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고우 홍기삼의 비평은 전 시기에 걸쳐 ‘민족문학의 경향’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상황문학론≫이 당시의 순수ᐨ참여 논쟁의 허실을 지적하고 ‘분단 상황’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민족의 현실을 생생하게 조명하는 새로운 문학을 모색했다면, ≪북한의 문예이론≫은 당대의 금기였던 ‘북’의 실상과 문학관을 아주 세밀하게 조망한 비평적 작업이었다.
이 두 연구는 민족의 현실이라는 차원에서 “분단이라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라는 화두에 대한 응답의 성격을 띠고 진척된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문학사와 문학비평≫에서는 작품에 대한 꼼꼼한 비평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 문학사 기술을 모색하고, ≪민족어와 한국문학≫에서는 ‘민족어’, ‘한국문학’ 등 종래에 확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범주가 흔들리고 탈민족주의가 성행하는 시대에, ‘재외 한국인 문학’, ‘21세기의 분단문학’, ‘불교 생태주의와 동아시아’ 등의 화두를 제시하며 새로운 민족문학의 방향을 찾고자 한다. 특히, 월북 문인에 대한 비평적 관심은 ‘문학비평과 문학 연구’를 서로 통합하는 ‘문학사 기술’을 모색해 온 고우 선생의 후기 비평 활동에서는 아주 중요한 출발점에 해당한다.
분단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문학관은 전 시기에 걸친 그의 문학론에서 기초를 이룬다. 북한 문예이론에 대한 관심, 월북 문인의 연구, 그리고 재외 한국인 문학에 대한 연구로 확장된 고우 선생의 비평적 행로가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평적 자의식에서 출발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200자평
유연하면서 동시에 팽팽한 긴장을 지닌 비평을 써 온 고우 홍기삼의 평론선집이다. 그는 1962년 ≪현대문학≫지에 평론으로 등단한 뒤 현장비평에 주력하다가 1980년대 이후로는 강단비평과 국문학 연구에 더 치중했다. 현대문학상, 서울시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지은이
홍기삼은 1940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고우(古雨) 또는 육주(六州)다. 동국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역사·인류학계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현대문학≫지에 평론으로 등단한 뒤 줄곧 현장비평에 주력하다가 1980년대 이후로는 강단비평과 국문학 연구에 더 치중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책임을 맡기도 했다. 현대문학상, 서울시문학상 등 몇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상황문학론≫(1974), ≪문학사의 기술과 이해≫(1978), ≪북한의 문예이론≫(1981), ≪해금문학론≫(1991), ≪홍명희≫(1996), ≪문학사와 문학비평≫(1996), ≪佛敎文學이란 무엇인가≫(1997), ≪불교문학 연구≫(1997), ≪향가설화문학≫(1997), ≪민족어와 한국문학≫(2010) 등이 있다. 지금은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해설자
김춘식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하여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무크지 ≪무애≫, ≪시힘≫ 등과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한국문학평론≫ 등의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시 전문지 계간 ≪시작≫의 편집위원과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평론집 ≪불온한 정신≫, 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한국문학의 전통과 반전통≫, ≪근대성과 민족문학의 경계≫ 등이 있다.
차례
민족어와 민족문학
소설의 미래
김달수론−≪태백산맥≫과 <박달의 재판>을 중심으로
불교와 인문학의 소통
이병주론−생명의 존엄을 위한 옹호
處容郎 望海寺
해설
홍기삼은
해설자 김춘식은
책속으로
소설의 죽음이나 위기론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대 의사를 가진 사례로 샐먼 루시디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소설의 죽음과 독자의 죽음을 강변한 조지 스타이너, V. S. 네이폴 등의 사례를 열거한 뒤 “V. S. 네이폴이 더 이상 소설을 쓰려 하지 않는다거나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손실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예술은 그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소설 예술에 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영화, 텔레비전, 광고 카피 쓰기 등의 분야가 아무리 발전하고 위세를 떨친다 해도 소설이 위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루시디는 마치 육상경기에서 단거리 종목이 인기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장거리 선수의 숫자가 줄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예술이나 문화의 양식이 출현한다고 해서 전통적인 소설 양식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비유적 표현을 쓰고 있다. 그것은 한 시대에 ‘창조적 재능의 총량’이 일정량 존재한다면 그것을 새로운 문화가 차지하게 되고 결국 소설이 차지할 만한 영역은 줄어들거나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스타이너의 비관론에 대한 루시디의 반대 의견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이테크가 소설을 위협한다고 하는 스타이너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글쓰기란 하이테크 아닌 로테크이며 혼자서 이루어 내는 고독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어떤 힘으로도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설의 미래>
그동안 대학은 그런 이유로 학부제를 비롯한 여러 제도 실험을 통해 인문 분야나 인기가 저조한 기초 학문 분야를 통폐합하거나 축소하거나 퇴출시키기 위한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 인문학이 시달려 온 것을 대학인이라면 누구나 잘 기억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특별한 정책적 배려도 없이 약간의 섭외 과정만 거치면 대학의 인가도 어렵지 않았고 해마다 학생 정원을 늘리기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은 그리하여 인구 비율로 보아 세계에서 대학과 대학생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던 교육부가 이제는 거꾸로 대학이 입학 정원을 줄이면 약간의 재정을 지원할 뿐 아니라 대형 국책 지원 사업에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얄팍한 유인책을 쓰며 대학을 압박한다. 무원칙한 양산에 양산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대학과 학문 저질화의 원인을 제공한 교육부가 국민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해마다 대학에 대해 모습을 바꾸어 가며 억압적 간섭을 계속하고 있다.
-<불교와 인문학의 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