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무대 배경은 영국 중부지방 포터의 낡은 원룸 아파트다. 지미는 아내 앨리슨에게 조롱과 비난을 일삼는다. 그녀가 아버지 레드펀 대령을 따라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살다가 제국 시대의 종식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 대표적인 상류층 출신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출신인 지미는 그녀의 아버지가 대표하는 영국 상류층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특히 어떤 상황에도 평정을 유지한 채 결코 분노하는 법이 없는 앨리슨의 태도가 그의 분노를 자극한다. 현재는 클리프만이 누구에게나 공격적인 그의 성미를 받아내는 유일한 친구다. 한편 앨리슨은 지미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가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리프의 설득으로 지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려는 순간, 앨리슨의 친구 헬레나가 이들을 찾아온다. 지미는 헬레나의 방문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며 그녀와 갈등한다. 참다못한 헬레나는 앨리슨을 빼내기 위해 그녀의 부모에게 연락하고, 지미와의 결혼 생활에 지친 앨리슨은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와 함께 지미를 떠난다.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등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던 1930∼1940년대 영국 젊은이들과 달리, 종전 이후 재편된 세계 질서 속에 남은 젊은이들은 이제 자유 같은 근사한 명분이 아니라 참전 후유증이었던 경제난과 싸우며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할 기득권층이 이를 외면한 채 이미 손에 쥔 것을 지키는 데만 온 힘을 쏟는 현실에 젊은이들의 실망과 분노는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는 기득권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공적 영역에서 발화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개인 간의 관계 속으로 천착할 뿐이었다. 목숨을 걸 만한 근사한 명분 없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당대 젊은이들의 분노와 자기 연민은 앨리슨과 클리프의 경우처럼 한없는 무력감으로 고착되거나, 지미의 경우처럼 변화와 혁명을 요구하는 ‘성난 목소리’로 고양되면서 양분되었고, 그렇게 갈라선 젊은이들은 끊임없이 부딪치며 서로를 상처 입히기에 이르렀다. 지미와 앨리슨의 갈등이 ‘계급투쟁’인 동시에 ‘동족투쟁’인 것처럼 그려지는 이유다.
200자평
존 오즈번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성난 젊은이들’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초연 당시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끌어냈던 작품이다. 주인공 지미의 끝을 모르는 ‘분노(ANGER)’는 당대 젊은이들이 느꼈던 환멸과, 절망, 회의감 등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감정이었다.
지은이
존 오즈번(John James Osborne 1929∼1994)은 영국의 극작가이며, 배우, 영화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56년 작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로 평단과 관객의 큰 주목을 받으면서 2차 세계대전 후 침체되어 있던 영국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작품이 대변하는 당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가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으며, 그 자신은 최초의 “성난 젊은이(the first Angry Young Man)”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역시 지미처럼 노동 계층 출신이었던 오즈번은 상업미술가였던 아버지와 바텐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1년 아버지를 여의고 받은 보험금으로 데번에 있는 벨몬트 대학 기숙학교에서 수학했으나 학교에 불만을 품고 교장에게 주먹을 날린 뒤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런던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잠시 동안 무역 잡지 기자 생활을 하다가, 유랑 청소년 극단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입문한다. 이후 지방 중소 도시에 있는 여러 극단에서 극단 책임자 겸 배우(actor-manager)로 활동하면서 직접 극작을 하기 시작했다. 오즈번이 본격적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젊은 작가들의 요람’으로 알려진 잉글리시스테이지컴퍼니(the English Stage Company)가 그의 대표작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무대에 올리면서부터였다. 이 작품은 희망 없는 영국의 미래에 대한 당대 이삼십대 젊은이들의 무력감과 절망을 처음으로 서사화해 무대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오즈번의 작품은 형식이 아닌 언어와 내용, 즉 평범한 일상 언어에 극적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평범한 노동 계층 출신 인물들의 입으로 발화함으로써 당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이러한 새로운 연극은 상류층 출신 인물들의 비현실적인 삶을 보여 주는 데 급급했던 ‘잘 짜여진 극(well-made plays)’이 점령한 기존 연극 무대를 동시대인들의 고민이 살아 숨 쉬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옮긴이
고근영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연극의 이론과 실제’, ‘대학 영어’ 등을 강의하는 한편, 동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현대영미희곡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학위 논문 <Who’s saved in Saved?: Saved 속 ‘구원’의 의미를 통해 살펴본 폭력의 전략적 재현 방식>으로 이화우수논문상(2014)을 수상했으며, ≪현대영미드라마≫, ≪월간 한국연극≫, ≪한국영어영문학회 국제학술대회≫, ≪이화영미학연구소저널≫ 등에 다수의 논문 및 평론을 게재 및 발표한 바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지미: 우리 세대 남자들은 더 이상 목숨을 걸 만큼 괜찮은 명분으로 죽어 갈 수가 없다니까. 우리가 아직 애들이었던 삼사십 년대를 살았던 남자들이 다 써 버렸나 봐.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