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르카는 ≪집시 로만세≫를 1928년 마드리드에서 출간했고, 즉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동시대 시인들은 모두 이 시집에 큰 영향을 받았다. 호르헤 기옌(Jorge Guillén)은 “우리 중 누구도 그 시집에 관해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고 역시 27세대 시인이었고 197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비센테 알레익산드레(Vicente Aleixandre)는 이 시집을 격찬하는 편지를 남겼다. 살바도르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부뉴엘은 노골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모두 18편의 시로 구성된 ≪집시 로만세≫에서 로르카는 로만세(romance)라는 시 형식에 집시적 정서, 구술로 전해지는 이야기, 신화적인 이미지 등을 담아낸다. 스페인 문학에서 가장 민중적인 시 형식인 로만세는 또한 초현실주의적인 은유와 만나서 시적인 밀도를 극적으로 끌고 간다. 집시들은 초월적인 어떤 힘에 의해 끌려 다니는 존재로 묘사되거나, 인종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로만세는 천 년 동안 사용된 시 형식이다. 중세에는 서사시에 사용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형식이었고, 근대에 들어서 감정과 이미지를 표현하는 서정시로 발전했다. 로만세가 구술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로르카에게 스페인은 안달루시아였고, 안달루시아는 집시의 세계였다. 안달루시아 전통 음악이자 집시들의 영혼이 담긴 칸테 혼도는 로르카에게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또한 그의 동성애적 감각은 한쪽으로는 소외된 인물에 대한 애정으로, 다른 쪽으로는 사랑에 대한 비극적 비전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전통에 뿌리를 둔, 자전적인 문학적 재료들이 모더니즘의 언어와 만나면서 로르카의 문학은 신화적인 매력을 얻게 된다.
200자평
스페인 27세대 시인인 페데리고 가르시아 로르카의 대표 시집을 소개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민중적인 로만세 형식에 구술로 전해지는 옛이야기와 신화적 이미지를 담았다. 집시 특유의 음울함과 낭만, 정열이 초현실주의적인 상징과 은유를 통해 독자를 매혹한다.
지은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는 1898년 그라나다 지방의 푸엔테바케로스(Fuente Vaqueros)에서 대지주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마드리드로 가기까지 20년 동안 로르카는 그라나다의 라베가 평원에서 안달루시아의 예술적 유산을 먹으며 성장했다.
1919년 로르카는 그라나다를 떠나 10년 동안 마드리드 국립대학교의 레시덴시아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1920년대 스페인은 예술적 매혹이 넘쳐 났던 시기였으며, 수많은 천재들이 동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했다. 시에는 후안 라몬 히메네스, 헤라르도 디에고, 호르헤 기옌, 페드로 살리나스, 다마소 알론소, 라파엘 알베르티가 있었고, 회화에는 살바도르 달리가, 영화에는 루이스 부뉴엘이 있었다. 로르카는 히메네스에게서 시를 배웠고, 살바도르 달리, 루이스 부뉴엘과 함께 우정을 나누며 예술적인 비전을 교감했다. 이곳을 터전으로 모더니즘을 흡입하며 시를 쓰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1928년까지 머물렀다.
1920년에 로르카는 희곡 <나비의 저주(El maleficio de la mariposa)>를 무대에 올렸으나 관객의 반응은 냉담했다. 1921년에는 ≪시집(Libro de poemas)≫을 출간함으로써 공식적인 시인이 되었다. ≪시집≫을 출간한 후 칸테 혼도를 시로 쓰기 시작했고, 이 시들은 10년 후에 ≪칸테 혼도의 시(Poemas del Cante Jondo)≫(1931)로 출간되었다.
1927년에 역사극 <마리아나 피네다(Mariana Pineda)>를 무대에 올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에 시집 ≪칸시오네스(Canciones)≫를 발표했다. 그러나 로르카를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로르카로 인식시킨 작품은 시집 ≪집시 로만세(Romancero Gitano)≫(1928)였다. 시인은 소외받는 집시라는 현실을 신화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킨 다음, 그것에 꿈의 언어로서의 초현실주의를 덧입힌다.
1929∼1931년에 로르카는 뉴욕에서 몇 달을 보내며 새로운 현대 도시의 날카로움을 경험한다. 유럽에서는 표현될 수 없는 신세계의 도시적 분위기는 로르카의 내면에 초현실주의에 대해 더욱 강한 욕구를 불어넣었다. 시집 ≪뉴욕의 시인(Poeta en Nueva York)≫과 희곡 <관객(El público)>은 거의 같은 시기에 뉴욕과 쿠바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써 내려간 것이다.
1931년부터 스페인 공화 정부 교육부의 지원으로 로르카는 ‘라 바라카’라는 극단을 창설하고 연극을 쉽게 볼 수 없는 민중을 위해 순회공연을 다니게 된다. 이 시기부터 극작가의 힘이 시인의 힘을 능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한 3대 전원 비극 <피의 혼례(Bodas de sangre)>, <예르마(Yerma)>,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La casa de Bernarda Alba)>은 이때부터 1936년 처형되기 전까지 집필된 것이다.
1936년에 들어서면서 스페인에는 파시즘의 유령이 떠돌기 시작했다. 로르카는 동성애자, 집시 옹호자로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은 시민전쟁에 돌입했고 로르카는 시인이자 고향 친구인 루이스 로살레스의 집에 피신했다가 그라나다 국민전선 사령관에 의해 체포되었다. 1936년 8월 20일 새벽, 청색 하늘 밑에서 로르카는 임시 감옥에서 끌려 나와 비스나르와 알파카르 사이에 있는 벼랑에서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다.
옮긴이
전기순은 시학 연구로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교수, 외국문학연구소 소장, 서울캠퍼스 도서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페인 문학과 영화에 대해 강의하고 책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지금은 세르반테스에 대한 문학적 전기를 집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의 안달루시아≫, ≪스페인 이미지와 기억≫, ≪알모도바르 영화≫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 ≪돈 후안 외(外)≫, ≪사랑에 관한 연구≫, ≪히메네스 시선≫, ≪관객≫ 등이 있다.
차례
달의 로만세
프레시오사와 바람
입씨름
몽유의 로만세
집시 수녀
부정한 유부녀
검은 슬픔의 로만세
산 미겔(그라나다)
산 라파엘(코르도바)
산 가브리엘(세비야)
세비야 가는 길에서 안토니토 엘 캄보리오의 체포
안토니토 엘 캄보리오의 죽음
사랑에 죽은
부름 받은 남자
스페인 민병대의 로만세
산타 올라야의 순교
말 탄 돈 페드로의 유혹(몇 개의 연못을 지나가는 로만세)
타마르와 암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 집시들의 도시!
모퉁이마다 깃발들.
달과 호박
설탕에 절인 체리들.
오, 집시들의 도시!
너를 보고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계피 탑들이 있는
고통과 사향의 도시.
*
밤이 도착하면,
밤보다 더 밤 같은 밤이 도착하면,
집시들은 용광로에서
태양과 화살들을 담금질한다.
심하게 부상 입은 말
마을의 모든 문을 두드린다.
유리 수탉들 노래를 하고 있다.
헤레스데라프론테라 근처에서.
벌거숭이 바람이 모퉁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
밤에, 은빛 밤에
밤보다 더 밤 같은 밤에.
―<스페인 민병대의 로만세>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