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배가 옮긴 <<주역 계사전(周易 繫辭傳)>> 하늘과 땅과 인간의 길 하늘의 길을 어둠과 밝음, 땅의 길을 굳셈과 무름, 사람의 길을 어짊과 바름이라 하지만 사람은 위로 하늘, 아래로 땅과 함께 하므로 하늘과 땅과 인간의 길은 하나다. 역은 천지의 원리와 부합하여 능히 하늘과 땅의 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우러러서는 하늘의 무늬를 관찰하고 …
조윤형이 옮긴 ≪채봉감별곡≫ 은근한 정을 참지 못하여 필성은 편지를 띄우고 채봉은 수려한 인물에 반한다. 출세에 눈먼 아비를 제쳐 버리고 사랑의 탈주, 기생으로 전락, 기묘한 계책, 구원의 반전 그리고 해피엔딩이다. 근대미 물씬한 조선조의 러브 스토리를 즐겨 보시라. 취향이가 손에 수건을 들고 앞으로 들어오며, “참, 세상에 희한한 일도 있지요.” 채봉이 이 소리를 …
장현근이 옮긴 ≪논어≫ 어진 세상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자신을 절제하고 조화를 잃지 않으며 공부해 지혜를 얻고 군자가 되어 정치를 편다. 삶을 안정하고 도덕을 기준 삼아 배우고 가르친다. 실망에 무너지지 않고 될 때까지 계속한다. 공자가 말했다. “정책으로 이끌고 형벌로 질서를 잡으면 백성들이 법망만을 피해 가며 부끄러움이라곤 없는데,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
최운식이 현대어로 옮긴 ≪김학공전≫ 계급사회의 자유 주인과 노예는 일생을 함께한다. 노동은 노예의 것이고 자유는 주인의 것이다. 자유는 노동에서 소외되고 노동은 자유를 갈망한다. 불이 타오르고 피가 흐른다. 노자 중 박명석이라 하는 놈이 한 흉계를 생각하고, 저의 동료를 청하여 의논 왈, “우리가 매양 남의 종노릇만 한단 말인가. 지금 상전이 부인과 어린아이뿐이라. 이때를 …
차충환이 뽑아 교감한 ≪숙향전(淑香傳)≫ 서로 좋다면 무엇도 막지 못한다. 숙향과 이선의 사랑은 하늘에서 시작된다. 여인의 사랑은 도를 넘고 둘은 지상으로 떨어진다. 땅이 갈라지고 몸이 부서지는 징벌이 뒤따르지만 둘의 마음을 떼지 못한다. 해피 엔딩, 봉건 조선의 엄중함도 남녀의 사랑은 막지 못했다. “낭군이 이렇듯 고집하시니 숙향을 아직 이곳에 두고 우리만 가사이다.” 숙향을 …
신해진이 옮긴 ≪용문전(龍門傳)≫ 명나라는 밝은 나라였을까? 명나라와 호나라가 싸운다. 다 중국 얘기다. 조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늘의 아들에게 밝은 데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의 자식이었는가? 슬프다! 그대가 세상에 나와 나라를 섬길진대, 명나라를 섬겨 공을 세워서 나라를 지키고 천하를 평정해 어진 이름을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함은 장부가 할 바요, …
드미트리예프(Л. А. Дмитриев) 가 엮고 조주관이 골라 옮긴 <<중세 러시아 문학(Литература Древней Руси) 천줄읽기>> 시간이 만드는 미학 러시아의 중세는 12세기다. 중세 문학은 천 년 전의 이야기다. 투박하고 단순하지만 인간의 자연성이 점점 더 빛난다. 시간은 정말 중요한 것만을 남긴다. 형제들이여! 이미 슬픔의 시간은 왔고, 러시아 군대는 대초원에서 물러났다. 다지드보그의 손자가 이끄는 …
조재현이 현대 한국어로 옮긴 <<박만득 박금단전>> 나를 두고 가시오 금단의 나이 열한 살, 오빠에게 자신을 버리고 도망하라 흐느낀다. 장인의 칼을 대신 받아 남편을 구한 김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때는 인륜이 목숨보다 귀했다. “여보시오, 낭군님은 인간의 대장부라. 6대 독자 귀중한 몸이 죽기가 뼈에 사무치게 원통하니, 소첩은 여자라. 첩이 대신 죽을 터이니 …
청옥당(靑玉堂)이 편찬하고 정용수가 역주한 작자 미상의 ≪동상기(東廂記)≫ 연암은 반성했을까? 정조는 이옥과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쓰라 명한다. 그들의 문체가 문제였다. 명말·청초의 패사소품체의 영향 때문이었다. 군자의 풍모는 사라지고 개인의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쁜 일인가? 둘째 아전: ‘총각 때는 더벅머리더니, 갑자기 관을 썼도다(總角艸兮, 突而弁兮)’라더니 자네 오늘 모습이 ‘물고기가 용 된 격’일세. 셋째 아전 : …
