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릴파르처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19세기 빈의 문학을 대표한다. 이 작품에서 그릴파르처는 메로빙 왕조 시기의 프랑크 왕국과 이교도 게르만 지역의 대립을 배경으로 하여, 종교와 문화의 충돌을 다룬다. 《거짓말하는 자 벌 받을지니!》는 집필을 시작한 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889년 요제프 카인츠 주연으로 상연된 베를린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며 유명 작품 반열에 올랐고, 현재 독일어권 연극사의 3대 희극 중 하나로 평가된다.
‘진실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요구를 받아들고 주인공 레온은 그레고르 주교의 조카를 구하러 인질 구출 작전을 펼친다. 이 좌충우돌 여정에서 그는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진실을 위장하고 거짓을 모면한다. 그의 쾌활하고 꾀바른 언변은 진실의 양면성을 통쾌하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릴파르처는 자신이 써 놓은 글을 보며 “이제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코멘트를 적어 넣을 정도로 ‘진실과 거짓’의 테마에 집착해 있었다.
진실과 거짓
재치 넘치는 보조 요리사 레온은 자신이 존경하는 그레고르 주교를 설득해 적진에 인질로 잡힌 주교의 조카를 구하러 나선다. 인질 구출 작전은 순탄히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그에게는 수행해야 할 또 다른 임무가 있다. 주교는 인간의 추악한 천성 중 가장 나쁜 것은 ‘거짓’이라고 말하며 구출 작전에서 진실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레온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주교와의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현실의 문제 앞에 설 때 비로소 그는 진실의 양면성에 부딪히고 만다. 아무리 대담하고 자유롭게 농담을 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그래서 진실을 말하면서 거짓 의도를 숨길 수 있는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젊은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희극은 인간 세계의 허점을 폭로한다.
“어찌 그분 모습이 갑자기 이 밤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내 눈앞에 나타나는가!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거짓에 대한 경고였는데.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일들은 복잡하기 짝이 없구나.”(148∼149쪽)
진실과 진심
그레고르는 샬롱의 주교로 기독교 수용 초기 샬롱은(현재의 프랑스 지역) 프랑크 왕국 최초의 유일한 주교구였다. 카트발트 백작이 지배하는 트리어 너머의 라인가우는 현재의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근처다. 당시 프랑크 왕국은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구와 기독교를 널리 포교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으므로 인접 지역과 전쟁이 잦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 작품에서 문명과 비문명, 기독교와 이교도를 대변하는 두 세계가 충돌하며 대비를 이룬다. 거짓과 진실의 갈림길에서 에드리타의 등장과 그가 서 있는 계급적 신분적 위치는 여러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인물로서, 기독교의 세계로 교화되려는 의지를 가진 밝고 천진한 에드리타는 게르만 지역(이교도)의 백작(귀족)의 딸(여성)이다. 에드리타에게 ‘진실’은 그레고르 주교의 것과 다르다. 현실 감각이 결여된 추상적인 세계관을 가진 주교는 아름다운 관계는 진실한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며 진실의 ‘언어’ 문제에 천착한다. 이에 비해 에드리타는 현실에 기초해 동시대 인간과 ‘소통’하는 진실을 추구한다. 주교에게 거짓은 죄악이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면 에드리타에게 거짓은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침묵하자는, 따라서 공동체 의식을 전제하는 것이다. 에드리타에게 진실의 말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에 가까운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 입이나 다물자. 그러면 아마 가장 진실에 가깝겠지.”(133쪽)
그릴파르처는 이 작품에서 무능력하고 태만한 당대 신분 사회의 상류층을 희화화하며, 신분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200자평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19세기 빈의 문학을 대표한다. 《거짓말하는 자 벌 받을지니!》는 집필을 시작한 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889년 요제프 카인츠 주연으로 상연된 베를린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며 유명 작품 반열에 올랐다. 레싱의 〈미나 폰 바른헬름〉, 클라이스트의 〈깨어진 항아리〉와 함께 독일어권 연극사의 3대 희극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릴파르처의 유일한 희극 작품이다.
