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2682호 | 2015년 7월 14일 발행
청년 헤겔의 자화상
조홍길이 옮긴 게오르크 헤겔(Georg W. F. Hegel)의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Der Geist des Christentums und sein Schicksal)≫
청년 헤겔의 자화상
성서를 통한 신성 해석의 명료함, 그리고 사랑에 의한 운명의 화해와 유한과 무한의 분리와 합일.
비로소 드러나는 변증법의 운동 본성.
청년 헤겔의 모습이 고스란히 여기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볼 수 있는 초라하고 비천하며 인색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일어난 유태 민족의 모든 상황은 단지 유태인들의 근원적인 운명의 전개와 결과일 뿐이다. 그들은 이 운명−자신들과 대립했지만 정복할 수 없었던 무한한 위력−의 학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 운명을 아름다움의 정신으로 화해시켜서 지양할 때까지 오랫동안 학대받을 것이다.”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게오르크 헤겔 지음, 조홍길 옮김, 35쪽
유태인은 왜 그들 자신의 운명에 의해 학대받는가?
대립과 증오, 노예근성에 바탕을 둔 유태교의 정신 때문이다.
무엇과 무엇의 대립인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의 대립이다. 인간을 자연이나 신과 분리된 존재로 무리하게 대립 관계를 설정했다. 그 결과 유태교는 운명과 화해할 수 없었다.
화해할 수 없는 운명의 행로는 무엇인가?
독립과 굴종의 교차다.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며 몰락했다.
몰락한 유태인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예수 때문이다. 최후의 위기에 그가 등장했다.
예수가 무엇을 했나?
유태인의 운명에 맞섰다. 대립과 증오 대신 사랑과 화해를 주장했다. 기독교 정신은 유태 민족을 그들의 운명 너머로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
예수의 시도는 성공했는가?
유태 민족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예수가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밖의 세계에서는 크게 환영받았다.
헤겔은 유태인과 예수, 그리고 기독교를 통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정신의 내적 체험으로 신과 인간, 무한과 유한이 합일되고 운명과 화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설명하는가?
횔덜린의 전일성 관점에서 칸트의 이원론을 비판한다. 자연과 자유가 하나 되는 신성을 소개한다.
칸트의 이원론이란?
주관과 객관, 유한과 무한을 분리한다. 인식할 수 없는 먼 곳에 절대자를 놓는다. 이성의 도덕법칙이 경향, 곧 욕망과 감정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입장은?
칸트철학의 이원론과 도덕법칙이 유태교의 율법과 노예근성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횔덜린의 영향이란?
그는 헤겔의 친구였다. 고대 희랍의 아름다움을 동경해 ‘하나이면서 전체’라는 이상을 꿈꿨다. 이런 생각이 헤겔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헤겔은 이 글을 언제 썼나?
28세 때인 1798년부터 30세 때인 1800년 사이, 청년기에 썼다.
신학 논문인가, 헤겔 철학 입문서인가?
나는 신학 논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헤겔철학의 입문서로도 읽을 수 있고 변증법의 맹아를 탐색하는 문건으로도 읽을 수 있다.
당신이 신학 논문이라고 보는 이유는?
성서를 통한 신성 해석으로 헤겔의 저작 가운데 신성을 가장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헤겔철학의 입문서로도 가능한 이유는?
사랑에 의한 운명의 화해, 유한과 무한의 분리와 합일이라는 변증법의 원형이 드러난다. 헤겔 변증법의 초기 단계를 이해할 수 있다.
헤겔철학에서 이 글의 위치는?
정신사 발전 단계로 보나, 후세에 끼친 영향과 현재 의미에서 볼 때나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청년기의 사상을 총괄하고 사상적 방랑을 종결했다.
이후 청년 헤겔은 어디로 가는가?
셸링의 초청을 받아 예나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신학적 이상으로부터 학문적 반성 체계로 나아갔다. 이 시기에 ≪정신현상학≫을 출간했다. 진리란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개념의 운동을 통해서 체계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논리학≫을 출간하며 학문 체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완성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홍길이다.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