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염없이 여행하다
1770년 제주 선비 장한철이 서울에서 치르는 회시에 응시하기 위해 뱃길에 오른다. 풍랑을 잘못 만나 5개월간 망망대해를 표류한다. 먼 남쪽 나라까지 떠내려갔다가 중국 상선을 얻어 타고 일본으로 향한다. 한라산이 보이는 곳까지 왔으나 안남 사람들에 의해 돛도 없는 배에 실려 버려진다. 가까스로 청산도에 닿아 목숨을 건진다. 스물아홉 일행 중 여덟만 살아남았다.
≪표해록≫, 장한철 지음, 김지홍 옮김
문장으로 이름 높은 조선 선비들의 문집에서 개성 여행기만 뽑아 엮었다. 사람에 따라 같은 곳에 대한 감상과 표현도 가지각색이다. 박연폭포는 보는 눈에 따라 “은하수가 거꾸로 걸린 듯”도 하고, “하늘이 열리며 노을이 떨어지는 듯하고 구름이 걷힌 뒤 용이 길게 걸려 있는 듯”도 하다. 채수는 “와 보지 못했다면 항아리 속 초파리 꼴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했다.
≪조선 사람들의 개성 여행≫, 채수 외 지음, 전관수 옮김
이병주 선생이 ≪동방견문록≫, ≪하멜 표류기≫와 더불어 3대 여행기로 꼽은 책이다. 1488년 제주에서 나주행 배를 탄 최부는 풍랑을 만났다. 파도에 배의 절반이 잠기기도 하고 암벽에 부딪칠 뻔하기도 하면서 하염없이 떠다니다 명나라에 도착했다. 귀국 직후 성종의 명을 받아 견문록을 기록했다. 강남 지역부터 북경 일대까지 중국의 문화와 풍속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최부 표해록≫, 최부 지음, 김지홍 옮김
송(宋)대 사천부터 소주 지방까지 장강을 따라 내려온 여행을 기록했다. 뱃길 여행은 2008년 큰 지진을 겪은 사천의 도강언 근처에서 시작된다. 청성산과 아미산을 두루 구경하고, 지금은 댐이 건설되어 예전 모습을 볼 수 없는 삼협을 지나, ‘여산 진면목’으로 유명한 여산을 거쳐 소주로 돌아온다. 중국의 대표적 명승지를 콕콕 짚은 알찬 여행 패키지다.
≪오선록≫, 범성대 지음, 안예선 옮김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혁신시키고 충실을 기할 수 있게 한” 일대 사건과도 같은 여행의 기록이다. 1786년 로마에 첫발을 디디고 편협한 사고 속에 갇혀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시금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가 품었던 예술에 대한 이상과 열정, 정신의 성숙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기 천줄읽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2777호 | 2015년 10월 23일 발행
가을, 하염없이 여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