김창진이 교주한 ≪두껍전≫ 두꺼비, 백수의 장로가 되다. 동물 잔치에 상석 다툼이다. 호랑이 자리였지만 초대받지 못한다. 여우가 나서 해박한 상식을 뽐내지만 두꺼비의 깊은 경륜에 빛을 잃는다. 포유류, 힘의 시대는 가고 양서류, 말의 시대가 열렸다. 두꺼비 곁에 엎드렸다가 생각하되, ‘저놈들이 서로 거짓말로 나이 많은 체하니 난들 거짓말 못 하리오’ 하고, 공연히 건넛산을 …
최진형이 고르고 옮긴 ≪서동지전≫ 큰 쥐는 누구였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큰 쥐다. 선인이자 악인이다. 능력가이자 모사꾼이다. 늠름하지만 추악하다. 판본에 따라 선량이기도 하고 도둑이기도 하다. 같은 인물이 이렇게 다양하게 변신하는 사례는 드물다. 조선 후기, 세상이 그랬다. 다람쥐는 본래 성품이 표독하고 마음이 불순한지라. 서대쥐 허락하지 아니함을 보고 독한 안모(顔貌)에 노기(怒氣) 돌돌(突突)하여 몸을 …
조희웅이 옮긴 ≪경판 조웅전≫ 땅에서 만들어진 영웅 조웅은 영웅일까? 복수심에 불타고 잔인하다. 하늘의 점지를 받지도 못했고 그 흔한 태몽도 갖지 못했다. 힘은 세고 머리는 좋지만 운명을 타고나진 못했다. 그러나 영웅이다. 19세기 조선은 이미 세상으로부터 영웅을 만들기 시작한다. 차시(此時) 병부시랑(兵部侍郞) 두관은 두병의 아들이라 상을 모셨더니, 상이 슬허하심을 보고 분심(忿心)이 복발(復發)하여 주(奏) …
최운식이 해설한 작자 미상의 ≪심청전≫ 운명과 의지의 투쟁 쌀 300가마에 목숨을 판 것을 알고 장 승상 부인은 대납을 제안한다. 심청은 거부한다. 명분 없는 재물로는 효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으로는 안된다. 자유 의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릴 때에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의지가 이겼다. 그는 효녀다. 심 봉사는 철도 모르고, “야, …
우화한 세계 4. ≪장끼전≫ 귀가 있어도 기러기가 물 위를 날 때 갈대를 무는 것은 장부가 근신하는 것과 같고, 천 길을 나는 봉황이 주려도 좁쌀을 먹지 않는 것은 군자가 염치를 지키는 것과 같다. 까투리의 간곡한 설득과 애원에도 장끼는 요지부동, 제 목숨을 재촉할 뿐이다. 귀가 있어도 들을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
러시아 소설 신간 ≪우리 시대의 영웅(Герой нашего времени)≫ 나는 쏘았다. 총알은 레르몬토프의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 심장과 허파를 뚫고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다. 결투로 죽은 작가는 영웅과 악인 사이에 서식하는 인간의 본성을 불러낸다. “그루시니츠키.” 나는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네. 자네의 험담을 거두게. 그럼, 모든 것을 용서하겠네. 자네는 나를 바보로 만드는 데 실패했어. …
한국 고전 소설 신간 <<금방울전>> 인생은 왜 돌고 도는가?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다. 유전인자의 세습이라면 과학이다. 문제는 기억이다. 고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전생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은혜를 갚는 호랑이도 등장하고 남편을 찾아가는 새색시도 등장한다. 왜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그들이 등장하면 문제는 해결되고 정의는 다시 서기 때문이다. 순환은 욕망과 반성의 하루, 낮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