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시선
113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네, 세상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았네.
그 역겨운 입김 아래서 나는 아부하지 않았고, 그 우상에게
참을성 있는 나의 무릎을 꿇지도 않았네−
마음에 없는 웃음을 뺨에 지어 보지도 않았고−허황된 메아리를
숭배하며 큰 소리로 외쳐 보지도 않았네. 내가 속된 무리들 속에 있어도
그들은 나를 그런 사람들 중 하나로 대할 수 없었네. 나는 그들 속에
서 있었지만, 그들 중 하나는 아니었네. 그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생각의 수의를 걸치고 있었기에, 의연히 서 있을 수 있었다네,
내 마음이 굴복해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114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네, 세상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았네−
하지만 우리 서로 선한 적으로 헤어지자. 비록 세상이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진심이 담긴 말과,
속이지 않는 희망과, 실패하도록 함정을 짜 놓을 줄 모르는
자비로운 미덕이 있으리라고 믿는다네. 나는 또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진정으로 슬퍼해 주고,
둘 또는 하나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있고−
선이란 이름뿐만이 아니고, 행복이란 꿈만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네.
≪바이런 시선≫, 조지 바이런 지음, 윤명옥 옮김, 112~113쪽
어느 대목인가?
바이런의 대표적인 서사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제3편의 113∼114연이다. 장시이기 때문에 일부를 언급할 때는 주로 첫 행을 제목 대신 사용한다.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어떤 작품인가?
“어느 날 아침에 깨어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21세부터 29세까지 9년에 걸쳐 쓴 대작이다. 자신의 유럽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차일드 해럴드의 기나긴 순례 여행을 그렸다.
무엇을 향한 여행인가?
인생을 넓고 깊게 경험했지만 쾌락에 지쳤다. “완전히 권태로움을 느”끼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에서 떠”나 순례를 시작한다.
순례의 결과는?
이상의 부재를 경험하고 허구를 인식한다. 자신이 추구한 결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순례의 결과는 현실 세계로의 복귀, 비전에 대한 환멸이었다.
이 시의 표현 특징은?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를 구사한다. 숨 막히는 자연 풍경을 통해 자연으로 도피하려는 해럴드의 욕망 기저에 있는, 삶의 진부함과 복잡함을 강력한 언어로 표현했다.
바이런의 시선은 무엇을 보는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사회다. 청춘의 정열,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삶의 고뇌와 비애, 동경과 긍지, 희망과 절망에 대해 솔직하고 과감하게 토로한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어떤 인간인가?
사랑은 물론 개인, 사회, 국가의 모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비판하고 책임감 있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유럽 사회의 제도와 활동, 가치, 사랑, 결혼, 심지어는 낭만주의 문학의 이상까지도 위선이라고 지적한다.
어쩌다 이런 냉소의 태도를 갖게 되었나?
타고난 다리 장애, 불우한 가정환경, 뛰어난 외모로 인한 무절제한 여성 편력에서 오는 우울함이다. 이런 분위기는 “바이런적 영웅(Byronic hero)”이라는 독창적인 인물을 낳는다.
바이런적 영웅이란?
그의 시에 종종 나타나는 인물형이다. 차일드 해럴드와 돈 주안이 대표적이다. 우울하고 정열적이며 통렬하게 참회하면서도 후회 없이 죄를 저지르는 반인반신(半人半神)적인 주인공이다. 이들의 끝없이 저항하는 자세야말로 바이런의 낭만성을 대변한다.
돈 주안은 누구인가?
바이런의 죽음으로 미완으로 남은 16편의 서사 풍자시 ≪돈 주안≫의 주인공이다. 에스파냐의 전설적인 인물 돈 후안이 모델이다.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폭로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도덕률을 모두 위선이라고 매도한다. 유럽 통치자들의 졸렬한 독재를 야유한다.
바이런 자신의 삶은 어땠나?
1788년 영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자유분방하게 살면서 귀족 계급과 사교계의 부정부패와 위선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꼬집었다. 자유와 정의와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그리스 독립 운동을 돕다가 열병에 걸려 1824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명옥이다. 인천대학교 초빙교수다.
2695호 | 2015년 7월 22일 발행
바이런적 영웅, 반인반신의 낭만성
윤명옥이 옮긴 조지 바이런(George G. Byron)의 <<바이런 시선(Selected Poems of George Gordon By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