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나라는 6·25 전쟁의 대 참변으로 황폐화된 국가를 전후복구사업으로 재건하면서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얻어와야 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세계무대에 나서야 하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민주언론 발전도 꼭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주)동화통신사가 설립되던 1954년의 우리 사회의 배경인 것이다.
전 세계 모든 곳에 자신의 특파원을 파견할 수 없는 일급 대형 신문, 방송사 등도 예외 없이, 국내외 통신사의 뉴스공급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뉴스 소매상이기 때문에, 저렴하고 질 좋고 객관성 높은 뉴스공급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같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휴전 3년째인 1954년에 동화가 합동, 동양에 뒤이어 창설되어 국내 언론계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하여 1956년에 미국의 AP, 프랑스의 AFP와 수신계약을 맺어 명실공히 주요 세계뉴스 공급망으로서 활발하게 서비스에 참여하였다. 1960년에 영국의 로이터(Reuter)통신과의 독점 수신계약에 이어, 1964년에는 ??뉴욕타임스?? 서비스 독점 전제계약을 맺고, 1966년에는 의양(義洋)언론문화재단을 설립하여 후학 양성과 언론문화 발전에 공헌하게 되었고, 1967년에는 종합판 ??동화연감??을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경제외신 송신 서비스, 동화 영문뉴스를 계약사에 송신하였고, 영문 경제판, 특신판의 보급에도 힘써 왔다.
동화의 서비스 제공과 기여에 관련하여, AP 등 외신 계약사와 다른 국내 통신사와의 이중 전제계약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비자(Visa)나 마스터카드(Master -card) 같은 외국 신용카드들이 국내 은행이나 백화점 같은 업체와 다중계약을 체결하여 운영하는 선진국형 영업 형태로서, 오히려 경쟁을 통한 비용 절감과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유발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국내시장에서 뉴스 점유(통신 뉴스 전제)율을 둘러싸고 벌어진 통신사 간의 경쟁은, 상호 조절은커녕 소매상들의 부추김과 묵시적 도발을 받아 격화일로를 치닫게 되었다. 과다경쟁과 재정부담은 3대 통신의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몰아갔고, 급기야 만성적자를 18년간 버티어내던 동화는 먼저 자진 폐간을 결정하였는데 이것이 1973년 4월이었다.
자진 폐간 30주년이 되는 2003년을 고비로 하여 그 동안 사우들의 동화 시절 중심의 생각과 체험과 교훈, 그리고 사회에 대한 진언 등을 수집, 정리하여, 우리 언론계, 특히 통신사나 활자 및 전파매체들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듯하여, 여기에 동화통신 사우회 문집을 펴내게 된 것이다.
200자평
1954년 설립된 동화통신사의 탄생에서 폐지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동화통신사는 국제 사회 참여 및 저렴하고 객관적인 뉴스공급의 필요성 때문에 생겨났다. 미국 AP, 프랑스 AFP와 수신계약을 맺고 세계시장에서 활동했으며, 국내 통신사들과 이중 전제계약 논란마저 일으킨 활약했던 당시의 상황과 과다경쟁으로 인한 자진 폐간의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2003년 폐간 30주년을 맞아 사우회에서 기획된 책이다.
