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강제 결혼〉은 1664년 1월 29일 루이 14세의 모후 안 도트리슈가 기거하고 있던 루브르의 응접실에서 초연됐다. 초연 무대에서 몰리에르는 스가나렐을 연기했으며, 마드무아젤 뒤 파르크가 도리멘 역을 맡았다. 그리고 약 보름 뒤인 2월 15일, 팔레 루아얄 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일반 관객과 만났다. 초연이 있은 후 4년 뒤인 1668년 2월 15일, 〈강제 결혼〉은 완전히 업그레이드된 상태로 무대에 소환된다. 이때 몰리에르는 발레에서 코메디를 분리하고, 서창부와 서곡 부분을 제거했으며, 3막 극 구조를 1막으로 축소했다. 그리고 결혼 약속을 파기하려는 스가나렐을 위협하는 마술사와 악마 대신, 발레 버전에서 리캉트(Lycante)라 불리던 알시다스를 도입함으로써 열두 번째 장면을 대체했다.
〈강제 결혼〉에는 비겁한 부르주아 사회가 반영되어 있다. 체면을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귀족의 모습을 통해 몰리에르는 가치와 이상을 잃어버린 인간성의 일면을 그려 낸다. 장 몰리노는 〈강제 결혼〉이 “외모와 현실, 진실과 거짓, 지혜와 광기가 혼재된”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고 말했다. 스가나렐은 친구 제로니모에게 결혼의 이점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연극을 시작한다. 그는 상상과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그는 점점 더 ‘비합리적인 논리’에 갇히게 된다. 마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요컨대 독신으로 살도록 저주받은 것처럼 결코 사유의 진화를 이뤄 내지 못한다. 대화는 의미를 쫓지 않고 순전히 기계적으로만 연결된다. 몰리에르의 인물들이 던져 주는 말로는 그 무엇도 구성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말을 통해 기존 세계가 해체될 지경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강제 결혼〉의 기저에는 회의주의가 깔려 있다. 왜냐하면 몰리에르는 모든 형태의 독단주의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현학자로 상징되는 스콜라 철학, 그리고 딸을 늙다리 총각에게 팔아넘기면서도 명예와 도덕을 앞세우는 도리멘의 아버지가 거기에 해당된다. 그 누구도 이 작은 희극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다.
200자평
몰리에르가 창안한 “코메디 발레”양식의 첫 작품으로 루이 14세 요청에 따라 창작되었다. 오쟁이 진 남편의 전형 캐릭터인 “스가나렐”을 내세워 돈을 쫓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캐릭터 분석, 서사의 기원, 공연사 등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더해 작품 이해를 도왔다.
지은이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
실내장식업자인 아버지 장 포클랭과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 출신인 어머니 마리 크레세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어머니를 여읜 후 파리의 부유한 동네인 생토노레 거리의 파비용 데 생주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 무렵 예수회 소속 명문 학교인 콜레주 드 클레르몽(Collège de Clermont, 지금의 리세 루이르그랑)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귀족과 상류층 자제들만 입학이 허락된다는 이 학교에는 당시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가상디가 재직하고 있었으며, 장바티스트는 가상디의 문하에서 콩티 공, 프랑수아 베르니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등과 친교를 맺었다. 1643년 6월 30일, 장바티스트는 재능 있는 여배우 마들렌 베자르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을 규합해 극단 ‘일뤼스트르 테아트르(Illustre Théâtre, “유명 극단”이라는 뜻)’를 창단했다. 극단 출범 20개월 만에 파산한 몰리에르는 1645년 말 베자르 가족과 함께 유랑길에 올랐다. 파리를 떠나 지방을 유랑하던 몰리에르 극단은 파리로 귀환해 루이 14세의 후원을 받게 된다. 1662년 걸작 〈아내들의 학교〉를 발표했다. 여성 교육에 대한 비판 의식과 자신의 결혼 생활을 반영한 이 정격 희극은 이례적인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격렬한 비판을 초래했다. 1663년 6월에 발표한 〈아내들의 학교 비판〉과 10월에 공연된 〈베르사유 즉흥극〉은 〈아내들의 학교〉 스캔들과 관련해 몰리에르 자신의 연극 세계를 피력하는 토론극 성격을 띠고 있다. 1664년 5월 당대 지배 계급과 종교인들의 위선을 고발한 문제작 〈타르튀프 혹은 위선자〉를 발표하면서 〈아내들의 학교〉를 능가하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련의 스캔들 이후 건강이 악화된 몰리에르는 1673년 2월 17일 〈상상으로 앓는 환자〉 네 번째 공연 도중 무대에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몰리에르 사후 그의 극단은 급격히 와해됐다. 대신 오텔 드 부르고뉴와 마레 극단의 배우들이 ‘왕의 극단’이라는 칭호를 물려받아 그의 작품들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680년 국왕의 명령에 따라 파리의 극단들이 하나로 뭉쳐 몰리에르의 예술혼을 계승한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를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오늘날 프랑스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가 “몰리에르의 집”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다.
옮긴이
조태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앙토냉 아르토의 연극 이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객원교수를 거쳐 배재대학교 아트웹툰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2년 미국 루이지애나대학교(ULL) 커뮤니케이션학과 방문교수를 지냈다. 연극 이론 및 극작술, 공연 미학 관련한 논문과 칼럼을 여러 편 썼으며, 고등학교 인정 교과서 《연극》(천재교과서, 2018)을 공동 집필했다. 《골고다의 딸들》(한웅출판, 1992), 《바람의 전쟁》(열린세상, 1996) 등의 번역 소설과 번역 희곡 《유령소나타》(지만지, 2014), 《바다에서 온 여인》(지만지, 2015), 《로칸디에라》(지만지, 2016),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지만지, 2018), 《헤다 가블레르》(지만지, 2018), 《건축가 솔네스》(지만지드라마, 2019), 《루나사에서 춤을》(지만지드라마, 2020), 《로스메르스홀름》(지만지드라마, 2020),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지만지드라마, 2021), 《들오리》(지만지드라마, 2022)를 펴냈다. 또한 공연 창작 현장에서 극작가 및 연출가, 드라마투르기로 활동하면서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 장르를 넘나들며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다. 현재 극단 인공낙원 대표, 극단 하땅세 예술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희곡 〈창밖의 앵두꽃은 몇 번이나 피었는고〉, 〈3cm〉(지만지드라마, 2021), 〈푸른 개미가 꿈꾸는 곳〉 등이 있으며, 연극 〈유령소나타〉, 〈루나사에서 춤을〉, 〈목소리〉,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 〈애랑연가〉, 〈규방난장〉, 오페라 〈류퉁의 꿈〉 등을 연출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스가나렐 : 이것 보라고, 내가 묻잖아, 혹시 내가 오쟁이를 지게 되냐고.
두 번째 집시 여인 : 오쟁이를 져요, 아저씨가?
스가나렐 : 그래, 내가 오쟁이를 지게 되나?
첫 번째 집시 여인 아저씨가, 오쟁이를?
스가나렐 : 그래, 내가 그렇게 돼, 안 돼?
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