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금 양모피≫ 3부작은 규모와 내용 면에서 매우 방대한 작품이다. 콜키스에서 금 양모피를 약탈하기까지 아르고호 선원들이 겪는 모험, 원정대장 이아손과 콜키스 공주 메데이아의 결합, 이들의 갈등을 그렸다. 그중 메데이아의 비극은 에우리피데스, 코르네유 등 여러 작가들이 개작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릴파르처의 메데이아는 조금 특별했다.
리처드 커니는 이방인, 신, 괴물을 타자성의 주요 상징으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메데이아는 타자성의 대표라 할 만하다. 그녀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증손녀이며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 더군다나 그녀의 고향 콜키스는 그리스인들에겐 낯설고 먼 이국이다. 그릴파르처는 그녀의 타자성에 주목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리스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내쳐지는 메데이아를 통해 타자와 타자성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릴파르처의 메데이아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에우리피데스의 전작을 참고하면서도 메데이아의 성격을 훨씬 더 섬세하게 구현했다. 그녀의 극적 행동에 개연성이 생기면서 복수를 위해 자식을 죽인 비정한 어미라는 악녀 이미지도 어느 정도 약해졌다.
서로 다른 문명의 결합은 갈등을 동반한다. 메데이아가 선택한 남자는 그리스 영웅 이아손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사회에서 메데이아는 야만을 벗지 못한 이방인, 타자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결합은 갈등과 불행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데이아도 늦게나마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 “불행해지기 위해 만난 우리, 불행 속에서 헤어집니다, 안녕히!” 그녀가 이아손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다.
200자평
≪금 양모피≫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결합과 갈등은 문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신화적 소재다. 하지만 그릴파르처의 희곡은 그리스인들에게 배척당하는 메데이아를 통해 타자와 타자화라는 현대적 주제를 선취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지은이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는 1791년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생애의 대부분을 공직에서 보냈다. 1814년 국세청의 세무사로 시작해 1818년 재무부의 사무관, 그 뒤 재무부 문서국의 국장이 되었으나, 더 이상 승진이 되지 않자 1856년 은퇴했다. 평생 스스로와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이반과 분열의 고통을 겪었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과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생 동안 자기 자신에게 매달려 스스로를 분석한 자기관찰자였다. 그로 인해 자기혐오에 빠진 그릴파르처는 남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에 사랑의 힘을 평가절하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으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소외당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릴파르처에게 사랑은 어두운 숙명적인 힘으로 묘사된다. 그런 그에게 삶의 구원은 문학과 음악이었다. 최고의 진리는 문학예술이었고, 어두운 삶과 현실로부터의 도피처 역시 문학예술이었다. 우연의 연속이고 일관성 없으며 그림자처럼 허망하기만 한 삶으로부터 예술로 도피한 것이다. 예술은 그에게 삶이 거부한 것을 충족시켜 주고 보상해 주었다. 예술가는 삶에서 분리되어 고독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릴파르처는 삶을 희생한 채 문학 창작에만 온 힘을 쏟았다. 주로 그리스 전설(傳說)이나 사실(史實)을 제재로 비극과 사극을 썼으며 대표작으로는 ≪사포(Sappho)≫와 ≪금 양모피≫ 등이 있다. 1872년 1월 21일 빈에서 81세로 숨을 거두고 슈베르트 공원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윤시향은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논문 <브레히트의 반파시즘연극 연구>(1991)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브레히트의 연극세계≫(공저), ≪하이너 뮐러의 연극세계≫(공저), ≪독일 문학의 장면들−문학, 영화, 음악 속의 여성≫(공저), ≪15인의 거장들−독일어권 극작가 연구≫(공저), ≪서사극의 재발견≫(공저), ≪유럽 영화예술≫(공저), ≪소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클라이스트≫,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시체들의 뗏목≫ 등이 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여성연극인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연극학회 편집위원, 한국뷔히너학회 편집위원, 한국I.T.I. 감사, 한국공연예술원 이사 등을 지냈으며 연극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메데이아: 고향에서는 가장 귀한 여자였는데
여기서는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며
이 땅의 관습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 날 천대하고, 깔보며
겁 많은 야만인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천한 여자, 가장 열등한 여자라고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