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숭겸은 겨우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요 유학자로 존경받던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다. 김창협과 김창흡의 집안은 안동 김씨로서 대대로 알아주던 명문거족이다. 즉, 병자호란 때 높은 절의로 유명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아들인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과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은 번갈아 가며 영의정을 지냈다. 특히 김수항의 아들인 창집·창협·창흡·창업·창즙·창립 형제는 세상에서 소위 6창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문과 문예에 출중했다. 그래서 후에 정조도 ≪홍재전서(弘齋全書)≫·<일득록(日得錄)>에서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들어 가며 참으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최고의 명문가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런 명문가에서 태어난 김숭겸 또한 예외일 리가 없었다. 그는 특히 시로써 뛰어나 죽기까지 다수의 시를 남겼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시집인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에는 약 300여 수의 시가 전하고 있다. 물론 그가 지은 시는 이보다도 훨씬 더 많겠지만 시집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만 추려서 넣은 것으로 보인다. 겨우 19세밖에 살지 못한 어린 나이임에도 이런 시집을 남기고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 하겠다. 시집에는 13세에 지은 시부터 차례대로 수록되어 있다. 비록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그 시가 예사롭지 않아 천재 시인으로 부른다 해도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의 시 거의가 20세 이전에 지은 것이라고 했으니, 이에 비견할 만한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싶다. 그의 시는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산과 강을 소재로 한 자연시로 속기(俗氣)라고는 조금도 없는 맑고 투명한 색채를 띠고 있다. 한마디로 전혀 때 묻지 않은 17세기의 전원시인이라 하겠다.
김숭겸처럼 작가가 십 대 시절에 쓴 시들만을 모아 편찬한 시집이 한국 문집 총간에 오른 경우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만큼 그의 시에 대한 평가가 만만치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은 국내 초역으로, 한국문집총간본(202)을 원전으로 삼아 이덕무가 ≪청비록≫에서 예를 든 작품들은 거의 모두 넣었다. 이밖에도 전원시인다운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들을 선별해 번역했다. 300여 수의 시 가운데서 시인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82편의 시를 번역해 수록했다.
200자평
19세에 요절한 17세기의 천재 시인 김숭겸. 십 대에 쓴 시 300여 수로 한국문집총간에 들었으니 유례없는 일이다. 오로지 산과 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속기(俗氣)라고는 조금도 없는 맑고 투명한 색채를 띠고 있다. 옥병의 얼음 같은 전원시 82수를 가려 뽑았다.
지은이
김숭겸(金崇謙, 1682∼1700)은 1682년(숙종 8)에 태어나 1700년(숙종 26)에 사망했다.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군산(君山)이며, 호는 관복암(觀復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 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었으며, 어머니는 연안 이씨로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워서 깊이 통달했고, 서법 또한 절묘했다. 비록 19세로 요절했으나, 그 뜻이 높고 넓어 시격(詩格)이 호방하고 산수를 사랑해 발길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시 수백 편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묘비에 “세상의 악착(齷齪)함을 보고 뜻에 맞지 않으므로 성색(聲色)에 머물지 않고 산수만을 좋아해 풍악(楓岳)·천마(天摩)·화산(華山) 등을 다녔고, 시격이 기준창로(奇俊蒼老)해 두보(杜甫)의 격을 터득했다”고 평하고 있다. 저서에 ≪관복암유고≫가 있다.
옮긴이
전송열은 오래전 대학원에서 송준호 선생으로부터 처음으로 한국 한시 강의를 듣다가 그 재미에 푹 빠진 이후로 지금까지 한시와 옛글에 대해 다양한 글을 쓰고 또 번역도 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나 확장을 넘어 ‘진짜 공부’를 해 보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공자가 “배운 것을 부단히 몸으로 익힌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느냐?(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고 말했던 것처럼 ‘학(學)’이 왜 ‘고(苦)’나 ‘공구(工具)’가 아니며, 또 단순한 ‘낙(樂, happiness)’이 아니라 저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넘치는 ‘열(說, joy)’이 되어야 하는지를 진실로 한번 체득해 보고자 하는 그런 열망의 공부다. 모든 지식의 생명은 그것을 삶으로 재해석해 내는 능력에 달렸다고 믿으며, 지식이 지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통해 생명을 이끌어 내고자 늘 고민하는 사람이다. 현재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 전기 한시사 연구≫, ≪옛사람들의 눈물≫, ≪옛 편지 낱말 사전≫(공저)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역주 방시한집≫, ≪사친≫, ≪경산일록(1∼6)≫(공역) 등이 있다.
