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한국 근현대소설 초판본’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를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박종화의 ≪대춘부(待春賦)≫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 책은 1955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대춘부≫(전편·후편 총 2권)를 원본으로 삼았다.
≪대춘부≫에는 청의 침략과 조선의 항거, 항복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한 부분과 병자호란 이전의 신장(神將) 임경업의 명성과 활약상, 그리고 조선의 굴욕적 패배 이후 명나라와 손을 잡고 삼전도의 굴욕을 씻고자 하는 임경업과 지사(志士)들의 도전과 실패가 그려졌다. 작가는 임경업을 제시하여 우리 민족에게 치욕을 가져다 준 청에 대항한다. 여기에 일지청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도입하여 소설적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 임경업과 일지청의 만남과 일지청의 활약상은 작품 전체가 주는 비장함에서 벗어나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소설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김상헌, 이경여, 정온 등의 척화파와 최명길, 장유 등의 친화파의 현실 대응 방식,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의로운 죽음을 비롯한 여러 충신과 지사, 열부들의 순절(殉節), 이와 대조적인 강화 검찰사 김경증의 실정과 병자호란 이후 친청파가 되어 임경업을 모함하여 죽게 만들고 효종을 필두로 한 조정의 북벌 계획을 청에 밀고하는 김자점의 기회주의적 태도 등은 현실에 맞선 인간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세세하게 보여 준다.
월탄은 역사소설을 통해 훼손된 민족의식을 복원하고자 했으며 민족애를 일깨우고 민족정기를 드높이고자 했다. 그에게 역사소설은 사회 현실에 참여하는 방법이었으며 나아가 민족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편이었다. 또한 민족을 억압하는 식민지 현실에 저항하는 길이었다. 그는 스스로 천명했듯이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
200자평
≪대춘부≫는 병자호란과 북벌을 다룬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이다.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되었다. 청의 침략과 조선의 항거, 항복 과정, 병자호란 이전의 신장(神將) 임경업의 명성과 활약상, 조선의 굴욕적 패배 이후 명나라와 손을 잡고 삼전도의 굴욕을 씻고자 하는 임경업과 지사(志士)들의 도전과 실패를 그렸다.
지은이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1901∼1981)는 1921년 <장미촌> 창간호에 시 <오뇌의 청춘>, <우윳빛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 과정을 거치고,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뿐만 아니라 평론,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목 매이는 여자>(1923)를 시작으로 ≪세종대왕≫(1977)에 이르기까지 총 20여 편의 역사소설을 발표했는데,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기는 ≪매일신보≫에 연재된 ≪금삼의 피≫(1935) 이후라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 ≪대춘부≫(1938), ≪전야≫(1940), ≪다정불심≫(1940), ≪임진왜란≫(1954), ≪여인천하≫(1959), ≪자고 가는 저 구름아≫(1961), ≪아름다운 이 조국을≫(1965), ≪세종대왕≫(1969) 등이 있다.
월탄은 1949년부터 1954년까지 서울신문 사장을 지냈으며 1955년에는 예술원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70년에는 통일원 고문, 1980년에는 국정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제1회 문학공로상(1955), 문화훈장 대통령장(1962), 5·16민족상 제1회 문학상(1966),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1970)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엮은이
방인석은 197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조태일 시 연구>로 문학 석사 학위를, <김수영 시의 탈식민성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쳤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차례
파란
한숨
북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은은히 상감께서 북벌하시려는 기미를 알게 된 선비와 백성들은 전장을 팔아 나라에 바치고 말을 사고 갑옷을 샀다. 북벌이 시작되는 날이면 한번 팔을 걷고 창을 들어 군사의 뒤를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과 아우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다.
남문창에서 싸전 하는 김치덕(金致德)이란 사람이 백미 오백 석을 군용미로 바쳤다. 동창에서 어물전 하는 김치삼(金致三)이가 추수 쉰 섬지기를 팔아 병조에 바쳤다. 백목전 시정 권삼보(權三甫)가 백목 천 필을 내삼청(內三廳)에 바쳤다. 선전 시정 유경득(柳庚得)이가 엽전 만(萬) 량(兩)을 나라에 바쳤다.
육주비전이 들고일어났다. 동상전, 베전, 청포전, 백목전, 선전, 모든 시정들이 나도 나도 하고 앞을 다투어 나라에 돈과 곡식과 피륙을 바쳤다. 백성들의 마음은 흡연히 움직였다.
조선 갑부 변승업(卞承業)이가 다방골서 군용금 십만 량을 훈련대장 이완을 통해서 바쳤다.
평안도 운산(雲山), 황해도 수안(遂安), 강원도 김성(金城), 충청도 직산(稷山), 전라도 보성(寶城)서는 구리와 쇠가 마소 바리에 실려 나날이 서울로 쏟어져 들어왔다. 칼을 만들고 창을 만들고 철퇴를 만들고 대포를 만들어서 시시각각으로 북벌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장안 안 삼백여 곳 풀뭇간에는 풀무가 달아 불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대장쟁이는 팔뚝에 힘이 부쩍 올랐다.
동해 바다를 통한 부산과 동래에서는 조총(鳥銃)이 여러 만 자루 올라왔다.
−296∼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