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돌간족은 러시아 북극권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으로서 러시아에서 소멸 위기에 처한 소수민족을 거론할 때 10위 안에 든다. 현재 인구는 약 5500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타이미르 반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야쿠트 공화국에 일부가 살고 있다. 혹독한 지리 조건에서 이들은 순록 사육과 물고기 잡이, 야생 순록과 북극여우 사냥으로 살아간다.
대다수의 북방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돌간족의 샤머니즘적 전통 세계관에 따르면 세계는 상, 중, 하로 이루어져 있다. 상층부, 중간부, 하층부의 세계가 그것이다. 상층부 세계의 신들과 영혼들은 세 범주로 나누었는데, ‘이치(иччи)’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어느 대상으로나 들어갈 수 있는 존재들, ‘아이이이(айыы)’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혼들, ‘아바아시(абаасы)’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악한 영혼들이다. 중간부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하층부에는 반인반수의 괴물들이나 식인괴물들이 산다.
이 설화집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막둥이나 불구자가 여러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여 영웅으로 거듭나는 영웅담, 자유로이 동물로 변신해서 과제를 성공하거나, 재기와 힘을 겨루는 과정을 묘사하는 마법담, 아이나 가난한 처녀가 놀라운 지혜를 발휘하여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내용의 일상담 등 돌간족의 다양한 이야기 26편이 실려 있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안동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이반 투르게네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이반 촌킨, 그 뒤섞인 세계>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체호프 아동 소설선≫(지만지, 2014), ≪북아시아 설화집 2(한티족, 만시족)≫(이담북스, 2015) 등이 있다. 현재 학생들과 글 쓰는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캅카스 소수 민족의 삶과 문화에 대한 글을 발표하고 있다.
차례
들꿩과 농어의 전쟁
노인과 토끼들
청년 황제와 농부의 딸
여자와 곰
백조로 변한 샤먼들
대지의 주인 영혼
대머리 청년
외눈박이 아가씨
온통 털로 덮인 사람들
작은 천막의 불꽃
리이피르다안
고아 형제
세 형제
흰올빼미
꾀 많은 여우
새와 동물의 전쟁
리이비라
농부 노인과 노파
세 청년
라아이쿠
젤레즈나야 샵카와 코스탸노이 포야스
행복한 날, 불행한 날
노인과 노파
천상에서 온 약혼자
다른 세계의 사람
마마 귀신
해설
옮긴이에 대해서
책속으로
옛날에 한 여자가 가을에 젖먹이 아이와 함께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렇게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곰의 굴에 이르렀다. 곰 굴로 들어가서 말했다.
“나는 어쨌든 죽을 수밖에 없어. 만약 나를 잡아먹고 싶으면 먹어라.”
그러나 곰은 굴 깊숙이 물러설 뿐이었다. 여자는 살아남았다. 거기서 그들은 곰과 함께 잠이 들었다. 곰은 겨울에 두 번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한겨울인 성 니콜라이의 날에 잠이 깬다고 한다. 그렇게 곰이 잠이 깼다. 여자가 곰의 발을 핥아먹었고 그렇게 해서 배불리 먹었으며 아이도 배부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겨울잠에 빠져들었다.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