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헌장 시선
登飛雲
馬上問羅浮,
羅浮本無路.
虛空一拍手,
身在飛雲處.
白日何冥冥,
乾坤忽風雨.
蓑笠將安之,
徘徊四山暮.
비운에 올라
말 위에서 나부를 물으니
나부는 본래 길이 없다 하네.
허공에다 한 번 손뼉을 치니
몸이 비운에 와 있네.
대낮에 어찌 어둑어둑한가.
세상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은자는 장차 어디로 가는가.
배회하다 사방의 산에는 해가 지네.
<비운에 올라>, ≪진헌장 시선≫, 진헌장 지음, 신민야 옮김, 72쪽
비운은 어디에 있는가?
진헌장이 살던 백사촌 근처 나부산의 정상이다.
나부산은 어떤 산인가?
작가에게 특별한 곳이다 이상향이고 도고 목표였다.
그곳에 몇 번이나 올랐는가?
가지 않았다. 한 편지에서 “평생 오직 사백삼십이 봉만을 생각하며 가려했지만 역시 또 가지 못했다(平生只有四百三十二峰念念欲往, 亦且不果)”고 했다. 사백삼십이 봉이란 나부산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시는 가지 못한 곳에 대한 묘사인가?
<비운에 올라>는 <와유나부사수(臥遊羅浮四首)> 중 한 수다.
와유(臥遊)가 뭔가?
상상으로 산수 자연을 느낀다는 말이다.
상상하는 자연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진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부의 유람은 즐겁구나! 저것의 있음이 이것의 없음으로 들어와 섞이고 통하여 놀고 즐기니 이는 참으로 즐겁다. 세상의 산수에서 유람하는 것은 모두 이러하니, 결국 이 귀와 눈으로 느끼는 것은 없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듣고 봄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원래 안에 있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으니, 밖에 있다고 여긴다면 스스로 포기함이 어느 것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관념론자의 인식론인가?
그렇게 볼 수 있겠다. 그는 ‘스스로 얻는 것(自得)’을 중시하고 ‘학문은 반드시 마음에서 구해야 한다(爲學當求諸心)’고 말했다.
평자의 견해는 어떤가?
담약수는 이 시 전체를 도의 파악 과정으로 이해했다.
도를 어떻게 파악했다는 말인가?
‘나부’로 상징되는 ‘도’에는 억지로 들어갈 수가 없고 마음으로 깨달을 때만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진헌장이 누구인가?
명대 이학가(理學家)이면서 시인이자 시론가다. 1428년 태어나 1500년 사망했다. 중국 철학사에서 흔히 정주이학(程朱理學)에서 양명심학(陽明心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인물로 간주된다. 삶의 대부분을 유가적 은자로서 후진을 양성하며 보냈다.
유가적 은자는 어떤 인물인가?
초연히 수신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때를 기다리는 자다. ‘쓰이면 행하고, 버려지면 숨는(用則行, 舍則藏)’다.
도가에서 말하는 은자와는 무엇이 다른가?
도가에서 은자는 세상을 등지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도피 성격이 강하다. 유가적 은자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작 자신은 쓰임을 받았는가?
과거와 인연이 없었다. 회시에 세 번 낙방했다. 국자감에서 잠시 말단 벼슬을 맡은 적이 있으나 이후에는 조정에 천거되어도 나가지 않았다.
시는 얼마나 남겼나?
이학가로는 드물게 2000여 수에 달하는 시를 창작했으며 체계적인 시론도 내놓았다.
그의 시 세계는 무엇인가?
그의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삶을 관통하는 중심 개념은 ‘자연을 근본으로 하는(以自然爲宗)’ 것이다. 꾸미지 않은 시를 남겼다. 시론에서도 ‘자연, 곧 스스로 그러함’을 핵심으로 하는 체계적인 문학 관점을 보인다.
이 책에는 몇 편을 가려 뽑았나?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이학총서(理學叢書)의 하나로 출간된 ≪진헌장집≫ 상하권(孫通海 點校, 1993년 12월)에서 진헌장 시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을 50수 선별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신민야다.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부 초빙교수다.
2714호 | 2015년 8월 11일 발행
진헌장(陳獻章)이 짓고 신민야가 옮긴 ≪진헌장 시선(陳獻章詩選)≫
앉아서 천 리, 누워서 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