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빙신(1900∼1999)은 바진(巴金, 1904∼2005)과 더불어 중국 현대 문학계에서 백수를 누리며 20세기의 온갖 풍상을 온몸으로 겪은, 중국이 낳은 타고난 글쟁이이자 스토리텔러다. 빙신은 시인이자 소설가, 아동문학가이며 소설가이고 학자,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녀 역시 5·4운동의 세례를 받고 창작을 시도했다. 5·4운동 당시 그녀는 애국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아울러 그녀가 목도한 각종 인생 문제를 자신의 창작 속에 반영했다. 당시 문단에서는 이러한 스타일의 소설을 ‘문제소설’이라는 범주로 묶었다. 대학 재학 중에 그녀가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평단의 주목을 끌곤 했다. 1921년에 결성된 ‘문학연구회’ 동기 작가 가운데 평론가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끈 작가가 바로 빙신이라 하겠다. 그녀가 1919년부터 1925년까지 발표한 문제소설은 대략 20여 편이 된다. 이들 소설에서는 대개 구식 가정과 사회의 불량한 기풍이나 현상을 묘사했다. 빙신은 소설 형식을 빌려 불량한 사회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이를 감화하고 개량하고자 했다. 그리고 1930년에는 그녀의 관점이 변해 사회 현실 문제로 점차 눈을 돌려 사실주의 계통의 소설을 창작했다.
중국의 초등학교 교정이나 도서관 앞에 서 있는 빙신의 동상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사랑만 있으면 모든 걸 가진다(有了愛就有了一切).” 빙신이 생전에 자주 언급했던 명언 중의 명언이라 하겠다.
200자평
‘중국현대문학의 대모’라고 불리는 빙신의 대표작들을 모았다. 1900년에 태어나 199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아 낸 작가 빙신. 그녀의 문제소설 여섯 편을 소개한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희망과 열정, 좌절과 분노를 그리고 있다.
지은이
빙신의 본명은 셰완잉(謝婉瑩)으로 1900년 10월 5일 푸젠(福建) 푸저우(福州) 룽푸잉(隆普營)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9년 5·4운동이 일어나자 빙신은 애국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여학계연합회(女學界聯合會) 선전부의 청탁을 받고 <21일 법정 심판을 들은 느낌(二十一日聽審的感想)>을 써서 8월 25일에 베이징 ≪신보(晨報)≫에 발표했다. 이어서 최초의 단편소설 <두 가정(兩個家庭)>을 써서 ‘빙신’이란 필명으로 발표했다. 대학 재학 중에도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아 당시에 ‘빙신체(冰心體)’, ‘춘수이체(春水體)’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23년 여름에 우수한 성적으로 옌징대학을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전 1921년에 중국 현대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순수문학 단체 ‘문학연구회’가 생기자, 빙신도 여기에 적극 참여해 활동하면서 이들의 기관지 ≪소설월보≫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1929년 6월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우원짜오(吳文藻, 1901∼1985) 박사와 결혼하고 베이핑여자문리학원(北平女子文理學院), 칭화대학(淸華大學)에서 가르치면서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다. 1936년 10월 1일에 빙신은 루쉰(魯迅, 1881∼1936) 등 21명과 함께 <문예계 동인들이 단결해 외국의 침략을 막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선언(文藝界同人爲團結御侮與言論自由宣言)>을 발표했고, 이후 1937년까지 남편을 따라 일본,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를 시찰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빙신은 중화예술계항적협회에 가입해 항전에 적극 참여했으며 중일전쟁 승리 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최초의 외국인 교수가 되기도 했다. 1951년 가을 미국 예일대학의 파격적인 초청을 받았으나 결국 거절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와 정부 고위급 인사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후 빙신은 1954년부터 1∼5회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대표, 5∼7회 전국정치협상회의(全國政治協商會議) 상무위원, 8∼9회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1979년에는 중국문련(中國文聯) 부주석으로 선출되고, 중국민주촉진회 부주석을 맡았으며, 1988년에는 명예주석으로 선출되었다. 1985년에 중국작가협회 고문으로 추대된 데 이어 1996년 12월에는 명예주석으로 추대되었고, 1999년 2월 28일 베이징에서 서거했다.
