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다자이 오사무는 사카구치 안고와 더불어 일본 퇴폐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는다. 패전을 겪은 당대 젊은이들이 특히 그의 문학에 열광했다. 네 차례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런 이력을 반영한 자전적 단편을 많이 썼다.
<어릿광대의 꽃>은 내연녀와 바다에 투신한 뒤 혼자 살아남은 오바 요조가 병원에서 보낸 며칠간을 그렸다. 다자이가 겪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인간 실격>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오바 요조라는 분신을 통해 자기 연민을 드러낸다.
<만원>은 다자이가 결혼 후 심신에 안정을 찾은 무렵에 쓴 것으로, 그가 고뇌하는 청년에서 벗어나 가정을 가진 생활인으로 거듭나고자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밖에 종교적 성찰을 반영한 <유다의 변명>,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해 뜨기 전>, 작가 자신의 전 생애를 대변하는 고백 소설 <땅땅땅>,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두었던 작가의 남편,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드러나는 <버찌> 등,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활동 전기, 중기, 후기 특징이 반영된 단편 6편을 엮었다.
200자평
20세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6편을 엮었다.
지은이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는 1919년 6월 19일 아오모리(青森) 현 기타쓰가루(北津軽) 가나기초(金木町)의 쓰시마(津島) 가문에서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다. 중학교 때부터 ≪신기루(蜃気楼)≫라는 동인지를 창간해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고교 시절에는 좌인 운동에도 가담하지만 곧 전향했다. 카페 여급과 함께 해안가에서 칼모틴을 다량 복용해 최초로 자살을 시도한 이후 네 차례 더 자실을 시도했고,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다자이는 “이젠 더 이상 쓸 수가 없다(書けなくなった)”라는 유서를 남기고 야마자키라는 전쟁미망인과 함께 다마카와 강 상류(玉川上水)에서 투신했고, 두 사람의 시신은 다자이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인 1948년 6월 19일에 발견되었다. 대표작으로 <추억(思ひ出)>(1933), <HUMAN LOST>(1937),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1940), <쓰가루(津軽)>(1944), <샤요(斜陽)>(1947), <인간 실격(人間失格)>(1948) 등이 있다. 작가 생활 16년 동안 15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옮긴이
전수미는 서울 출생으로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했다.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가족과 함께 도일해 일본의 대한항공 후쿠오카 지점과 오사카 공항 지점에서 근무했다. 한국외대 일문과에서 다자이 오사무 문학 연구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다자이 오사무와 성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항공사 객실에서 사용하는 기내 일어 회화와 방송 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더불어 항공사 지원을 위한 면접 실무와 이미지 메이킹, 객실 서비스 이론, 항공 예약 등도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는 기무라 사요(木村小夜)의 ≪다자이 오사무와 편지≫(일본근대문학: 연구와 비평 4, 한국일본근대문학회, 월인, 2005),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의 ≪가난 이야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등이 있다. 문학서로는 ≪문학, 일본의 문학 현대의 테마≫(최재철 외 다수, 제이앤씨, 2012. 7. 12)에서 다자이 오사무 문학 연구론인 <무교회주의와 그리스도의 수용>에 대해 집필했다. 그 밖에도 <다자이 오사무의 <판도라의 상자>일고찰−패전과 성서의 의미를 중심으로>(일본문화학보, 2008.2.),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연구−기독교관을 중심으로>(일본학연구 제36집, 단국대 일본연구소, 2012.5) 등 다자이 오사무와 성서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어 교재 ≪해설판 20과로 된 진명 일본어카세트≫와 ≪해설판 40과로 된 진명 표준일본어교본≫을 녹음·해설했다.
차례
어릿광대의 꽃
만원
유다의 변명
해 뜨기 전
땅땅땅
버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자식보다 부모가 소중하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식을 위하여”라고 고풍스러운 도학자처럼 독특하게 생각해 보면,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적어도 우리 가정은 그렇다. 내가 노인이 되어 자식의 도움을 받고 신세를 지겠다는 뻔뻔하고 넉살 좋은 속셈 따위는 전혀 없지만, 우리는 가정에서 늘 자식들 눈치만 본다. 자식이라고 해도 우리 애들은 아직 많이 어리다. 장녀는 일곱 살, 장남은 네 살, 차녀는 한 살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각자 이미 부모를 압도하고 있다. 아빠와 엄마는 모두 자식들의 머슴과 하녀로서 근성을 드러내고 있다.
<버찌>,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