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북스닷컴의 편집
우리는 편집의 본질을 잊지 않습니다. 한국어 창작물과 외국어 번역물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발생한 지식과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지식을 겉만 보고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글은 필자가 쓰는 것이며 편집자는 책을 만듭니다. 그렇다면 오역과 비문과 오자와 탈자는 어떻게 고쳐져야 할까요? 컴북스닷컴이 생각하는 번역서 편집과 오탈자에 대한 의견을 밝힙니다.
<번역서 편집에 대하여>
번역서의 원고를 읽고 편집자가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밑줄을 그어요. 편집자는 최초의 독자라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편집자가 문제 제기한 번역과 문장을 고치거나 고치지 않는 것은 필자의 권리입니다. 필자의 판단을 편집자는 받아들입니다.
우리 출판사의 번역서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번역과 번역서에 대한 우리 출판사의 철학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번역과 창작을 혼동하지 않아요. 필자와 편집자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어떤 텍스트의 번역서와 원서, 둘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번역 그 자체가 심각한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번역의 대가일수록 강조하고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낯선 번역은 읽기가 어려워요. 어려운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낯선 것입니다. 낯설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아니에요. 번역은 모르는 문화를 알기 위해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번역이 쉽고 친숙할 수 있단 말인가요.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 아니라면, 읽기 쉬운 번역은 사기입니다.
“마치 원래부터 한국어로 쓰인 것처럼 유려하게 기술되고 술술 읽혀 내려가는 번역 문장” 운운하는 것을 여기저기서 보게 됩니다. 이런 글을 보면서 학문이 깊고 외국어가 능통하고 한국어에 밝은 지식인들은 쓴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텍스트는 원래 한국어로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텍스트가 다루는 내용은 한국의 문화 사정과는 다른 특정 국가의 문화 사정 속에서 자라나고 열매 맺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빵’을 ‘밥’처럼 옮겨서는 안 되지요. 우리 문화에는 빵이 없었기 때문에 빵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낯설고 어렵고 읽기 힘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빵이 아니라 ‘밥’이라고 의역하면 읽기 쉽고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번역은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번역서를 읽는 이유는 ‘낯선 것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낯선 것이 친숙하다면 그것은 가짜임에 틀림없어요. 이러한 까닭에 우리 출판사는 번역서의 한국어 문장이 유려하고 내용에 낯섦이 없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독서의 성장 구조를 살펴보세요. 외국어 실력이 약할 때 번역서를 통해 특정한 지식의 존재를 알아차린 지식인은 언젠가 그 외국어를 익혀 그 텍스트를 그 외국어로 읽게 됩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독서의 성장 구조입니다. 따라서 우리 출판사는 번역서를 낼 때 그것의 원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합니다. 번역서는 그 원서의 입문서, 맛보기, 길잡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결코 빵을 밥처럼 보이게 하는 유려하고 친숙한 문체를 만들기 위해 6개의 도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에 1개의 도시에 여행자의 발목을 붙들어 매지 않습니다.
번역서를 다루는 고급 편집자라면 영화는 현실이 아니며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영화가 왜 허상이라는 가치 모멸적 정의를 수용해야 하는가를 숙고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그리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요. 번역으로 외국어를 대신할 수 있다면 세상은 단 하나의 언어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번역서를 편집하고 출판할 때 번역의 본질을 생각합니다. 한국어 창작물과 외국어 번역물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발생한 지식과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지식을 겉만 보고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는 번역 원고를 들고 본문 대조를 하거나 교열을 보거나 하지 않아요. 글은 필자가 쓰는 것이며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것이지요. 번역 출판에서 우리 출판사의 역할은 보다 다양한 문화와 지식의 세상을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문을 넓게, 더 넓게 열어주는 것입니다.
<오자와 탈자에 대한 의견>
문장의 오타나 탈자는 편집자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은 글을 쓰는 필자의 책임보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책임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오자나 탈자가 있다는 말은 편집자가 원고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편집자의 직무 유기이고 독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불손이며 필자에 대한 약속의 방기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오자와 탈자에 대해서는 편집자가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 회사가 생각하는 오자와 탈자의 허용 범위는 책 한 권에서 5개 정도입니다. 이것은 300쪽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개수입니다. 더 작은 책이라면 3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될 것이고 300쪽을 넘는 책이라면 100쪽이 늘 때마다 1개 정도의 오자와 탈자가 허용될 수 있습니다. 초판에서 이 정도의 오자와 탈자를 허용하는 것이고 쇄를 거듭하면서 반드시 잘못된 점을 잡아서 3쇄가 넘어가면 오자와 탈자는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조직과 예산의 문제 이전에 오자와 탈자의 문제는 편집자의 자질과 소양의 문제입니다. 원고를 읽지 않고 책을 출간했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는 언제나, 원고를 읽는 첫 번째 독자입니다.
여기서 오자와 탈자의 문제와 한국어 맞춤법 문제, 문장의 품질 문제를 정리해야 할 듯합니다. 난이도를 기준으로 보면 품질⇒ 맞춤법⇒오탈자 순서로 판단과 작업이 쉽습니다. 이미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우리 출판사는 문장의 품질을 필자의 역량과 취향에 일임합니다. 문장을 고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맞춤법은 좀 복잡합니다. 한국어 띄어쓰기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마다 기준이 좀 다릅니다. 국어학자들의 주장이 각각이고 정부의 기준도 쓰기 나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 회사에서는 우리 출판사의 맞춤법 기준을 설정하고 출판물이 같은 기준에 의해 정리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정리해 왔습니다.
띄어쓰기에 대하여 우리 회사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합니다. 한국어를 읽을 때 띄어쓰기가 문장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조 용언 등의 사용에서 띄어 쓰는 사람과 붙여 쓰는 사람이 있는데 어느 쪽도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붙여도 좋고 떼어도 좋습니다. 흔히들 어떤 기준을 사용하든 책 한 권에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 회사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편집자가 어디는 붙여 쓰고 어디는 떼어 썼다고 해서 크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것 신경 쓸 시간에 오자와 탈자를 잡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