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라마르크는 또한 무척추동물 분류학자, 고생물학의 창시자, 생물학(biologie)의 초안자, 현대적 의미의 화석(fossile) 용어의 고안자, 진화론(transformism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생물학사에서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생리학이나 해부학 등의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까닭은?
먼저 기린의 목을 예로 들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설명해 보자. 높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먹기에는 목이 긴 기린이 유리하다. 따라서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게 되고, 그렇지 못한 기린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환경에 의해 생물종의 진화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이번에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이론을 보자. 기린이 높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는 자연히 목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높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하면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생물종이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진화론은 어느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여전히 진화론 연구에 있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라마라크주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진화론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생태학의 발달과 더불어 프랑스 진화론자들에게 환경 요인이 커다란 관심으로 부각되면서 라마르크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 무렵 일부 프랑스 생물학자들은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 이론을 접목시켜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이들에게 있어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의 이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속적 진화론이라는 측면에서 양립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실제로 다윈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연속적 진화를 설명했다. 이렇게 진화론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연의 연속성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바이스만, 멘델, 더프리스와 같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된 자연의 비연속성 개념과 충돌을 빚게 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명체 진화의 전제가 되는 변이를 성의 혼합에 따르는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인 변이로 설명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생명체의 변이에 대한 설명은 점진적 변이와 돌발적 변이라는 확연히 구분되는 두 이론으로 나뉘어 수용되었다. 점진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지지하여 신라마르크주의를 형성했고, 돌발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획득형질의 비유전설을 역설하여 신다윈주의를 형성했으며, 이들 사이의 상반된 두 입장은 팽팽한 대립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200자평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과는 다른 진화론인 개체의 필요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획득형질 이론을 담고 있다. 또한 독립된 과학으로서 생물학의 기반을 잡고, 심리학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고려하고 보면, 생명에 대해 일생을 바쳐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한 사상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는 1744년 8월 1일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바장탱 르 프티에서 태어나 1829년 12월 18일 파리에서 생을 마쳤다. 몽파르나스(Montparnasse) 묘지에 잠정적 승인을 얻어 안치되었으나 1830년 혁명 당시 그의 묘소는 사라지고 말았다.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으며, 여덟 명의 자식이 있었으나 다섯 명만이 그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라마르크는 모계 혈통으로 922∼923년 프랑스 임시 국왕이었던 로베르 1세의 자손이었으며, 소귀족 계급 출신이었지만 가난했다. 식물학과 음악에 많은 관심을 지녔던 그는 파리의 은행에서 일하면서 의학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의사가 되지는 않았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만나 함께 식물을 채집하게 되며, 다른 과학에도 관심을 지니면서 특히 식물학에 집중하여 쥐시외(Bernard Jussieu)와 함께 연구했다. 일부 동료 가운데 특히 고정설(fixsme)의 지지자였던 퀴비에에 맞서야 했으며, 정치권력에도 그리 밝지 못했다. 혁명 사상을 지지했던 그의 정치적 시각은 제정기나 왕정복고 당시의 분위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결혼해서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가 택했던 직업들은 대개 명예직으로 보수가 매우 낮아서 일생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직원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라마르크, 50세, 두 차례 결혼, 여섯 자녀, 곤충, 유충, 미생물 전공의 동물학 교수.”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무척추동물학을 포함한 동물학에 전념했다.
옮긴이
이정희는 현재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여러 대학에서 과학사 관련 강의를 해왔다. 최근 논문으로 “인종연구에서 사진 이미지의 역할”(2009), “근대과학에서 시각적 재현의 의미”(2009), “근대적 생명인식에 나타난 기계의 메타포”(2008), “19세기 생물학적 조직화개념의 재조명”(2005)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우생학: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아침이슬, 2009),《동물철학》(박영률출판사, 2009),《현대생물학의 사회적 의미》(뿌리와 이파리, 2008, 공역),《이기적인 성》(웅진출판, 2006),《분자생물학, 실험과 사유의 역사》(몸과 마음, 2002, 공역),《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궁리출판사, 1999)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머리말
서론
제1부 동물들의 특성, 유연관계, 조직화, 배치, 분류, 그리고 종에 대한 자연사적 고찰
제2부 생명의 물리적 요인, 생명 존재에 요구되는 조건, 생명운동을 자극하는 힘, 생명을 지닌 신체에 부여된 기능, 그리고 신체 내에 생명이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에 대한 고찰
제3부 여러 동물들에서 관찰되는 활동을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지적 활동을 일으키는 감각의 물리적 원인에 대한 고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생명체에 작용하는 환경의 영향은 언제 어디서나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영향을 깨닫기 매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결과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감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