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1930년대 들어 일본은 침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후방 기지가 되어야 하는 조선의 치안을 강화한다. 그리고 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1930년대 후반에는 조선을 병참기지화하고, 1940년대에 이르면 완전히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구체적으로 시작되던 1934년 채만식은 <레디메이드 인생>을 발표한 뒤 2년여 동안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자신의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그다음 발표되기 시작한 소설에는 알레고리 구조와 분신의 기법 등이 새롭게 나타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양상이 된다. 알레고리와 분신의 기법을 함께 쓰는 방식으로 인해 그의 소설은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되었지만, 그 복잡한 구조로 인해 독자들은 작품의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성향은 ≪냉동어(冷凍魚)≫도 예외가 아니었다.
≪냉동어≫는 ≪인문평론≫에 1940년 4월부터 5까지 연재되었는데, 5월호에는 4월호에는 없던 “…바다를 향수(鄕愁)하고, 딸의 이름 징상(澄祥)을 얻다”란 에피그램이 새로 붙었다. ‘냉동어’는 일제 말의 질곡 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잃고 시체가 되어가는 지식인, 또는 조선인을 상징한다. 그가 조선의 상태를 ‘냉동어’로 표현한 것은 현실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균형에의 의욕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남녀의 애정 도피 행각과 그 실패를 그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스미꼬라는 일본 여자를 소개받은 주인공 문대영이 그 여자와 가까워져 가족을 버리고 동경으로 도피할 것을 약속했으나, 결국에는 문대영 앞으로 편지만을 남겨둔 채 스미꼬만 대동아공영의 꿈이 무르익는 중국 대륙으로 떠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채만식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작품의 단편적 사건과 전체적 형상, 인물의 상징성 등 부분과 전체를 유기적으로 파악한다.
채만식 자신도 <문학과 해석>이라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분신의 기법을 이용해 알레고리 구조를 만들고 있는 작품들은 소설이 발표되던 당시부터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고난을 겪었다. ‘맑은 절개’를 지닌 신념의 문학이 ‘변절의 문학, 친일의 문학’으로 곡해된 것이다. 역사적·문학사적 평가는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바로잡아져야 할 것이다. ≪냉동어≫는 그 작업을 실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작품의 하나다.
200자평
채만식은 친일 문학 행위를 했는가?
기존의 연구자들은 <패배자의 무덤>과 ≪냉동어≫를 그 근거로 삼아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냉동어≫가 지닌 알레고리 구조와 형상화의 핵심적 요소인 분신의 기법 등을 고려해 작품을 파악한다면, 다른 대답을 내놓게 될 것이다.
지은이
채만식은 전북 옥구군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했으며,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진학했으나 갑자기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1학년 때 중퇴했다. 대학을 중퇴한 직후인 1923년 처녀작 <과도기>를 창작했으며 이듬해에는 단편소설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동아일보 기자, 개벽사 기자, 조선일보 기자 등을 하다가 1936년 이후에는 창작 활동에만 전념했다.
그의 문학적 경향은 풍자, 알레고리, 자전적 소설의 기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초기에 뚜렷한 색깔을 나타내지 않았던 채만식의 문학은 1930년대 초에 풍자의 경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그 대표 작품으로 이 경향은 <치숙>, ≪태평천하≫ 등 1930년대 후기의 풍자소설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의 작품인 <맹 순사>, <미스터 방>, <논 이야기> 등도 풍자의 경향을 농후하게 간직한 작품들로서 작가의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 생활의 부조리와 세태의 변화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채만식 문학의 중심적 흐름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알레고리다. 작가의 대표작들이 생산된 시기가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 사이라고 보면 그 시기에 사용된 창작 방법을 규정짓는 지배적 개념이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탁류≫, ≪태평천하≫, <제향날>, <심봉사>, <패배자의 무덤>, <냉동어>, ≪여인전기≫, ≪소년은 자란다≫까지 주요 작품 대부분이 알레고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알레고리까지도 힘들 정도로 험악해진 상황에서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세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일제에 대한 항거 의식을 표현했다. 이러한 성격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민족의 죄인≫이나 <역로>, <낙조>를 들 수 있다.
알레고리, 풍자, 자전적 기법 등은 장르의 성격에 따라 변환되어 적용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장르 혼합, 장르 해체의 방식을 채택했다. 이외에 여러 가지 문학적 기법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내고 변용했으며 그것을 이용해 문학 텍스트를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까지 창의적으로 고안했으니 ≪민족의 죄인≫에 사용된 ‘사족 달기 수법’이 그 대표적 사례다.
엮은이
연세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합동통신, 동아방송, 한겨레신문 기자, 전주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문학의 관계론적 이해≫, ≪문학 텍스트 읽기≫, ≪리얼리즘 이론과 실제 비평≫, ≪토지를 읽는다≫, ≪문학의 모험≫, ≪컴퓨터 게임의 이해≫, ≪컴퓨터 게임과 문학≫, ≪문학과 게임의 상상력≫, ≪세계의 서사문학과 토지≫ 등이 있다.
차례
냉동어(冷凍魚)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빼뚜룸한 ‘베레’ 아래로 굵다랗게 ‘웨이부’저 내려온 머리와 더부러, 윤이 치르르 새깜한 모피 외투의 넓운 깃에, 정통은 거진 다아 덮이고서 조곰만 벌어진, 귀 뒤의 하얀 목덜미, 거기에 무심코 大永은 주의가 끌려, 조용히 시선이 가서 멎는다.
2.
“冷凍魚의 향수는 바다에 있을 테지!…”
大永은, 이번에는 제가 한숨을 후루루 길게 내쉬면서, 혼자 하는 말로…
“…잘들 한다!… 푸달진 계집애 자식 하나를 나아 놓구서…, 그나마 첫 일헤두 미처 안 간 핏뎅일 놓구서… 에미는 에미대루, 애비는 애비대루, 제마다 제 원념을 그것한테다가 살려 보자구 들구!… 에잇, 구차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