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금수회의록≫은 개화기 신소설로 1908년에 ‘황성서적업조합’에서 간행한 우화(寓話) 소설이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연설회의 형식을 빌려, ‘나’라는 1인칭 관찰자가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연설 회의장에 들어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인간 생활에 대한 비판이 동물들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 각각의 동물들이 인간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서 인간의 부도덕을 조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화성과 풍자성을 가지고 있다. 또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할 때, 개화기의 부정부패, 탐관오리의 타락과 사대적 경향 그리고 문란한 풍속과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강렬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금수회의록≫의 비판 의식 배경에는 기독교 사상과 전통 사상이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당대 신소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종종 ≪금수회의록≫의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당시 사회를 구제하는 데 전통 윤리나 기독교 윤리 덕목들이 어느 정도 유효했지만, 작품에 나타난 현실 비판은 너무나 심정적이고 이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 민족적 위기를 타개하는 데는 실질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금수회의록≫은 당시 신소설들이 문명개화를 촉진하자는 입장에서 쓰인 것과 비교해서 그 문명개화로 말미암은 도덕적 타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쓰였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신소설이 통속적 흥미에 치우쳐 빈약한 주제 의식을 보이고 있던 것과 비교할 때, ≪금수회의록≫은 강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공진회≫는 1915년에 안국선이 발표한 것으로 원래 단편 다섯 편으로 이뤄졌으나, 일제의 검열로 두 편이 삭제되고 세 편만 남았다.
안국선은 ≪공진회≫의 ‘서문’과 ‘독자에게 주는 글’을 통해 당시 열렸던 물산 공진회 참가를 권하고 여흥을 돋우기 위해 글을 썼다고 밝힘으로써 소설의 교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제시한다. 좀 더 발전된 근대적 소설관의 인식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 작품들은 근대적 단편소설로 보기에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사실적 묘사와 단편적 양식 등으로 말미암아 장편 신소설과 1920년대 이후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다리 구실을 했다고 평가된다.
이에 반해 ≪공진회≫가 제목 그대로, 일제가 개최한 ‘시정 5년 기념 조선 물산 공진회’의 홍보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1915년 9월 10일에 열렸던 공진회는 “총독 정치 개시 이래 5년 간에 있었던 조선 산업의 진보 발달”을 선전하기 위한 박람회였다. 각종 진열관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을 ‘진보’와 ‘개선’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식민지 조선을 원료 생산지이자 상품 시장으로 적극 개발·공략하기 위한 홍보였던 것이다. 안국선은 이런 공진회를 조선이 진보되고 개혁되는 계기로 파악했다. 공진회 개최 이후 식민지 조선의 경성이 엄청나게 발전하긴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겉치레일 뿐 ‘진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사실’을 찬찬히 살펴보면, 발전의 수혜자는 조선에 진출해 있던 일본인뿐이었다.
≪금수회의록≫에서 보여 주었던 비판 의식과 ≪공진회≫의 친일 찬양을 두고, 그저 작가 의식 혹은 작품 활동의 변모라고만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각기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인 의의도 적극 평가해야겠지만, 이와 함께 역사의식의 부재가 가져왔던 종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200자평
안국선이 1908년에 발표한 ≪금수회의록≫과 1915년에 낸 ≪공진회(共進會)≫가 실린 책이다. 1910년대 표기법 그대로 나왔다.
지은이
안국선(1878~1926)은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뒤, 1896년 도쿄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 7월에 졸업했다. 그는 사상적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문명화가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은 그 모델로 비쳤다. 아울러 ‘조선 우민(愚民)’에 대한 ‘교화(敎化)’와 대한제국 타도를 개혁과 진보의 지름길이라고 파악했다. 대신에 의병 운동을 ‘어리석은 백성이 멋모르고 날뛰는 것’으로 인식했다.
안국선은 1899년 11월 귀국했지만, 안경수와 박영효 관련 정변 사건에 얽혀 1907년까지 유배를 당한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는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했고, 여러 저서를 쓰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7년 11월 30일부터는 제실재산정리국 사무관-탁지부 이재국 감독과장, 국고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11년 3월엔 청도군수에 임명되어 2년 3개월 동안 재임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황실 재산을 일본에 넘긴 일을 한 셈이었고, 그 공으로 청도군수를 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직을 떠난 이후에는 박영효와 밀접한 관계를 말년까지 지속하면서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대부분 실패했다). 말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926년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엮은이
김연숙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대 여성 문화의 형성과 근대 소설의 내면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소설 구경, 영화 읽기≫(공저), ≪여성의 몸-시각·쟁점·역사≫(공저), ≪신여성-매체로 본 근대여성풍속사≫(공저), ≪확장하는 모더니티≫(공역)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1930년대 소설에 나타난 여성 육체의 재현 양상>, <저널리즘과 여성 작가의 탄생>, <근대 주체 형성과 ‘감정’의 서사>, <서사물의 통속적 기획과 감정의 콘텍스트>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셔언(序言)
개회취지(開會趣旨)
뎨일셕 반포의 효(反哺之孝) (가마귀)
뎨이셕 호가호위(狐假虎威) (여호)
뎨삼셕 졍와어해(井蛙語海) (개고리)
뎨사셕 구밀복검(口蜜腹劍) (벌)
뎨오셕 무장공자(無腸公子) (게)
뎨륙셕 영영지극(營營之極) (파리)
뎨칠셕 가졍이맹어호(苛政猛於虎) (호랑이)
뎨팔셕 쌍거쌍래(雙去雙來) (원앙)
폐회
공진회(共進會)
셔문(序文)
이 책 보는 사람에게 쥬는 글(贈讀者文一)
기생(妓生)
인력거군(人力車軍)
시골 로인 이야기(地方老人談話)
이 책 본 사람에게 쥬는 글(贈讀者文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셔문(序文)
총독부에셔 새로은 졍치를 시행한 지 다섯 해 된 긔념으로 공진회를 개최하니 공진회는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을 브려노코 모든 사람으로 하야금 구경하게 하는 것이여니와 이 책은 소셜 ≪공진회≫라. 여러 가지 긔긔묘묘한 사실을 책 속에 긔록하야 모든 사람으로 하야금 보게 한 것이니 총독부에셔는 물산 공진회를 광화문 안 경복궁 속에 개셜하얏고 나는 소셜 ≪공진회≫를 언문으로 이 책 속에 진술하얏도다. 물산 공진회는 도라단기며 구경하는 것이오 소셜 ≪공진회≫는 안져셔나 두러누어 보는 것이라. 물산 공진회를 구경하고 도라와셔 여관 한등 젹젹한 밤과 긔차 타고 심심할 젹과 집에 가셔 한거할 때에 이 책을 펼쳐 들고 한 대문 나려보면 피곤 근심 간데업고 자미가 진진하야 두 대문 셰 대문을 책 노흘 슈 업실 만치 아모조록 자미잇게 셩대한 공진회의 여흥을 도읍고자 붓을 들어 긔록하니 이때는 대졍 사 년 츄팔월이라.
텬강 안국션
天江 安國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