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세기 초 퀘벡 지역과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 낸 소설이다. 루이 에몽은 퀘벡 지역의 자연과 현실 생활이 제공하는 모델의 사실적 묘사를 원칙으로, 당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삶의 진지하고 깊은 의미를 정체성 추구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마리아 샵들렌의 가족은 퀘벡의 페리봉카 지역에 산다. 이곳의 사계절은 찰나와도 같은 봄, 태양이 작열하는 짧은 여름, 겨울을 예고하는 가을, 추위와 눈으로 점철된 혹독하고 긴 겨울이다. 이들은 “땅을 가지기 위해서 숲과 싸워야” 하고, “살려면 죄다 줄여 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하고, “다른 집들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모든 걸 다 제 힘으로 해야만” 한다.
이런 인적 드문 외진 곳에서 사는 여인에게 환희를 가져다준 남자는 프랑수아 파라디였다. 숲에서 일곱 달의 겨울을 보내고 봄이면 돌아오는 프랑수아는 마리아에게 봄이었다. 하지만 마리아의 권태로운 삶에 출구가 되었던 이 겨울의 인간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로렌조가 그녀의 두 번째 청혼자가 된다. 미국 대도시의 생활이라는 신기루가 권태로운 일상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을 계속해서 부추긴다. 그러나 마리아는 “세속적인 쾌락, 안락함이나 허영심을 채워 주는 그저 그런 이점들만”을 말했던 로렌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소설은 샵들렌 부인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남편과 함께 땅과 싸워 왔던 어머니는 평범한 여자들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 역경의 삶을 이겨 냈다. 오랜 숙고 끝에 그녀도 어머니와 똑같이 이 고장에서 자기 종족과 함께 개간된 땅 위에 우뚝 서겠다는 결심을 한다. 마음속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여성으로서 짊어진 의무”가 재차 그녀의 그런 마음을 부추긴다. 그녀는 가뇽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프랑수아나 로렌조에 비해 외모나 물질적 조건이 떨어지는 농부 가뇽이 최종적으로 마리아의 배우자로 선택된 것은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아닌 그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200자평
20세기 초, 조국을 떠나 퀘벡 지역에 정착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삶을 다루었다. 퀘벡 현대 소설의 효시다. 당시 퀘벡 지역과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삶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외진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마리아 샵들렌에게 나타난 청혼자들과 그녀의 선택을 정체성 추구의 관점에서 그린다.
지은이
루이 에몽(Louis Hémon, 1880∼1913)은 1880년 프랑스의 브레스트(Brest)에서 태어났다. 소르본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가 작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하게 된다. 1904년 스포츠 잡지였던 ≪르 벨로(Le Vélo)≫ 지에 단편소설인 <강(La Rivière)>을 발표하면서 소위 문학에 입문하게 된 그는 이때부터 이 잡지의 런던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편의 스포츠 기사와 짧은 창작 글들을 기고한다. 1908∼1909년에 걸쳐 첫 장편소설 ≪콜랭마야르(Colin-Maillard)≫(1924)를 집필한다. 이어서 두 편의 소설 ≪싸우는 멀론, 복서(Battling Malone, pugiliste)≫(1926)와 ≪리푸아 씨와 네메시스(Monsieur Ripois et la Némésis)≫(1950)를 집필한다. 이 소설들은 모두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1911년 캐나다로 가 보험회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유럽에 캐나다를 알리기 위한 글들을 쓴다. 1912년 몬트리올을 떠나, ≪마리아 샵들렌≫의 사뮈엘 샵들렌으로 분한 사뮈엘 베다르(Samuel Bédard)를 만난다. 그의 집에 머물며 이 작은 지역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기록들이 이 소설의 기본 골자가 된 것이다. 1913년 불의의 기차 사고로 죽는다.
옮긴이
정상현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아미앵의 피카르디 대학교에서 <디드로의 윤리관: 절충주의와 대화주의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드로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이 있으며, ≪입싼 보석들(Les Bijoux indiscrets)≫(2007)과 ≪부갱빌 여행기 보유(Le Supplément au voyage de Bougainville)≫(2003)를 번역했다. 퀘벡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와 미학을 연구 중이며, 그 결과물로 ≪퀘벡 소설의 이해≫(2007)를 출판했고, 퀘벡의 국민 작가인 안 에베르(Anne Hébert)와 ‘조용한 혁명기’ 작가인 제라르 베세트(Gérard Bessette)와 레장 뒤샤름(Réjean Ducharme) 등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준비 중이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다.
차례
마리아 샵들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래. 그래서?
그가 준비했던 독백은 더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을 망설였다. 사실 그는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야 작은 소리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어요….
평생을 캐나다의 숲 가장자리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숲에서 불운이 닥쳐 길을 잃은 무모한 사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따금 탐험대가 눈이 녹고 봄이 되면 그들의 시신을 찾아서 가지고 온다. 퀘벡 지역, 특히 먼 북쪽 지방에서 이 말은, 끝이 없는 숲 속에서 어느 날 방향을 잃게 되는 위험을 드러내는, 불길하고 유일한 의미를 지녔다.
(…)
−이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는 그저 하느님 손바닥에 있는 어린아이들이라는 거야. 그가 말했다. 프랑수아는 이곳 남자들 중에서, 숲에서 살 수 있고 그 길을 내는 데 가장 뛰어난 사내였지. 타지 사람들은 그를 안내인으로 고용했고, 그가 늘 그 사람들을 아무 탈 없이 그들 집으로 데리고 갔어. 그런 그가 길을 잃었어. 우린 그저 어린아이들이라고…. 자기 집이나 자기 땅에 있을 때, 자기가 아주 세고 하느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숲 속에서는….
샵들렌 씨는 머리를 흔들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우린 그저 어린아이들이라고….
−≪마리아 샵들렌≫, 134~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