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백두산>은 ‘김 대장’이라는 ‘민중적 영웅’을 중심으로 항일 무장 투쟁의 승리와 해방의 의지를 역설하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 해방의 열망을 새 조국 건설이라는 과업과 연계시켜 당대의 실천적 각성을 촉구하는 암묵적 프로파간다의 역할까지 담보함으로써 해방 이후 북한 사회 건설을 추동하는 문학적 기폭제로서 기능해 왔다.
하지만 <백두산>이 도식적인 김일성 우상화나 생경한 미적 형상화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풍부한 이야기성과 웅장한 스케일, 장엄한 비장미를 담보하면서 장편 서사시로서의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한국 문학사 안에서 흔치 않은 ‘항일 무장 투쟁’이라는 소재를 ‘백두산’, ‘압록강’ 등의 민족적 표상을 통해 극적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을 편향적으로 북한 문학의 자장 안에 놓기보다는 남북한 문학사의 전체적인 조망 아래 그 다각적인 의미망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백두산>은 크게 머리시와 본시(本詩) 7장(총 46절), 그리고 맺음시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시와 맺음시는 해방의 감격과 ‘백두산’, ‘천지’, ‘백두산 호랑이’로 대변되는 해방 조국의 견결하고 위대한 민족적 형상을 격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새 조국 건설의 의지를 만방에 선포한다. <백두산>이 창작된 1947년을 전후해서 북한에서는 토지 개혁과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기반으로 한 새 조국 건설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북한 주민들의 사상 개조와 노동력 동원 등을 목적으로 한 대중적 문화교양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일환으로 문학가들 또한 당의 문예 정책인 ‘혁명적 낭만주의’, ‘고상한 리얼리즘론’ 등의 창작 방법에 기초해 전위적이고 선동적인 작품 창작을 추동했던바, <백두산>의 창작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 재소 고려인 시인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식과 공산주의적 세계관 및 항일 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던 조기천의 사상적 배경은 조소 친선을 근간으로 새 조국(북한)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적극적 요인이 된다.
이러한 해방 조국의 새로운 지향점은 본시의 ‘항일 무장 투쟁’ 서사와 조우하면서 그 역사적 정당성 및 진정성을 획득한다. 즉 ‘항일 무장 투쟁’을 통해 민족 해방의 활로를 개척했던 김 대장, 철호, 꽃분, 영남 등의 항일 전사들은 해방 이후 새 조국 건설의 대과업을 앞장서 이끌어 갈 민중적 영웅의 전범이자 혁명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새 조국 건설에 역사적 필연성 및 정당성을 부여한다. ‘김 대장’은 항일 빨치산의 지도자로서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품성, 지사적 풍모, 무장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략과 용맹성 등을 겸비한 ‘영웅적 성격’의 전형을 보여 주며, ‘철호’는 김 대장의 비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정치 공작원으로서 H시 야습 작전의 격전지에서 최후까지 맞서다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는 혁명 전사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 또한 ‘꽃분’은 철호의 비밀공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조력하면서 동지적 연정을 혁명 과업의 수행으로 승화시켜 나가며 ‘영남’은 일본 수비대의 총격으로 죽어 가면서도 “끝까지 싸우라!/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짖는 애국적 소년 전사의 형상을 극적으로 재현한다. 이처럼 <백두산>의 주요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각각의 인물들은 고상한 도덕적 품격 및 시련과 고통에 의연히 맞서는 불요불굴의 의지, 대담하고 진취적인 기상과 헌신적 동지애를 겸비한 민중적 영웅상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해방 이후 새 조국 건설에 헌신적으로 동참함으로써 해방 이전과 이후를 매개하면서 해방 조국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연속적 혁명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200자평
조기천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1947)은 북한 최초의 서사시이자, 북한 문학사 안에서 항일 혁명 문학의 모범적 전형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북한 문학의 사상적·미학적 표본으로서 각광받아 온 작품이다. 해방 이후 북한 사회 건설을 추동하는 문학적 기폭제로서 기능해 왔다.
지은이
조기천(趙基天, 1913∼1951)은 1913년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 촌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조기천의 출생지는 함경북도 회령으로,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70년 카자흐스탄 알마아따 작가 출판사에서 출판된 ≪시월의 해빛≫에 조기천의 약력이 1913년 스파스크 출생으로 명기되어 있고, 여러 증언 및 자료 등을 토대로 볼 때도 그의 출생지는 연해주 스파스크 촌인 것으로 확인된다.
17세에 스파스크 촌의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인 1930년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 조선사범전문학교에 입학해 1933년에 졸업했으며, 이 시기 ≪선봉(先鋒)≫ 신문에 첫 시 <파리꼼무나>(1930)와 더불어 <공격대원에게>(1931), <야외연습>(1932)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38년 7월 러시아 중(中)시베리아 옴스크 고리키 사범대학 러시아 문학부를 졸업하고 그해 9월부터 2년간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 시 조선사범대학 문학부에서 세계문학사를 강의했으며, 1939년 8월 모스크바 종합대학 대학원에 파견되었으나 조선인은 일본 간첩이 될 수 있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크슬오르다 시로 되돌아온다.
이후 대학의 교편 생활을 접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중앙아시아 고려인 신문인 ≪레닌기치≫에서 기자,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소련군에 지원 입대해 소련군 장교로 북한에 들어오게 되며, 소련군정 기관지인 ≪조선신문≫에서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부터 문예총 작가 동맹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된다.
1946년 <두만강>을 필두로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북한의 토지개혁을 소재로 한 <땅의 노래>(1946), 항일 무장 투쟁을 다룬 <백두산>(1947)을 발표하면서 북한 문단에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밖에도 <생의 노래>(1947), <휘파람>(1947), <네거리에서>(1947), <우리의 길>(1947), <항쟁의 려수>(1948), <조선은 싸운다>(1951)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51년 이기영, 이태준, 임화, 한설야 등 당시 북한 문단의 최고 핵심 작가들과 함께 북한 최고의 훈장인 국기훈장 제2급을 수상했으며 195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51년 7월 31일 밤 12시경 미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엮은이
윤송아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재일조선인 문학의 주체 서사 연구-가족·신체·민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8월의 저편≫에 나타난 ‘일본군 성노예’ 재현의 의미>, <경계를 와해하는 ‘무국적자’의 레토릭-金城一紀, ≪GO≫를 중심으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재일코리안 문학과 조국≫(공저), ≪내가 처음 읽는 페미니즘 소설≫(편저), ≪현경준 작품집≫(편저), ≪오유권 작품집≫(편저) 등이 있다.
차례
머리시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맺음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가마 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
원천이 없거니 —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 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 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가지 한
빨찌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을 왜놈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52쪽
철호는 물 얻으러 달려가고
소나무 밑 이름 모를 봄풀 우에
반듯이 누워 있는 소년 —
그 크다란 불타는 두 눈 부릅뜨고
검푸른 하늘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두 주먹 높이 들며 —
“끝까지 싸우라!
조선 독립 만세!”
높이 부르짖었다.
이렇게 총에 맞은 갈매기
바위에 떨어져 부닥쳐도
꺾어진 나래를 퍼덕이며
생과 투쟁에 부른다,
그렇게 마지막 부르짖은 소년
다시 스르르 모으로 쓰러진다.
입술로 두 줄기 피 흘러서
풀잎에 맺힌 밤이슬에 섞인다…
-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