차례
간행사 조동원
한국 통신의 역사와 동화통신 정진석
제1부
동화통신, 고난의 행로에서쓰러지다
‘통신사’ – 동화를 말한다
통신 본연의 역할 충실히 이행 홍일해
AP의 동화.합동 이중계약으로 고충 커
동화와의 인연, 기자로서의 내 성장에 큰 영향 황경춘
동화를 거쳐 언론인, 언론학자로 자라
내외신 서비스, 동화의 비중 막강했다 황봉구
동화 상역판(商易版) 발행의 보람
각 신문, 상역판 안 보고는 경제면 못 막아 홍일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실황중계
현장연결 생방송의 감격 새로워 조동원
아득한 고향 동화통신
동화는 자랑스런 언론사였다 조홍래
동화통신 총무부와 나
애착과 향수 각별한 직장 이재석
정치권 부패와 언론의 역할
사회개혁의 마지막 보루(堡壘).언론 황봉구
토론토 동포 언론의 어제와 오늘
캐나다 한인 사회의 언론사(言論史) 김운영
아, 동화통신 그 난파선에 탄 기자들이여! 김건흡(金乾洽)
제2부
동화인은 이렇게 뛰었다, 그때 그리고 그 후
정치부 기자 때 기른 정의감(正義感)
날치기 없는 국회 만들기에 심혈 기울여 이만섭
나의 동화통신사 재직 회고
재직 17년, 잊지 못할 에피소드 많아 송두빈
어느 기자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부침 심했던 기자생활, 통신사 통폐합도 겪어 이춘원
추억 속의 사진 한 장
박 정권 때 언론통제 떠올라 김종인
두 자루의 볼펜
주일 특파원 시절의 슬픈 추억 박용근
소공동의 피리소리
후배 보살펴 준 선배들, 그 훈훈한 정 못 잊어 이정희
덕(德)을 베푸는 인생
동화에서 익힌 광고 노하우, 후일 사업에 살려 임덕규
그 긴 30년을 넘어……
짧은 동화생활, 동기들 발전 눈부셔 이영일
동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산실(産室)
그때 기른 솜씨, 사회서 인정받아 안영환
애환이 점철(点綴)한 기자 시절
‘통화량 조작’ 보도로 중정(中情)에 불려가 남기화
소공동 시절을 그리면서
동화에서 과학 저널리스트 길 닦아 현원복
공항 출입기자의 애환(哀歡)
항공기 납북사건 취재 어제 같아 김종인
밑진 밥장사의 넋두리
주미 특파원 아내의 보람 양병희
남북 적십자회담 취재 중 실직
돌아와 보니 회사 문 닫혀 있어 김주석
나의 사회생활 입문
상기 뚜렷한 공사간의 기억 서기원
은하수에서 동화뉴스 이청수 우주특파원 보도
동화에서 훈련받아 꿈의 특파원 되다 이청수
동화 품에서 자라나온 실체와 추억
입사 후 5년 동안 겪은 편력(遍歷)을 살핀다 조동원
동화의 못 잊을 추억
세 번 들락거린 희한한 인연 고흥욱
파란에 찬 내 삶의 후반
동화 시절 돌아보면 가슴 저려 와 오정환
영원한 나의 동화
‘동화연감’이 떠올려 준 그리운 추억들 고석태
남북조절위(南北調節委) 평양 취재기
“왜 6.25 도발했나”에 “그때는 그때고……” 강변 송두빈
제3부
나의 생각, 나의 인생관
‘큐(cue)’의 기법(技法)
생활의 리듬을 조절하는 슬기 정병우
늙음 그리고 차비
은퇴 후 담담히 되살피는 자화상(自畵像) 강덕성
지금 일본은……
고이즈미의 혁명,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정용석
수면시간에 따른 피로
성인은 8시간은 자야 한다 안상민
고령 근무자의 안전대책-미국의 경우
건강복지 프로그램의 중요성 안상민
대구(對句)로 말해요!
옛 선비들 풍류 대구 멋있어 석담인(石潭人)
동화통신은 언론역사 속에 잠들었지만 노기자들 건재하다 오수백
단식(斷食) 체험기
30일 단식의 고통과 쾌감 주상언
나의 게이오(慶應)대학 유학
35년 만에 옛 스승과 감격적인 상봉 송두빈
제4부
동화의 젊은 일꾼들 – 그 모습 그리워
새해를 맞으며
안정 속의 현대화(現代化)를 정재호(鄭載頀)
새로운 포부
운영의 일원화(一元化) 작업 이은우(李恩雨)
기자실 주변
집권의 사령탑.공화당 이상원(李相轅)
나라의 부엌-경제기획원 양남훈(梁南勳)
사건의 집결처-시경(市警) 이동훈(李東勳)
특파원 보고 / 주월 백일(駐越百日) 이정우(李貞雨)
지방의 의견
통신의 인식도(認識度) 아쉬워 김덕중(金德中)
나는 특파원이자 사환(使喚) 김영국(金永國)
수상(隨想)
과세유감(過歲有感) 송두빈(宋斗彬)
진지한 편상(片想) 함병혁(咸炳赫)
보드라운 아가씨의 손길 윤용호(尹用浩)
일상(日常).껍질.소외(疎外) 박권섭(朴權燮)
근무가 낳은 지혜 / 오역(誤譯)이라는 것 유한성(柳漢成)
나의 첫 취재 나들이 / 멕시코를 다녀와서 경창호(慶昌浩)
구석진 방의 애환(哀歡) 오규영(吳圭泳)
NOSTALGIA Kim Young-moo
생활 수기 / 나는 ‘야간국장’ 주종설(朱鍾卨)
묵은 ‘사우 동정(社友動靜)’ 엿보기(1968~1969년도)
동화 뉴스그라프의 기사 한 토막 / ‘제발 이러지 맙시다’ 시리즈
동화통신 연혁
동화통신 인명록
편집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