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이 근사하다. 반딧불이가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
이방인: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엘리다가 나와 함께하길 원한다면, 그저 그녀의 자유의지대로 가면 되는 거죠. 엘리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른다.) 내 자유의지…! 방엘: 당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엘리다: (혼잣말로) 내 자유의지라고…! 방엘: 당신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시오! 당신이랑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소. 이방인: (시계를 들여다보며) …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마치 동전을 넣으면 흘러간 옛 노래를 틀어 주는 음악상자처럼 공연이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을 빌려 와 극을 완성시키는 제작 방식을 일컫는다.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가사와 멜로디의 대중음악이 무대 문법과 연출 의도에 따라 재구성됨으로써 원래 음악이 지니고 있는 친숙한 이미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무대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흘러간 대중음악에 무대의 …
1930년대 ‘출판 혁명’이 완성되고 ‘한국학’, ‘조선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되었다. 출판 기술의 축적과 경험 세계의 분석적 수용이 이루어진 것이다. 주자학의 족쇄가 완전히 풀렸다. 그 촉발제는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였다. ‘서론’, ≪한국 근대 언론 사상과 실학자들≫, 1쪽. ≪여유당전서≫는 어떤 책인가?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술을 정리한 문집이다. 활자본은 154권 76책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저술이 담겨 …
신은 있는가? 신은 있는가? 신은 선한가 악한가? 선과 악을 어떻게 판별하는가? 신이 없다면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은가?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인간은 자유 의지를 누릴 수 있는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수많은 문제가 이 한 권에 압축되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내가 사건 현장을 탐방하는 과정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사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둘은 모두 사이더커인이었고, 마찬가지로 모두 타이베이의 일류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 원주민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부락에서 상응하는 권위를 갖춘, 마찬가지로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이었다. 촨중다오의 사이더커 다야(達雅)인 바간(巴幹)은 역사가 우서 사건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본질은 머리 사냥이라는 …
언어 풍성하고 볼품없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며, 강하고 약한 것이 무슨 소용인가! 유골 단지에 묻힌 사람의 배는 풍성한가? 무기고에 있는 칼은 강한가? 거기에 온유하게 손을 뻗어라, 그러면 다정하게 행복이 흘러나온다, 신성이, 너로부터! 승리를 위해 붙들어라, 권력과 힘을, 그리고 이웃을 능가하는 명예를. ≪괴테 시선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우영 …
모바일 미디어 시대에 가사 노동과 일을 동시에 책임지는 일하는 여성은 과거보다 더 시간 부족을 느낄 수 있다. 모바일 미디어는 이러한 시간 부족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여성의 노동 강도와 밀도를 높이고 “오염된 시간”을 확대하는 데 일조한다. ‘일상의 테크노모빌리티와 젠더의 동학’, ≪모바일과 여성≫, 53쪽. 오염된 시간이란 뭔가? 여자들의 …
수재로 천거된 형의 입대에 지어 보내다(贈兄秀才入軍) 제18수 流俗難悟, 속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해 逐物不還. 외물을 쫓다 돌아오지 않네. 至人遠鑒, 지인은 멀리서 살피다 歸之自然. 자연으로 돌아가서는, 萬物爲一, 만물과 하나 되고 四海同宅. 사해와 한집을 이루네. 與彼共之, 만약 그대와 함께라면 予何所惜. 내가 어찌 애석해하리. 生若浮寄, 삶이란 부평초와 같아 暫見忽終. 잠시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는 것. …
어떤 사람이 “수명을 늘릴 수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덕으로 늘릴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안회(顔回)와 염백우(冉伯牛)는 덕을 행했는데, 어찌하여 수명을 늘리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들의 덕행으로 인해 이처럼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만약 안회와 염백우가 덕을 해쳤더라면 어찌 오래도록 이렇게 후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덕을 해치는 자들도 어떤 이는 장수합니다”라고 하자, …
과거에 영화와 텔레비전이 그랬듯 지금 게임은 가장 지배적인 문화 중 하나며, 현대를 읽는 매우 요긴한 렌즈다. 게임문화연구는 지금의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한 방식이다. ‘문화와 연구가 배제된 게임의 시대’, ≪디지털 게임문화연구≫, xiii쪽. 게임문화연구가 뭔가? 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다. 게임에 대한 모순된 관점을 넘어서려 한다. 어떤 모순 말인가? 게임을 미래 …
물의 요정들의 왕: 이게 땅이다…. 물의 요정: (옹딘의 손을 잡으면서) 땅을 떠나자, 옹딘. 빨리! 옹딘: 오, 그래! 땅을 떠나자…. 기다려! 이 침대 위에 있는 멋진 남자는 누구지…. 저 남자는 누구야? 물의 요정들의 왕: 그의 이름은 한스다. 옹딘: 정말 멋진 이름이네요! 그가 움직이지 않는데, 무슨 일인가요? 물의 요정들의 왕: 그는 죽었다…. …
3D 입체영상 기술은 영화제작 과정이 디지털화하면서 더욱 미세하고 정교한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기술의 고품질화는 관객에게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시각적으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영상을 구현하면서 관람의 쾌적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극장에서 안경을 착용하고 관람해야 하는 불편함은 관객에게 여전한 불만거리다. ‘기술과 영화의 진화, 퓨처시네마’, ≪퓨처시네마≫, x쪽. 관객의 불만이 …
사라지는 것에 대한 소설 굿 혹시 이번에 찾은 고향이 많이 변하진 않았나요? 변화야 어쩔 수 없지만 친숙한 것들이 사라져갈 때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자신이 사랑했던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죠. 오늘 작품은 김동리 작가의 <무녀도>입니다. 무녀인 어머니와 기독교인 아들의 갈등을 통해 사라지는 것, 잊혀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풀어냅니다. 주인공 모화는 …
아버지와 안개꽃 동독의 북한 유학생 이승호. 전향해 남한으로 온다. 1·4후퇴 때 가족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목적을 위해 야비해질 수 있는 인간이라 생각하며 미워하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처자식과 생이별을 한 그는 그리움과 자책감에 고통스러워하다 병을 얻었다. 승호는 안개꽃을 사 들고 그를 만나러 간다. <안개꽃>, ≪김용성 작품집≫, 김용성 지음, 장현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