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기억은 왜 특별할까? 심형근이 쓴 <<프로덕션 디자이너>> 분위기, 모든 영화의 주인공 내러티브와 인물, 그리고 공간은 흔하다. 그러나 영화는 왜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가? 분위기 때문이다. 분위기란 무엇인가? 세상의 감수성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사물에 시적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 강렬한 이미지를 위해 사물을 보는 시야를 좁히는 작업이다. ‘영화 미술의 역사’, <<프로덕션 디자이너>>, vii쪽. …
아시아 고전 특집 2. 태국편 프라마하몬뜨리(쌉)(พระมหามนตรี(ทรัพย์))이 쓰고 김영애가 옮긴 ≪라덴 란다이(บทละครเรื่อง ระเด่นลันได)≫ 거지와 왕자, 또는 왕자와 거지의 패러디 떠돌이와 천민이 노예 여인을 두고 다툰다. 저자의 이야기다. 두 왕자가 한 여인을 두고 다툰다. 왕궁의 이야기다. 남여상열지사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이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가난한 천애의 란다이 왕자님 …
추석 특집 가족 4. 굉장한 노력으로 만든 가족 김현정이 옮긴 세르게이 도블라토프(Сергей Д. Довлатов)의 ≪우리들의(Наши)≫ 도블라토프의 유머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난다. 독자는 첫 문장부터 웃기 시작한다. 책을 덮으면 진한 여운이 남는다. 눈물이 통과하는 웃음. 가족의 일생이 꼭 그렇다. 그 후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사방에서 나를 …
작가 되기 5. 감독과 관객의 차이 송낙원이 쓴 <<시나리오 쓰기>> 작가와 독자의 차이 누구든 시나리오를 시작할 수 있다. 글을 완성하면 작가가 된다. 인내심의 소산이다. 끝을 맺지 못한 작가는 독자가 된다.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면.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딱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
무서운 책 4. 죽이고 또 죽이고 마침내 죽다 김현주가 엮은 김내성의 ≪초판본 마인 천줄읽기≫ 피의자에 흔들리는 한국 탐정 홈즈나 뤼팽, 포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냉철한 계산으로 기만과 술수를 관통한다. 한국 탐정 유불란은 사랑에 약하다. 피의자 주은몽에게 향하는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실패하지만 그래서 정겹다. 장안의 인심은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흥분과 렵기와 공포에 …
무서운 책 3. 드라큘라, 빅토리아 섹스 모럴의 심판자 김종갑이 옮긴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Dracula) 천줄읽기≫ 드라큘라, 빅토리아 섹스 모럴의 심판자 미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고립되고 드라큘라는 틈을 놓치지 않는다. 빅토리아 사회는 섹스를 금기하고 여성을 고립시킨다. 흡혈귀는 제 세상을 만난다. 그는 왜 여자만 공격했을까? 왜 여자는 혼자 있었을까? “우리 집에 오신 걸 …
7월 신간 1. 사람의 운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박인희가 현대어로 옮긴 ≪명사십리(明沙十里)≫ 인간관계의 원근법 사랑하면 가까워지고 시기하면 멀어진다. 대가 없는 사랑은 은혜가 되고 감동은 보은을 낳는다. 시혜와 보은은 사랑의 이름이다. 인간의 멀고 가까움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때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중천에 빗기어 명랑한 서기(瑞氣)가 왕 씨가 누운 옥창(獄窓)으로 전기 광선을 쏘듯 하는데, 왕 …
여름 한시 2. 그곳엔 8월이면 눈이 날렸다 주기평이 옮긴 ≪잠삼 시선(岑參詩選)≫ 문인들의 전쟁길 전쟁이 이어졌다. 벼슬길은 멀었다. 문인들이 전장에 나갔다. 변경을 오가는 종군길, 황량한 풍광과 전쟁의 참혹, 병사의 고통 그 가운데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변새시가 이렇게 시작된다. 하얀 눈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무 판관을 전송하며 북풍이 땅을 휘말아 백초가 꺾이니 …