지은이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 1791∼1872)
오스트리아 빈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릴파르처는 1809년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1817년에 동생이 자살하고, 1819년에는 어머니가 다시 자살하는 불행을 당한다. 특히 어머니와 깊은 유대를 갖고 있던 그는 소년 시절부터 심리적·경제적 고통을 겪으며 부친 사망 후 가정 교사 등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1813년부터는 왕립 도서관에서, 1815년부터는 세관에서 실습생으로, 1818년 이후로는 부르크테아터의 작가를 겸임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며 불운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빈에는 궁정 극장인 부르크테아터 이외에도 이른바 도심 외곽 극장들이 있어서 부르크테아터에서는 레싱, 셰익스피어, 괴테, 실러 그리고 스페인의 칼데론이나 로페 데 베가의 바로크 연극 등 진지한 연극이 공연되고 있던 반면 외곽 극장들에서는 라이문트의 선녀극, 마술극, 네스트로이의 도전적 익살극 등이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연극 전통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초기에는 일련의 서정시와 단편소설을 집필하나 1817년 26세에 운명 비극 〈조비〉를 집필, 성공을 거두며 그릴파르처는 단숨에 유명인 대열에 오르게 된다. 1817년부터 〈거짓말하는 자 벌 받을지니!〉가 공연된 1838년까지 20여 년간 〈사포〉(1819), 〈황금 모피〉, 〈오토카 왕의 행복과 종말〉, 〈주인의 충실한 종복〉, 〈바다와 사랑의 파도〉, 〈인생은 꿈〉, 〈거짓말하는 자 벌 받을지니!〉 등이 부르크테아터에서 공연된다.
그 외 오페라 극본 〈멜루지나〉와 〈리부사〉, 〈합스부르크 왕가의 형제 싸움〉, 〈톨레도의 유대 여인〉 등 세 편의 완성된 희곡이 생전에 출판되지 않은 채 발견되며 이 작품들과 함께 그의 시집도 작가 사후 1872년에야 출판된다. 단편소설 〈가엾은 거리의 악사〉는 19세기 가장 우수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작품에는 오스트리아 바로크의 유산, 빈의 민중극, 독일 낭만주의, 고전주의 그리고 사실주의, 비더마이어 양식의 요소가 혼합되어 나타나며 양심과 행동, 예술과 삶 사이의 갈등이 작품의 기조를 이룬다.
1831년에 왕립 문서실 실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자 1831년에서 1836년까지 독일, 체코, 파리, 런던 등지를 여행하고 1843년에는 그리스, 콘스탄티노플까지 여행한다. 그는 일평생 결혼한 적이 없고 1821년부터 카타리나 프뢸리히와 알고 지내지만 “영원히 약혼 상태”로 지내며 1848년부터는 프뢸리히 자매들과 함께 생활한다. 1849년 이후로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며 여러 훈장을 수여받는다. 1854년부터 연금을 받으며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1871년에는 매해 3000굴덴을 지급하는 프란츠 요제프 훈장을 받았으나 다음 해 1월 21일 빈에서 사망한다.
옮긴이
김기선
김기선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 철학부 독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 한국학과 전임 강사, 성신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동 대학교 명예 교수다. 번역한 책으로 《서사극 이론》, 《메피스토》,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 《아르투로 우이의 집권》, 《사춘기》, 《속바지》, 《스놉》, 《깨어진 항아리》, 《탈리스만》, 《카이트 백작》, 《윤무》, 《민나 폰 바른헬름》, 《세계 제2차 대전 중의 슈베이크》, 《거짓말하는 자 벌 받을지니!》, 《아름다운 낯선 여인》 등이 있다. 《20세기 초 독일 연극과 동양》(독), 《한국의 독일 문학 수용 100년》 중 희곡 수용에 관한 글들, 독일 연극의 동양 수용, 한국의 독일 문학 수용, 독일 드라마, 독일 희곡 작품 해석, 독일 여성 문학, 독일 신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거짓말하는 자 벌 받을지니!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에드리타 : 그럼 가서들 자. 그건 지친 사람들이 밤에 해야 할 임무야. 그리고 잠이 들면 꿈이 기지개를 켜지. 오늘 꿈을 꿀 거야?
레온 : 그걸 어떻게 알아?
에드리타 : 난 알아. 벌써 눈이 감기는데. 잘 자!
89∼90쪽
에드리타 : 그건 틀린 생각이야. 인간이 허위와 속임수로 일을 할 때는 천사가 인간을 돕지 않아.
103∼104쪽
에드리타 : 나는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거워할 줄 알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또 모두의 것인 태양을 즐기듯 말이야. 나 자신도 내 것이 아니야. 물론 내가 누구 소유라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106쪽
레온 : 어찌 그분 모습이 갑자기 이 밤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내 눈앞에 나타나는가!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거짓에 대한 경고였는데.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일들은 복잡하기 짝이 없구나.
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