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당시와 구별되는 송시의 특징은 구양수(歐陽修, 1007∼1072)와 매요신(梅堯臣, 1002∼1060), 소순흠(蘇舜欽, 1008∼1048) 등이 시가 혁신 운동을 일으켜, 형식적 표현 추구에만 치우치고 사회 현실의 반영이 부족한 만당체(晩唐體) 시의 기풍을 변화시키고자 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왕안석(王安石, 1021∼1086)과 소식(蘇軾, 1036∼1101), 그리고 황정견(黃庭堅, 1045∼1105) 등의 시대에 이르러 대체로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세 사람 중, 특히 황정견을 추종하는 시인들이 많이 등장해 이들을 강서시파(江西詩派)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시단에서 세력이 대단했다. 그런데 이후, 황정견을 추종하는 강서시파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차 황정견의 본래 취지를 잘 살피지 못하고 여러 가지 폐단과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즉, 황정견 시법의 형식적인 면만 주목해 시를 지을 때 고의로 성운(聲韻)이 격률에 어긋나게 하고 말을 난삽하게 하고는 그것을 훌륭한 것으로 여겼다. 이에 시단에는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시인들이 등장했는데, 여본중(呂本中, 1084∼1145)과 증기(曾幾, 1085∼1166), 그리고 본서에서 다루는 진여의 등이 바로 이런 역할을 맡아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진여의의 시이며, 그의 시는 새로운 성취를 거두어 당시에 ‘신체(新體)’라고 불리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학사와 시론가들이 그의 시를 ‘간재체(簡齋體)’[‘간재’는 진여의의 호(號)]라고 특별히 일컫는 것도 그의 시의 독자적인 성취를 잘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송시의 역사에서 진여의 시의 위치와 특색은 다음의 몇 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로 강서시파가 시단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에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보여 주었으며, 둘째로 북송 후기에서 남송 초기에 걸친 시기의 시단을 대표하며, 셋째로 북송 후기 이후 남송 중기의 육유(陸游)와 양만리(楊萬里) 등에 이르러 강서시파와 다른 모습의 시가 대두되는 데에 선도자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진여의는 49세라는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626수의 시를 전하고 있다. 진여의의 생애는 ‘정강의 변’이 시작된 37세를 중심으로 전기(前期)와 후기(後期)의 두 시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전기(24∼36세)의 시는 251수가 남아 있으며, 후기(37∼49세) 시는 349수에 이르고 있다. 전기에는 주로 개인적인 생활 정취를 많이 다루었으며, 후기에는 시국에 대한 걱정과 신세 비탄을 노래한 시를 많이 지었다. 시의 풍격도 대체로 전기의 한담(閑淡)에서 후기에는 침울(沈鬱)로 변화했다.