옮긴이
조성환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1987), 동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석사(1989)와 문학박사(1996) 학위를 받았다. 일찍이 서라벌대학 중국어과에서 전임, 조교수,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방문학자를 지냈다(2005). 지금은 천안에서 중국어문학 교육과 번역에 종사하고 있다. 그동안 만든 책으로는 편서 ≪북경과의 대화: 한국 근대 지식인의 북경 체험≫(2008), ≪경주에 가거든: 한국 근대 지식인을 통해 본 경주≫(2010), 역서 ≪중국의 최치원 연구≫(2009), ≪서복동도≫(2010), ≪압록강에서≫(2010) 등 20여 권이 있다.
차례
두 가정
이 사람만 홀로 초췌하구나
사람을 시름겹게 하는 가을비와 가을바람
조국을 떠나며
귀향
적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너희들만 국민의 한 사람이고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이야? 학생들이 나서서 애국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벌써 망했겠구나! 네 말대로라면 나는 애국 운동 하는 두 아들을 둬서 다행이구나. 너희들이 없었다면 나는 중화민국의 죄인이겠구나!”
잉전은 부친이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을 보자 천천히 다가가 한두 마디 거들려 했다.
화칭이 또 말했다.
“칭다오 사건을 말하자면, 일본이 독일의 손에서 빼앗아 왔을 때 우리 중국은 여전히 중립국의 입장이었어. 논리로 따지면 마땅히 그들에게 돌려줘야 맞지. 하물며 그들이 우리에게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했으니 모든 성의를 다한 셈이지! 지금 우리 정부에 있는 모든 자금 중 어디 그들에게 빌리지 않은 게 있더냐? 이렇게 급한 일에 서로 돕는 친구 사인데 쉽게 죄를 지어서야 되겠느냐? 보아하니 그 우정이 너희들 때문에 엉망이 됐어.”
●사랑하는 빙신!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수핑은 죽었고 나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살아 움직이는 건 너뿐이야! 나와 수핑의 책임과 희망은 모두 너한테 달렸어. 넌 노력하고 분투해야 해. 너의 기회와 지위가 얼마나 얻기 힘든 것인지 깨달아야 해. 우리의 목표가 ‘자신을 희생해서 사회에 봉사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해.
●“귀국한 지 반년이 지나니 대략의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쉬워서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의 8년간의 바람이 이렇게 짓밟히기를 원치 않았고, 만에 하나 할 만한 일이 생기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지. 반년 동안 꾹꾹 참으면서 물결을 따라 이 추악한 사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지 않으려 했어. 그런데 뜻밖에 지금은 진짜 재능과 견실한 학문을 한쪽에 내팽개치고, 기세당당한 신체를 가지고 남에게 비굴하게 알랑거리는 행위를 배워 가면서 웅대한 포부를 모두 없애 버리고 있으니. 아! 내가 중국의 젊은이라는 게, 오늘의 중국에 태어난 게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다시 일어나 앉았다. 창밖의 밝은 달빛! 뜰을 비추고 온 천지의 나팔꽃을 비추고 담 모퉁이에 완성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대나무 장막을 비추고 있었다. 작은 문은 아직 반쯤 열려 있고 지붕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었다. 메이메이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는 흥을 잃고 커튼을 친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방 뒤쪽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나뭇잎 소리도 들렸다. 그는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팔을 베고 누워… 자신의 잠옷과 침구를 보니 달빛을 받아 눈처럼 새하얗고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베개에 엎드려 울었다.
지금 달도 없고, 물도 없고, 메이메이도 없고, 대나무 장막도 없다. 전부 틀렸다. 우주 속의 적막한 비애만이 그의 어린 영혼에 가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