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대사 시선
駕鐵舩遊海 철선(鐵船)을 타고 바다를 유람하며
吹無孔笛人 구멍 없는 피리를 불어 사람을 놀라게 하네.
探龍頷下寶 용(龍) 턱 밑의 보물을 찾아
爲爾掌中珍 그대 손안의 보배로 삼아라.
日照寒光動 해는 찬 빛을 비추어 움직이고
山搖翠色新 산은 푸른빛 흔드니 새롭구나.
大珠眞實處 큰 보석 같은 청규의 진실한 곳
退皷打三巡 물러나 큰 북을 세 번 치는구나.
≪중관대사 시선≫, 해안 지음, 배규범·구봉곤 옮김, 18쪽
호구청규가 무엇인가?
임제종의 규칙이다. 호구는 지금의 중국 장쑤성에 있는 후추산(虎丘山)이다. 중국 임제종의 성지다.
구멍 없는 피리를 어떻게 부는가?
불가능하다. 철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도 당시에는 불가능했다.
불가능한 일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불법을 설명하고 깨우치기 위해서다. 일상 언어로는 불법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말의 상식적인 이해가 끊어진 지점에서 인식이 전환된다. 새로운 인식은 깨달음을 낳는다. 선사는 그것을 찾아 나선다.
선사는 언어를 부정하나?
일상 언어의 불완전성을 진작부터 깨달았다. 선문답을 하고, 시의 형식을 파괴하고, 금기를 어겨 언어에 갇힌 불완전한 인식의 틀을 깨뜨린다.
해안은 시의 형식을 어떻게 파괴했나?
≪중관대사 유고≫에는 일반적인 5언, 7언 절구나 율시도 많지만 20행 이상의 4언시도 여럿 있다. 아예 규칙을 벗어난 파격의 시도 있다. 게송(偈頌)이라 부르는 선시다.
어떤 금기를 어겼나?
한시에서 같은 한자를 겹쳐 쓰는 것은 금기다. 해안은 “非魚魚樂本無知”와 같이 첩자를 이용한 표현을 즐겨 썼다. “물고기가 아니면 물고기의 즐거움 본래 모르는 법”이라는 뜻이다.
그 외에는 어떤 표현 방식을 사용했나?
유가 문사들과 주고받은 시에서 고사를 많이 인용했다. 불법을 전하는 교화시나 산중의 일상생활을 그린 일상시에서는 고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상대에 맞는 방법을 쓰는 방편설(方便說)이다. 불가의 시승(詩僧)이 유가 문사에 비해 수준이 낮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시승이란 무엇인가?
교화나 개인의 문학 취향을 위해 한시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고승(高僧)을 말한다.
불가 문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중생 교화를 목적으로 생겨났다. 효과적인 교화를 위해 문학의 형태를 빌렸다. 해안 이전의 불가 문학은 문학 자체의 순수성보다 교화를 더 중시했다.
해안 이후의 불가 문학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교화만을 목적으로 창작하지 않았다. 자신의 서정성을 표출하기 위해 쓰기도 했다. 특히 제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나그네로서 느끼는 애상을 나타낸 시가 그렇다. 유가 문사들과 교유한 시에서도 벗과 만나는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드러난다.
서정성 표출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고려시대 불가 문학은 교화 내용을 산문으로 직접 표현한 어록 형태였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개인의 서정을 표현하기 쉬운 시를 많이 창작했다. 창간 형식도 문집으로 바뀌었다.
중관해안은 누구인가?
조선 중기 선승으로 청허휴정의 제자다. 자세한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뇌묵처영, 사명유정과 함께 승병을 이끌었다. 불가 문학을 부흥해 더욱 다양하고 융성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배규범이다. 중국 화중사범대학교 교수다.
2762호 | 2015년 10월 6일 발행
조선의 시승, 해안 중관대사
해안(海眼)이 짓고 배규범과 구봉곤이 옮긴 ≪중관대사 시선(中觀大師詩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