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6세기 조선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의 문집이다. 아들 만고(萬古)가 집안에 전하는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편차해 간행한 것이다. 편찬자의 서(序)와 발(跋)이 없어 편집 및 간행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현재 1633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 전한다. 분량은 3권 1책으로 총 86판으로, 부록된 ≪풍고 시집≫은 4판으로 시 21수가, ≪청계 시집≫은 3판으로 시 16수가 실려 있다.
양사언의 시 작품은 수필 고본(手筆稿本)으로 전해진 것 외에 양만고가 산재한 작품을 일일이 수집해 수록한 것도 적지 않고, 양재웅 소장 ≪봉래 유묵≫에도 별도로 작품이 전한다. 그의 시 작품을 주제별로 분류해 보면 자연·명승지 57편, 술회(述懷) 57편, 차운(次韻) 44편, 증시(贈詩) 43편, 제시(題詩) 15편, 송별(送別) 14편, 만사(輓詞) 13편, 제진(製進) 12편, 교분(交分) 10편 순이다.
양사언은 자연·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작품과 자신의 회포를 노래한 시가 많은데, 특히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금강산 만폭동 바위에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글귀를 새기는 등 금강산을 특별히 여겼다. 차운한 시편도 대개 유람하면서 정자나 관가의 현판을 보고 지은 것이고, 증시·송별시·교분시는 절친한 친구들과 화답하며 지은 것이다. 내직에 있으면서 지은 제진시(製進詩) 12편은 관료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시사한다.
제가의 평대로 그는 이인(異人)으로 태어나 내외의 방술(方術)에 몰입했고, 유자(儒者)이면서도 불교를 가까이 했으며, 만년에는 선도(仙道)에 빠졌던 인물이다. 남사고(南師古)에게서 역술(易術)을 배우기도 했다. 조경(趙絅)이 <묘갈명>에서 “처음에는 이단(異端)을 가까이하더니/ 나중에는 선도(仙道)에 빠졌도다/ 이단과 선도를 하지 않았다면/ 넉넉히 요천에 드실 텐데”라 평했다. 또한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양사언을 두고 신선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고, 그 글씨 또한 그 인물과 같은데, 사람들이 그 글씨가 진속(塵俗)을 벗어난 줄은 알아도 그 시가 세상 사람의 말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세속의 태를 벗어난 천진하고도 청아한 시풍을 높이 평가했다. 이 같은 인물평은 양사언이 여느 사람과 구별되는 취향을 가졌음을 잘 보여 주며,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200자평
양사언(楊士彦)은 16세기 조선의 문인이자 서예가로 금강산을 사랑해 자신의 호를 ‘봉래(蓬萊)’라 했다. 그는 초년에는 시서와 거문고를 벗하며 안빈낙도의 흥취를 즐겼고, 중년과 말년에는 선정을 베풀면서도 산수 자연을 유력하며 도가적 흥취에 몰입했다. ≪봉래 시집≫은 시(詩)·부(賦)·기(記)·제문(祭文)·행장(行狀) 등 여러 형식의 글 69편을 정선해 원전의 순서대로 실었다.
지은이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은 조선 전기의 문인·서예가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이다. 조선 중종 12년(1517)에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했다.
그는 서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명종 1년(1546)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함흥·평창·강릉·회양·안변·철원 등 여덟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중간에 사임하고 쉰 때도 있긴 하지만, 근 40여 년간 관직에 있었다. 내직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을 외직에서 보낸 셈이다. 부임하는 고을마다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고, 안변 군수로 있을 때는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만년에 지릉(智陵) 화재 사건으로 해서(海西)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2년 뒤 풀려나서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선조 17년(1584), 68세 때의 일이다.
그는 해서와 초서에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일컬어졌다. 특히 큰 글씨를 잘 썼다. 금강산 만폭동 바위에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이라 새긴 글씨 외에도 도처에 많은 암각문이 남아 있다.
문집으로 ≪봉래 시집≫이 있으며, 별도로 ≪봉래 유묵≫이 전한다. 아우 사기(士奇), 사준(士俊)과 함께 문명을 떨쳐 중국의 미산삼소(眉山三蘇)에 견주어졌다.
