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민족 수난사를 남성이 당하는 상해와 죽음, 여성이 당하는 치욕으로 형상화했다. 간난 노파는 제대를 앞둔 큰손자 원식과 빨치산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은손자 만식을 기다리지만 원식은 실명해서 돌아오고 만식은 소식이 없다. 게다가 원식의 아내 순덕은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에게 겁간당한 뒤 자살한다. 극 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간난 노파의 남편은 3·1 만세 운동으로 투옥되고 큰아들은 북해도 탄광으로 징용 갔다가 죽었으며, 간난 노파는 남편 면회를 갔다가 일본 헌병에게 가슴을 헤쳐 보여야 했던 전사가 드러난다. 둘째 아들 창보의 아내 역시 해방 후 남하하다가 맞닥뜨린 러시아군에게 겁간을 당한 사실이 밝혀진다. 간난 노파는 남편과 아들이 부재한 가운데 억척스럽게 집안을 지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데, 그녀의 극성스러운 성미와 강인한 생명력은 숱한 수난에도 집안을 유지하는 힘인 동시에 겁간당한 창보의 아내와 순덕을 자살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의 치욕을 부정하려는 간난 노파의 태도는 아내와 순덕을 포용하려는 창보의 태도와 대별되며 과거 수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1971년 ≪연극평론≫ 봄 호에 실린 뒤 같은 해 9월 임영웅 연출로 국립극단이 공연했다. 제8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작품상과 희곡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수난사를 한 여인의 삶으로 집약하고, 그녀를 통해 수난에도 좌절하지 않는 의지를 형상화한 3막 4장 희곡이다.
지은이
노경식은 1938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962년 경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 개설된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1965년에 희곡 <철새>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역사적 질곡 속에서 민중의 애환을 다룬 작품과 역사적 인물과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창작했으며, 작품에서 호남 방언을 탁월하게 구사해 토속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대표작으로는 <달집>(1971), <징비록>(1975), <흑하>(1978), <소작지>(1979), <정읍사>(1982), <하늘만큼 먼 나라>(1985), <징게맹게 너른들>(뮤지컬, 1994), <서울 가는 길>(1995), <천년(千年)의 바람>(1999), <찬란한 슬픔>(2002), <반민특위(反民特委)>(2005), <두 영웅>(2007) 등이 있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세 차례 수상했으며, 한국연극예술상(1983), 서울연극제 대상(1985), 동아연극상 대상(1989), 대산문학상(1999), 동랑유치진연극상(2003), 한국희곡문학상 대상(2005), 서울특별시문화상(2006),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대상(2009), 대한민국예술원상(2012)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연극협회,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이자 차범석연극재단, 사명당기념사업회 이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이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제1막
제2막
제3막
<달집>은
노경식은
책속으로
간난: 지지리 니년도 복이 없는 년이다! 손아랫것이 어른 앞에서, 요렇게 액사헌 꼴을 몬첨 뵈는 벱이 아니어. 요 배운 데 없고 인정머리 없는 것. 요 할미가 너헌테 죽으라는 말은 안 헸다? 할미가 고런 말을 헸으먼 언제 그렜다고 당장 말헤 봐라. 기왕 죽을라먼 느그 친정 식구들헌테나 가서 죽어야제. 그레 송장 치울라먼 비용은 안 드는 줄 알았드냐. 죽는 사람이 업고 지고 가냐고 허지만, 고레도 들어갈 것은 다 든다. 널[棺]도 사들이고, 내다 파묻을라먼 상두꾼들 술도 받아야 허는 벱이어. 고건 죄다 돈 아니고 흙을 퍼서 준다드냐? (사이) 집안에 큰 초상이 일어났으먼, 창보 요놈도 싸게싸게 집에 돌아와야제. 인간이 늙어도 헛나이를 묵었당깨. 아가, 노망이 들었단깨로. 무신 놈의 아가 해찰이 요렇코롬 심허단당가. 요놈 들어오기만 해 봐라. 다리 몽뎅이를 뿐질러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