문학가로서 진여의는 시뿐만 아니라 사(詞)도 잘 지어 현재 ≪무주사(無住詞)≫ 18수가 전해지며 사인(詞人)으로서도 명성이 높았지만, 문학사에서 진여의라는 작가의 이름을 분명하게 대변하는 것은 역시 시인으로서의 면모다. 시인으로서 진여의는 송시(宋詩)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唐詩)와 다른 세계를 구축하며 시단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 폐단에서 과감히 벗어나 독자적인 성취를 이루어 북송 말에서 남송 초에 이르는 시기를 대표하며 문학사에서 나름대로 지위가 확고한 시인이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진여의 시선. 당시가 뜨거운 열정의 시, 술이라면, 송시는 담담한 이성의 시, 차에 비유된다. 진여의는 이러한 송대 시가 발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황정견, 진사도와 함께 송시 삼종으로 불린다. 사회 현실과 자연을 외면하지 않고, 시법과 전고에 얽매이지 않은 그의 시는 자연스럽고도 유려하다. 청려한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담담한 가운데 그윽한 차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지은이
진여의(陳與義)는 북송과 남송의 교체기, 즉 북송이 금나라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남송이 그 뒤를 이은 시기를 살았다. 그는 북송 철종(哲宗) 원우(元祐) 5년(1090) 6월 낙양(洛陽)에서 출생했다. 휘종(徽宗) 대관(大觀) 원년(1107) 18세에 태학(太學)에 입학하고, 정화(政和) 3년(1113) 24세에 과거에 급제해 8월 개덕부 교수(開德府敎授)로 임명받으면서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정화 8년(1118) 벽옹록(辟雍錄)에 제수되었으며, 선화(宣和) 2년(1120) 모친상을 당해 여주(汝州)에 가서 지냈다. 선화 4년 다시 태학박사(太學博士)에 발탁된 이후, 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 부림랑(符林郞)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선화 6년(1124), 진류(陳留) 주세(酒稅)로 좌천을 당했다. 다음 해 12월 금나라가 남침해 휘종이 흠종(欽宗)에게 양위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듬해 정강(靖康) 원년(1126) 들어 진여의는 피난 생활을 시작하고 송나라(북송)는 결국 망하고 만다. 이후 5년에 걸친 피난 생활 끝에 월주[越州,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에서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으로 다시 벼슬 생활을 시작해, 다음 해 조정이 임안[臨安, 지금의 저장성 항저우(杭州)]으로 옮긴 이후, 7년에 걸쳐 중서사인(中書舍人) 겸 시강(侍講), 이부시랑(吏部侍郎), 예부시랑(禮部侍郞), 호주(湖州) 지주(知州), 급사중(給事中), 한림학사(翰林學士) 지제고(知制誥)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까지 이르렀다. 소흥 8년(1138) 5월, 병으로 참지정사를 그만두고 호주 지주로 갔다가 병이 심해 11월 29일 세상을 떠나니 향년 49세였다.
옮긴이
