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을 불리고자 하는 큰아들 철과 성품이 경박한 처남 사달, 부인 김 여사는 한빈 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돈을 받고 부정 입학을 중개한다. 집을 양실로 꾸미겠다는 김 여사의 속물근성과 부정 입학을 해서라도 명문대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학생의 시도는 산업화가 본격화하던 시기 윤리 규범을 벗어나 다양하게 분출되던 욕망이 만들어 낸 그림자다.
사회 비판적이며 풍자적이면서도 희극적인 구성을 통해 재미를 더했다. 김 여사와 사달 등의 인물들은 부정을 저지르지만 다소 모자란 인물로 희화화했으며, 한빈 교수 또한 지나치게 올곧은 성품 때문에 오히려 어리석은 인물처럼 비친다. 하지만 다양한 사건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비극적인 색채가 짙다. 한빈 교수는 부인이 기획한 비리 건 때문에 불명예를 안게 되며, 부잣집에 시집을 가기로 한 막내딸 미정은 미국 유학에서 실성한 상태로 돌아온다. 이처럼 초반에는 평화롭던 한빈의 가정이 파탄 나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속물근성을 폭로하고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창출한다. 1966년 국립극장에서 극단 광장이 이진순 연출로 공연했다.
200자평
4막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연극은 한빈 교수의 사택을 배경으로 그 가족을 통해 당대 만연했던 허영과 비리, 출세주의를 풍자한다. 청렴하고 올곧은 심성으로 알려진 교수 한빈의 가정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당시 사회 풍조를 통해 보여 준다.
지은이
고동율의 본명은 양한석(梁翰錫)이다. 1929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뒤에 출생지를 필명으로 삼았다. 1954년 관동대학 상학과를 졸업한 뒤 속초와 춘천 등지에서 국어·미술 교사를 지냈다. 1965년 ≪경향신문≫에 희곡 <통나무다리>가 가작 입선, 1966년 같은 지면에 희곡 <동의 서>가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6년 극단 광장 동인으로 활동하며 1966년 <인간부결>, 1968년 <다시 뵙겠습니다> 등을 공연했다. 1968년 12월 제10회 강원도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70년 문협 강원도지부장에 피선되고, 1970년 극단 사계(四季)를 조직하는 등 왕성한 연극 활동을 펼쳤다. 1972년 타계했다. 1990년에 전 작품을 묶은 ≪고동율 희곡 전집≫(1990)을 출간했다. 대표작으로 <혼성>, <오똑이의 욕망>, <다시 뵙겠습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