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
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00자평
1985년 등단한 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오봉옥 시인의 육필 시집.
표제시 <나를 던지는 동안>을 비롯한 44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
지은이
오봉옥
1961/ 광주 출생
1985/ ≪16인 신작시집≫(창작과비평사)에 <내 울타리 안에서> 외
7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
학과 교수, ≪문학의 오늘≫ 발행인.
시집
≪지리산 갈대꽃≫
≪붉은산 검은피(상, 하)≫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산문집
≪난 월급받는 시인을 꿈꾼다≫
동화집
≪서울에 온 어린왕자(상, 하)≫
비평집
≪시와 시조의 공과 색≫
≪서정주 다시 읽기≫
≪김수영을 읽는다≫
차례
5 시인의 말
6 공놀이
10 거미와 이슬
16 꽃
20 나를 던지는 동안
26 임이길래
28 할머니
32 입술이 붉은 열여섯
36 술
38 구라실 점동이 1
40 발을 씻어 주며
44 불륜
46 마지막 지하철
48 오늘의 노래
56 물과 물고기
58 옥밥
60 전방
62 나 같은 것들
66 수산 시장
70 정다방 김 양 1
72 길
74 우리 집 앞 강
78 첫눈 1
80 똥
82 아버지 1
86 아버지 2
90 아버지 3
100 아버지 4
102 아버지 5
104 아버지 6
110 아버지 7
114 아버지 8
116 아버지 9
120 아버지 10
124 싸움질
128 반란군 뫼똥
130 감꽃
132 제사
134 반도의 아버지들
138 말 없는 역사
146 다시 태어나
150 반도의 별
152 강물에 띄운 검정 고무신
158 이사
162 길
165 시인 연보
책속으로
나를 던지는 동안
1
그대 앞에서 눈발로 흩날린다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요
혼자서 가만히 불러본다는 게,
몰래몰래 훔쳐본다는 게
얼마나 또 달뜬 일인지요
그대만이 나를 축제로 이끌 수 있습니다
2
그대가 있어 내 운명의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그댈 보았기에 거센 바람을
거슬러 가려 했습니다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도 참고
내 가진 모든 거 버리고 뜨겁게
뜨겁게 흩날리려 했습니다
그대의 옷깃에 머물 수 있다면
흔적도 없이 스러져 가도 좋았습니다
3
그러나 나에겐 발이 없습니다
그대에게 어찌 발을 떼겠습니까
혹여 그대가 흔들린다면,
마음 졸인다면,
그대마저 아프게 된다면 그건
하늘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나에겐 발이 없습니다
나를 짓밟는 발이 있을 뿐
4
그대의 발밑에서 그저 사그라지는 순간에도 난
젖은 눈을 돌리렵니다 혹 반짝이는
눈물이 그대의 가슴을 가르며 가 박힐지 모르니까요
그 눈물알갱이가 그대를 또
오래오래 서성이게 할지 모르니까요
먼 훗날 그대 앞에는 공기 방울보다 가벼운
눈발이 흩날릴 것입니다
모르지요, 그땐 그대가 순명의 자세로 서서
나를 만지게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