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등장인물들은 아버지, 아들, 며느리, 형 등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쓰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른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아버지는 면도를 하다 갑작스레 아들에게 자살을 예고하고, 아들은 이 말을 듣고도 태연하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며느리는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며, 시아버지 앞에서 실언을 하고도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매달린 채로 간간히 자신을 살려 달라 말하면서 고통을 호소한다. 만성 변비에 시달리는 둘째 아들은 용변을 보기 위해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 인상을 구기는 것이 일상의 전부이며, 혼자서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집에 들른 형은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아내와 함께 있던 남자에게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 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한다.
<너무 놀라지 마라>는 끔찍하고 놀라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라는 제목처럼 냉소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인물들은 어렸을 때 기억이나 SF영화 같은 환상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곳곳에 희비극적 요소를 배치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 준다.
2009년 산울림 소극장에서 박근형 연출로 초연했다. 2009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과 여자연기상을, 제46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의 해체를 무덤덤하면서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려 냄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관계와 소통 부재, 고독을 성찰하도록 유도한 작품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불편함을 자아내면서도 곧 무너질 것 같은 한 가정에 연민이 느껴지도록 했다.
지은이
박근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6년 극단 76에 배우로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89년 <습관의 힘>을 연출해 연출가로도 데뷔했다. 1999년 <청춘예찬>으로 그해 모든 연극상을 휩쓸면서 연출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비일상적 상황에서 일상을 포착한 작품을 다수 창작했다. 우울하면서도 희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둡지만은 않은 연극의 분위기는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특징이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자 극단 골목길 대표다. 대표작으로는 <쥐>(1998), <청춘예찬>(1999), <경숙이 경숙 아버지>(2006), <너무 놀라지 마라>(2009)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너무 놀라지 마라
<너무 놀라지 마라>는
박근형은
책속으로
아버지: 친구가 있는데… 죽었어
나 기원 차렸을 때, 위층에서 당구장 하던 친구야
나 몰래 네 엄마한테 도박돈 꿔 주고
그 핑계 삼아 캬바레 같이 다니고
벚꽃 구경도 가고
나중에 네 엄마가 고생 많았지
돈 대신 몸으로 빚 때웠나 보더라
둘째: …
아버지: 그 친구 죽었어 베란다에서
빨랫줄에 목매고
우리 엄마 그리워서요?
아버지: 딸년 덕에 말년에 호강하고 산다고
맥주깨나 사고 다녔는데
“너무 놀라지 마라” 이러구 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