이치수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타이완(臺灣) 국립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현재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와 저서로 ≪육유 사선(陸游詞選)≫(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조자건집(曹子建集)≫(소명, 2010, 공역), ≪도연명 전집(陶淵明全集)≫(문학과지성사, 2005), ≪송시사(宋詩史)≫(역락, 2004, 공저), ≪중국시와 시인-송대편(宋代篇)≫(역락, 2004, 공저), ≪육유 시선(陸游詩選)≫(문이재, 2002), ≪중국 유맹사(中國流氓史)≫(역서, 아카넷, 2001), ≪陸游詩硏究≫(臺灣, 文史哲出版社, 1991) 등을 비롯해, <중국고전시체(中國古典詩體) 중(中) 육언절구(六言絶句)의 생성(生成), 발전(發展)과 특색(特色) 연구(硏究)>, <중국고전시가(中國古典詩歌)에 나타난 협(俠)>, <송대(宋代) 시학(詩學)의 발전(發展)과 당송시(唐宋詩) 우열논쟁(優劣論爭) 연구(硏究)>, <송대(宋代) 시학(詩學)의 전개(展開)에 있어서 시법(詩法) 문제(問題) 연구(硏究)>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주 교수의 <가을 생각>에 차운해 짓다 次韻周敎授秋懷
소와 목동의 그림에 적다 題牧牛圖
강남의 봄 江南春
바람과 비 風雨
북풍 北風
양읍으로 가는 길에 襄邑道中
세월 年華
가을비 秋雨
허도녕의 그림에 적다 題許道寧畵
장규신의 <수묵 매화>에 화운해 지은 절구 다섯 수 和張規臣水墨梅五絶
장규신의 <수묵 매화>에 화운해 지은 절구 다섯 수 和張規臣水墨梅五絶
밤비 夜雨
일이 있어 교외로 가면서 시를 지어 친구에게 보이며 以事走郊外示友
10월 十月
약졸 아우에게 부치며 스무째 숙부께 드리다 寄若拙弟兼呈二十家叔
동생과 납매를 읊은 시 절구 네 수 同家弟賦蠟梅詩得四絶句
계속 내리는 비에 적다 連雨書事
악문경의 <북원>에 차운해 次韻樂文卿北園
길에서 맞은 한식 道中寒食
중모로 가는 길에 中牟道中
중모로 가는 길에 中牟道中
청명절 淸明
청명절 淸明
봄날 春日
여름날 보진지에 모여 ‘녹음생주정(綠陰生晝靜)’ 구절로 시를 지으며 ‘정(靜)’ 자를 운으로 삼다 夏日集葆眞池上以綠陰生晝静賦詩得静字
비가 개다 雨晴
왕주사가 발운사 관리로 떠나는 것을 전송하며 送王周士赴發運司屬官
과거 고시원의 맑은 봄날 試院春晴
과거 고시원에서의 감회 試院書懷
술을 마주하고 對酒
술을 마주하고 對酒
비 雨
저녁 산보 晩步
상수를 떠나는 길에 發商水道中
등주의 서헌에서 시사를 적으며 鄧州西軒書事
등주의 서헌에서 시사를 적으며 鄧州西軒書事
봄비 春雨
시국의 일에 개탄하며 感事
정월 12일 방주 성에서 금나라 군대를 만나 남산으로 달아났다가 15일 회곡의 장씨 집에 이르러 正月十二日自房州城遇金虜至奔入南山十五日抵回谷張家
청명절 淸明
좌통로와 도연명의 <옛집에 돌아와서>의 운으로 짓다 同左通老用陶潛還舊居韻
악양루에 올라 登岳陽樓
파구에서 시국에 대한 감회를 적으며 巴丘書事
저녁에 호숫가를 걸으며 晩步湖邊
다시 악양루에 올라 비분 감개하며 시를 짓다 再登岳陽樓感慨賦詩
변방에서 지내며 居夷行
섣달 그믐날 밤 除夜
수선화를 읊다 詠水仙花五韻
수옹을 모시고 군자정에서 술을 마시는데 정자 아래에 해당화가 마침 피어 陪粹翁擧酒於君子亭亭下海棠方開
봄추위 春寒
해 질 녘 성 위에서의 생각 城上晩思
빗속에 술을 마시는데 뜰아래 해당화가 비를 맞고도 지지 않다 雨中對酒庭下海棠經雨不謝
시구를 찾으며 지은 절구 두 수 尋詩兩絶句
시구를 찾으며 지은 절구 두 수 尋詩兩絶句
윤잠이 감회를 읊은 시에 차운해 次韻尹潛感懷
악주를 떠나며 別岳州
손신도와 헤어지며 別孫信道
섣달 그믐날 밤에 잠 못 이루어 술 한잔하고 시를 지어 다음 날 대광에게 보여 주다 除夜不寐飮酒一杯明日示大光
입춘 날 비 立春日雨
비 雨
주인에게 감사하며 謝主人
봄을 슬퍼하며 傷春
산속의 서재 山齋
6월 6일 밤 六月六日夜
비를 바라보며 觀雨
빗속에 다시 해산루에서 시를 짓다 雨中再賦海山樓
강을 건너며 渡江
아침 일찍 일어나다 夙興
천경과 지로가 생각나 방문하다 懷天經智老因訪之
모란 牡丹
이른 아침에 길 떠나며 早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새로운 시 온 눈에 가득하나 제대로 마름질 못하니
새 날아가고 구름 옮겨 가다가 술잔 속에 떨어진다.
관청의 공문서는 다할 날이 없고
누대에 비바람 부니 가을이 왔음을 볼 수 있구나.
시시비비 많기도 많은데 서생은 늙어 가고
세월은 훌쩍 지나며 제비 돌아가누나.
강남의 대나무 베개 웃으며 어루만지니
한 동이 술에 우레 같은 코 고는 소리 울려 퍼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