여름 희곡 5.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송민숙이 옮긴 장 라신(Jean Racine)의 ≪이피제니(Iphigénie)≫ 이겼다, 그러나 졌다 아실은 논쟁에서 이긴다. 긴밀한 논리로 상대의 뜻을 꺾는다. 패배자는 모욕을 느낀다. 모욕은 수치심을, 수치침은 앙심을, 앙심은 복수심을, 복수심은 반발과 역습을 부른다. 이겼으나 진 것이다. 아가멤농 그런데 내게 위협조로 말하는 당신은, 지금 대체 당신이 누구에게 질문하는지 …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특집 5. 모든 불행은 부활한다 이선화가 옮긴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의 ≪막베트(Macbett)≫ 채울 수 없는 탐욕의 물길 정의감, 진실함, 절제, 지조, 관용, 끈기, 자비, 겸손, 경건함, 인내, 용기, 불굴의 정신은 하나도 없다. 가엾은 백성은 탐욕의 해일이 무너뜨리는 방파제의 비명을 듣게 될 것이다. 마콜: 이제 폭군은 죽었고, 그가 자신을 …
<4·19특집> 혁명 이야기 5. 신은 혁명을 몰랐을까? 임호일이 옮긴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의 ≪당통의 죽음(Dantons Tod)≫ 세상은 얼마나 나쁜 것인가? 굴종과 억압, 수탈과 질곡, 몸과 마음의 예속을 거부하는 혁명. 악을 처단하고 동지를 처형하고 반혁명과의 길고 긴 싸움. 신은 더 나은 세상을 몰랐을까? 당통: 보시오, 저 비열한 살인자들을! (중략) 여러분은 빵을 원하는데 …
나무 이야기 3. 사랑이란 감정의 다양한 음영 김경태가 옮긴 이반 부닌(Иван А. Бунин)의 ≪어두운 가로수 길(Тёмные аллеи) 천줄읽기≫ 주저하지 않는 주인공들 부닌은 사랑의 비극과 부드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을 쓴다. 주인공들은 주저하지 않고 정욕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간다. 정신과 육체가 이루는 최고의 긴장 상태, 그들에게 일상은 없다. 우리는 사람의 손이 전혀 미치지 않은 …
지만지 3월의 새책 5. 자유인가, 사랑인가? 김정아가 뽑아 옮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천줄읽기≫ 신을 통한 인간의 이야기 예수를 심문하는 척하지만 내심은 인간을 향한다. 못난 인간과 잘난 인간이 있는가? 신은 불변하지만 인간은 변한다. 사랑은 자유가 되고 자유는 사랑이 된다. 예수처럼 인간은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한 …
지만지한국희곡선집출간특집 5. 1930년대 조선 최고의 단막극 돌아온 함세덕 해방 전 우리 연극에 유치진과 함세덕이 있었다. 함세덕? 낯선 이름이다.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다. 24편의 희곡을 쓴 당대 최고의 극작가다. 道念: 네, 저이가 바루 서울서 오신 안 대갓집 아가씨세요. 寡婦: 어듸? 새댁: 지금 법당 앞에서 신발 신는 이가, 바루 그 대갓집 딸이라는구료. 道念: …
지만지한국희곡선집출간특집 4. 2014에서 1926을 빼면? 한국 현대 연극의 스케일 2014-1926=88. 문제는 88의 정체다. 88년? 88그램? 88데시벨? 88테라바이트? 88조 원? 88광년? 한국 현대 연극에서 이 모든 것이 살아 숨쉰다. 3 최소 등장인물 박조열의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이강백의 <보석과 여인>에는 단 세 사람만 등장한다. 5 작품이 가장 많이 선정된 작가의 …
안동진이 옮긴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의 ≪체호프 아동 소설선(Детские рассказы А. Чехова)≫ 러시아 문학과 작가의 특수성 그곳에서 문학은 모든 인문학과 같은 말이다. 그곳에서 작가란 사상의 실천가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문학의 창조자, 사상의 실천가 그리고 사회의 변혁가였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군!” 뼈가 앙상한 맨발로 먼지를 풀썩풀썩 일으키면서 제화공이 중얼거렸다. “페클라 오빠한테는 다행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