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과학철학이 칸트의 비판적 철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과학철학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칸트적 의미의 선험적 지식이 불가능함을 밝혔는지를 명료하게 보여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칸트의 인식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위한 적합한 인식론인지의 여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만약 칸트의 인식론이 새로운 물리학 이론에 적합한 인식론이 아니라면, 인식론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 또한 담고 있다.
서양 자연과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론과 사상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면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후 과학이 급속도로 분화하면서 이러한 상호 작용은 어려워졌다. 그래서 아인슈타인과 같은 물리학자는 이론 물리학이라는 고유한 학문 분과 내에서의 여러 성과들 및 문제들에 익숙해져야 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암시를 얻기 위해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자연철학적 논의의 전통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론과 사상의 상호 작용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둘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여러 모로 곤란하다. 사상에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론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이론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이론을 극복할 수 없다. 이는 서양과학의 수용자였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서양과학의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이해와 극복이 어려워진다. 서양의 철학자들 스스로가 어떻게 20세기의 과학을 이해하고자 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이 책은, 우리 자신이 서양과학을 이해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200자평
아인슈타인을 만나 칸트 철학이 바뀌다!
상대성 이론은 철학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아인슈타인 이전, 물리 과학에 관심이 있었던 철학자들은 뉴턴의 용어로 사고했다. 철학에서 뉴턴적인 전통은 칸트 철학에 의해 대변되는데, 칸트는 인간 이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역학의 법칙들을 정당화하려 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을 배워 나갔던 철학자들은 칸트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야 했고 이 과정은 단 한 번의 급진적인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서히 이루어졌다.
지은이
한스 라이헨바흐는 189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의 학문 수준은 서양 문화권에서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철학, 수학, 물리학 등에서 걸출한 학자들이 배출되고 있었으며, 수학자와 물리학자를 포함한 자연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주제가 갖는 철학적 의의에 대해 토론하는 데 거부감이나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라이헨바흐는 이와 같은 활발하고 진지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베를린대학, 괴팅겐대학, 뮌헨대학 등을 거치며 수리물리학자 막스 보른,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의 지도 아래 수학, 물리학, 철학을 연구했다. 당대의 자연과학자들과 활발한 지적 교류를 나누며 베를린대학을 중심으로 이른바 ‘논리경험주의’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철학이 사변적인 개념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동의하며 상호 협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치로부터 추방되기 전까지 베를린대학에서 자연과학적 지식에 적용할 수 있는 확률이론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당시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되었던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진행했다. 나치의 정치적 압력을 피해 1933년부터 터키의 이스탄불대학 철학과 학과장을 5년간 맡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확률이론과 기호논리학을 체계화했다. 이러한 작업의 결실은 ≪확률론≫, ≪기호논리학 기초≫에 담겨 있다. 미국 철학자 찰스 모리스 등으로부터 도움을 얻어 1938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철학과에 재직하게 된 라이헨바흐는, 1953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활발하고 열정적으로 철학적 탐구를 진행했다. 확률이론, 기호논리학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철학 분야에 대한 연구 성과를 근간으로 삼아, 당대 최고의 과학이론이었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통계역학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옮긴이
강형구는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에 있는 금정산을 등산하며 자연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을 느꼈으며, 중학교 3학년 때 자연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물리학에 매료되었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흥미를 갖게 되어 2001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 서양철학과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2005년에 학부를 졸업한 후 강원도 홍천에서 육군 통신장교(학사장교 46기)로 근무하면서도 주말이면 틈틈이 홍천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역 이후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논리경험주의자인 한스 라이헨바흐의 상대성 이론 분석을 연구해 2011년에 이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 제목은 <라이헨바흐의 구성적 공리화−그 의의와 한계>였다. 석사 학위 이후 현재까지 교육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논리경험주의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모리츠 슐릭, 루돌프 카르납, 한스 라이헨바흐 등과 같은 논리경험주의의 핵심 인물들이 구축한 인식론적 성과가 철학사적으로 어떤 의의를 갖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중이다. 전자메일 주소는 hgkang82@hanmail.net이다.
차례
영역판 서문
1장 여는 말
2장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제기된 모순들
3장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제기된 모순들
4장 동등화로서의 인식
5장 “선험적인”이라는 표현의 두 가지 의미와 칸트의 암묵적 전제
6장 칸트의 전제에 대한 상대성 이론의 반박
7장 논리적 분석에 의해서 얻어진, 비판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
8장 대상 개념의 발전에 대한 하나의 예로서 상대성 이론의 지식 개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물리적 대상의 개념은 그 개념이 공식화하고자 의도하는 실재 및 이성에 의해서 동등하게 결정된다. 따라서 칸트가 믿었던 것처럼, 대상의 개념 속에서 이성이 필연적이라고 여기는 요소를 선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요소들이 필연적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경험이다.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