차례
친구를 그리며
아버님을 모시고 영평으로 가며 말 위에서 짓다
난가대에 올라 즉흥시를 짓다
봄날 백운산의 오두막집을 그리워하며
늦봄 보름 뒤에 아버님을 모시고 영평으로 가는데, 때마침 온갖 꽃들이 온 산에 가득하고 봄기운이 화창하기에 꽃 핀 고갯길로 가는 도중에 시를 짓다
보개산 봉은암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읊다
배를 띄우고서
석실서원에서 숙부 삼연 선생의 시를 받들어 차운하다
12월 18일 밤, 큰 눈이 내렸다가 막 개었다. 안개는 구산(龜山)을 반쯤 가렸고 지는 달은 서쪽 행랑에 걸렸다. 동지 10여 명과 함께 일어나 경치를 구경하다가 숙부 삼연 선생의 시에 공경히 차운한다
달빛 환한 밤에
서울로 가는 한익주를 보내며
회릉으로 가는 길에
삼각산에서 놀다가 저물녘 문수암에 이르러서
도봉산으로 들어가며
벽에 걸린 우재 선생의 시에 공경히 차운해 짓다
흥겨워서
가을 산
산을 나오며
밭갈이하는 것을 보며
들판에서
어스름 저녁에
석양
맑은 저녁 기운 속에
회릉(懷陵)으로 가는 길에
강화도에서
그냥 시를 읊조리며
도봉산에 들어가니 새벽 눈이 살짝 내리고
삼연 숙부님 시의 운을 따라 공경히 차운하다
눈발을 헤치고 도성으로 들어가며
눈 내리고 달빛 밝은데
봄 맞은 시냇가에서
원화벽(元化壁)에 들어가
밤에 기우제 단에 앉아서
가을은 다 가는데
동암(東菴)에서
천주사(天柱寺)에서 밤에 시를 읊다
조계사(曹溪寺)에서
밤에 돌로 쌓은 집에서 자는데, 샘물 소리가 찰찰찰 그치질 않아 마치 깊은 골짝 초막에 있는 것과 같아서
홀로 서서
빈 골짜기에서
숲 속 집에 새벽 눈이 내려서
깊은 숲 속에서
시골 마을
흥이 나서
소나무 뿌리에 작약꽃 몇 떨기가 막 피어났는데, 아주 고와서 사기병 속에 꽂아 놓고 저녁 내내 마주 보고 있으려니 사람의 마음을 매우 한가롭고 원대케 하기에 간단한 시로써 적어 본다
스님을 만나서
뜨락을 거닐며
이씨의 산속 정자를 찾아가서
14일 밤 여러 사람들은 다 깊은 잠에 빠졌는데, 소나무 아래 홀로 앉아 달을 바라보며 짓다
시냇가에서
우연히 읊다
백온이 찾아왔기에 취중에 써서 보여 주다
어스름 저녁에
저녁 경치를 보며 당나라 시인의 시에 차운하다
7일에
병중에 백온을 만나서
시를 짓다
배를 띄우고
시끄러워서
쌍곡 마을에서 자며
백련암에서
영령정에서
텅 빈 산에서
초5일 저녁 종형 태충 씨를 맞이해 함께 삼주(三洲)의 초가에서 묵었다. 때는 초승달이 벼랑에 떠 있고 국화 또한 어여뻐서 사랑할 만했다. 태충 씨는 예전에 살던 벽계(蘗溪)가 생각난다고 해서 날이 밝자 떠나 버리는 바람에 중양일(重陽日)에 술을 마시며 함께할 이가 없었다. 이에 느낌이 없을 수가 없어서 시를 지어 보인다
봉수령을 넘으며
절에서 자며
덕여 임홍재에게 시를 지어 보이다
조계사에서
청 장로(淸長老)에게 주다
서쪽 시냇가에서 숙장을 그리며
백온과 헤어지면서
중양절 이틀 전에 재대에게 시를 부치며
친구를 보내고서 짓다
백온을 보내고 산을 나서며
이씨 집에서 가무를 구경하면서
귀가하기 전 하룻밤을 여러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이별했다. 이에 오언 고시 두 수를 지어 백온 이위에게 주며
절에서 여러 벗들이 배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것을 보내며
일찍이 강화도를 출발했다가 월곶에 이르러 배를 타고서
후릉(厚陵) 재사(齋舍)에서 침랑(寢郞) 김기하(金器夏)에게 주다
뜨락의 느티나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영령정에서
그윽한 흥취에 매양 홀로 가나니
쭉 솟은 소나무에 시냇가 정자라
얇은 서리 저 멀리 하얗게 흐르고
석양빛에 뭇 산들은 더욱 푸르러
저 세상이 다시 나를 잡지 못할 터
때때로 못에 비친 별 바라다본다
텅 빈 산엔 풍경 소리 울리는데
긴긴 밤 절로 맑은 바람 소리뿐이라
泠泠亭
幽興每獨往。高松溪上亭。
微霜遠流白。返照亂峰靑。
無復俗拘我。時看潭映星。
空山有風珮。永夜自泠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