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갈라테아》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 연극의 젠더 표현과 신화적 상상력을 실험적으로 결합한다. 작품은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변주해 신이 요구하는 제물로 바쳐질 처지에 놓인 두 소녀 갈라테아와 필리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들은 딸을 살리기 위해 남자아이처럼 꾸미고 숲에 숨긴다. 그곳에서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지는 두 주인공은 성별과 운명, 신의 질서에 맞서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극은 엘리자베스 시대 극장에서 흔했던 크로스 드레싱을 주제로 끌어들여 당대 젠더 규범과 사랑의 경계를 유쾌하게 전복한다. 극 속의 ‘성별’은 고정된 정체가 아니라 외부적으로 선택되고 변형 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또한 자연의 질서를 상징하는 목가적 배경과 함께 종교, 연금술, 권력의 은유가 교차하면서 16세기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는다.
《갈라테아》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 가장 유명한 소년 극단 ‘폴의 아이들’에 의해 공연되었으며, 릴리 특유의 수사학적 대사와 재치 있는 언어유희가 극 전체를 지배한다. 성과 사랑, 신화와 현실, 복장과 정체성 사이의 유희를 통해 릴리는 400여 년 전 극작품이 얼마나 실험적이고 급진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200자평
《갈라테아》는 신에게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한 두 소녀가 서로를 남자라고 오해한 채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젠더와 사랑의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이 희곡은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의 크로스 드레싱 관습과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성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당대 소년 배우 극단 ‘폴의 아이들’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은 연극의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 주는 릴리의 대표작으로 뛰어난 언어적 세련미와 우아함이 돋보인다.
지은이
존 릴리(John Lyly, 1554∼1606)
존 릴리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산문 작가로, 그의 희곡 대부분 엘리자베스 1세가 보는 앞에서 공연되었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최초의 영어 산문 스타일리스트로 여겨지며 영국 문학에서 ‘유퓨이즘’이라는 문체를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정교한 수사학, 장식적인 문체와 우아하고 화려한 산문체를 선보이며 1580년대 영국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고대 신화와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경우가 많았으며 배경은 목가적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학문적 문체가 짙게 묻어나지만 동시에 구성적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에서 활동하며, 소년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 ‘폴의 아이들’을 위해 여러 희곡을 집필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캄파스페〉(1580), 〈사포와 파오〉(1584), 〈엔디미언〉(1588), 〈어머니 밤비〉(1590), 〈미다스〉(1591), 〈달의 여인〉(1595) 등이 있다.
옮긴이
김은혜
김은혜는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영어영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초기 근대 영국 드라마에 나타난 무어인의 모습을 장소와 몸의 관계에서 분석하는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이와 관련해 인종주의, 피부색 이론, 페미니즘, 공연 이론, 초기 근대 유럽 연극 등에 관심이 있으며 기후 문학과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소논문으로 〈기후, 피부색 그리고 인종차별 : 〈검은 가면극〉과 〈오셀로〉를 중심으로〉, 〈인류세 시대에 다시 읽는 셰익스피어의 Tempest〉, 〈17세기 여배우 및 여성 작가의 등장으로 바라본 젠더 패러다임과 시각적 헤게모니의 변화〉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1막
2막
3막
4막
5막
에필로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갈라테아: 그리고 그 소녀는 공포를 견뎌야 하나요?
타이티루스: 그렇단다. 그 소녀는 공포를 견뎌야 한단다.
갈라테아: 괴물이 그녀를 삼켜 버리나요?
타이티루스: 그녀가 그에게 잡아먹혔는지, 넵튠신에게 끌려갔는지
아니면 그 사이에서 익사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추측하는 것조차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이제 갈라테아,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고, 네 비극이 시작된단다.
_18~19쪽
큐피드: 차가움이 가득한 열정, 달콤함이 가득한 쓴맛,
즐거움이 가득한 고통, 생각이 눈을 가지게 하고
마음이 귀를 가지게 만드는 것, 욕망에서 태어나고 기쁨으로 양육되며
질투로 인해 젖을 떼고, 위선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배은망덕으로 인해
묻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지요. 아름다운 숙녀여, 사랑을 원하시나요?
_24쪽
헤베: 삶이여, 헛된 삶이여, 비참한 삶이여. 그 슬픔은 길고
끝은 불확실하며, 고통은 확실하고 희망은 무수하며
공포는 견딜 수 없다. 오라, 죽음이여.
_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