을 정도로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제3장. 어떻게 해서 가장 큰 것은 모든 것을 사유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결속시키며 또 펼치는지에 대하여
제4장. 그렇듯 제한적이면서 가장 큰 것으로서 세상이 절대적인 것과 닮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제5장. 각각의 것 안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제6장. 세상의 결속과 그의 제한성의 정도에 대하여
제7장. 세상의 삼위일체성에 관하여
제8장. [순수] 가능태 또는 세상의 ‘질료’에 관하여
제9장. 세계영혼 또는 세상의 형상
제10장. 삼라만상의 영(靈)에 관하여
제11장. [세계영혼의] 움직임과 상관된 것들
제12장. 지상(地上)의 조건들에 관하여
제13장. 세상과 그 원소들의 창조에 발휘된 신의 놀라운 기술(技術)에 관하여
세 번째 권(제III권)
서언
제1장. 그보다 더 클 수 없는 것으로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제한된 가장 큰 것은 절대적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제2장. 제한적인 ‘가장 큰 것’과 절대적인 ‘가장 큰 것’ 사이의 관계는 피조물 전체와 창조주 사이의 관계와 비교가 된다
제3장. 어떻게 유독 인간 본성 안에 그와 같은 ‘가장 큰 것’이 훨씬 더 존재 가능한가
제4장. 어떻게 복되신 예수님은 신이면서 인간이신지
제5장. 어떻게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는가
제6장.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신비
제7장. 부활의 신비
제8장. 죽은 이들의 맏이로서 승천하신 그리스도
제9장.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심판관이신 그리스도
제10장. 심판관의 판결문에 관하여
제11장. 신앙의 신비
제12장. 교회에 관하여
존경하올 율리아누스 추기경께 드리는 저자의 편지
찾아보기
참고 문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만일 그대가 낱말들을 전이시켜 이해하면서 자신을 [문자적] 표지에서 진리로 들어 올린다면, 그대를 어리석게 내버려 두지 않는 그 무엇이 기막힌 쾌감을 체험하도록 안내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 길을 따라 박학한 무지를 통해 계속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57쪽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항상 죽은 자로 남아 있으셨거나 또한 그분이 결코 죽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어떻게 사멸하는 인간이 자신의 인성을 가지고 불멸성으로 뛰어넘어 갔단 말인가? 만일 그분이 죽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아직 죽지 않은 사멸할 자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고로 그분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사멸 가능성에서 해방해야만 했다.
-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