옮긴이
처인재 주인 홍순석은 용인 토박이다. 어려서는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에서 소학까지 수학했다. 그것이 단국대,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게 된 인연이 되었다. 지역문화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강남대 교수로 재임하면서부터다. 용인, 포천, 이천, 안성 등 경기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에 20여 년을 보냈다. 본래 한국문학 전공자인데 향토사가, 전통문화 연구가로 더 알려져 있다. 연구 성과물이 지역과 연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성현 문학 연구≫, ≪양사언 문학 연구≫, ≪박은 시문학 연구≫, ≪김세필의 생애와 시≫, ≪한국 고전문학의 이해≫, ≪우리전통문화의 만남≫, ≪이천의 옛 노래≫ 등 40여 권의 책을 냈다. 짬이 나면 글 쓰는 일도 즐긴다. ≪탄 자와 걷는 자≫는 잡글을 모은 것이다.
차례
1. 오언절구(五言絶句)
승축산수도에 쓰다(題僧軸山水圖)
금강산(金剛山)
운상인에게(贈雲上人)
반월산(半月山)
가평 현감 윤후에게 감사하며(謝上尹加平)
불정대에서 차식의 시를 차운하여(佛頂臺次紫洞韻)
2. 육언(六言)
<왕반산> 시를 차운하여 산의 바위에 쓰다(書山石次王半山)
3. 칠언절구(七言絶句)
보지 못하여(不見)
연(蓮)
아우 응거와 응룡에게 편지를 부치며(簡寄弟應擧應龍)
이치를 터득하다(自得)
구호(口號)
사구대에서 북쪽 바다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며(沙丘臺望北海諸嶠)
반월산에서 거문고를 타며(半月山彈琴)
삼일포(三日浦)
강선정에서 차식을 기다리며(降仙亭待車紫洞)
만경대에서 임억령의 시를 차운하여(萬景臺次林石泉韻)
구선봉(九仙峯)
보덕굴(普德窟)
금수정(金水亭)
선유담(仙遊潭)
강서사 주지에게(贈江西寺住持)
불정대(佛頂臺)
유점사(楡岾寺)
평안도사 김언형을 보내면서 세상의 단가를 본떠 짓다(送平安都使金彦亨步俗短歌而作)
풍악에서 놀며 차식에게 화답하다(遊楓嶽和車紫洞)
관동에 새 터전을 닦다(新卜關東)
낙산사(洛山寺)
금강산 천일대(金剛山天逸臺)
고죽 최경창에게(贈崔孤竹)
금옹에게(贈琴翁)
발연사 경석 위에 쓰다(題鉢淵磬石上)
4. 오언율시(五言律詩)
고산만 항복하지 않았네(孤山獨不降)
반월산(半月山)
금주산(金柱山)
비래정(飛來亭)
해오라기(鷺鷥)
풍악산 중대(楓嶽中臺)
장항령(獐項嶺)
산영루(山映樓)
유점사(楡岾寺)
불정암에서 월출을 보며(佛頂菴觀月出)
5. 칠언율시(七言律詩)
유선사(遊仙詞)
입춘을 축하하며(春帖字)
영상시에서 지은 시(迎祥試詩)
운악산(雲岳山)
퇴계선생 만사(退溪先生挽詞)
국도에서 놀며(遊國島)
청간정(淸磵亭)
6. 오언배율(五言排律)
송강 조경숙의 <영설>을 차운하여(次趙松江㓏叔詠雪)
7. 칠언배율(七言排律)
사촌의 시를 차운하여 회포를 풀다(次沙村韻仍遣懷)
8. 습유(拾遺)
휴정에게(贈休靜)
아내를 곡함(哭內)
백옥을 기리며(白玉贊)
고성 동각에서 차식의 시를 차운하여(高城東閣次車紫洞韻)
9. 오언고풍(五言古風)
경요허이대(瓊瑤許李臺)
감회가 있어서(有感)
국도가(國島歌)
밝은 달을 읊다(郎月吟)
10. 칠언고풍(七言古風)
소나무 껍질을 먹다(食松皮)
11. 장단구(長短句)
견우와 직녀의 노래(牛女詞)
백로를 노래하며(詠白鷺)
미인곡(美人曲)
12. 부(賦)
단사부(丹砂賦)
13. 문(文)
전책(殿策)
열운정기(閱雲亭記)
정장령포기(鄭掌令浦記)
효우문전(孝友門傳)
친구의 제문(友人祭文)
청허대사에게 부치는 편지(寄淸虛書)
또 부치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봉래산 모습을 그려 내고는
세속을 향하여 시를 구하네
사람을 만나 산수를 묻거든
나의 집과 산은 말하지 말게
-<승축산수도에 쓰다>, 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