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경국제세(經國濟世)에 필요한 거울이 되는 글
“경국제세, 나라를 잘 다스려 세상을 구제한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가 이 한마디에 모두 들어 있다. 정도전은 ≪경제문감≫을 씀으로써 세상을 구제하고자 했다. 그는 옛사람을 숭상했기 때문에 그들 직분 임무의 잘잘못과 인물의 잘남 못남을 널리 가려내어 우선 글로 기록했다. 이를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 그가 세우고자 하는 바른 정치 체제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선대 선비들의 학설을 인용하면서 그 사이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는데 매우 간단한 형태지만 소략하지는 않고, 상세하면서도 번잡하지 않다. ≪경제문감≫에서 주장하는 정도전의 정치 체제 및 통치 철학은 재상을 중심으로 하는 공명정대한 정치, 백성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민본주의, 경제적·물질적 성장과 절약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룩하는 정치 이념이다. 요임금과 순임금 시대에도 그러했고, 오늘날까지도 새겨 읽을 만한 정도전의 정치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경제문감≫을 발표하고 2년 뒤 1397년 정도전은 그 별집(別集)을 편찬하여 조선 건국 이후에 절실했던 국가 경영의 방도 및 왕도(王道)의 지침을 내놓았다. ≪경제문감≫에서는 재상부터 시작하여 현령까지 이르는 관직의 연혁 및 직무 등에 대해 서술하여 정치제도 및 체제에 관계되는 내용을 체계적으로 갖추었는데, 정작 정치의 중심이 되는 임금의 다스리는 도리를 선뜻 제시하지 못해 스스로 미련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 상고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및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정치적으로 본받을 만한 사실(史實)과 경계할 만한 사실들을 열거하여 진술했는데, 이는 경국제세(經國濟世) 및 경세제민(經世濟民)에 필요한 군도(君道)로서 치도(治道)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도전, 치국(治國)의 도를 말하다
군군신신(君君臣臣),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한 각 직분에 맞는 태도와 정신은 오늘날 읽어도 하나 모자람이 없다. 정도전이 제시한 올바른 국가의 모습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었다.
재상은 위로는 음양(陰陽)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많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 백성을 평온하고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시키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은 사람이 없고 임금이 옳으면 옳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한 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임금을 보좌하는 재상의 업무는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금의 다스리는 도리는 수신(修身)과 존현(尊賢), 두 마디로 요약된다. 임금 스스로 수신(修身)과 지신(持身)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고, 정치를 함에 무엇보다 소인을 멀리하고 현량한 인물을 임용해야 하는 원칙을 잃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곧 수신(修身)하고 양성(養性)하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며, 현량(賢良)과 현철(賢哲)을 존중하여 함께 지당하고 올바른 정치의 도(道)를 실현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정치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조선왕조 창건에 초석이 되었던 정도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두 번의 유배와 10여 년 동안의 귀양살이를 통해 독서와 성찰로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국가 경영에 필요한 대도를 구상했다. 그리하여 전제(田制) 및 군제(軍制) 개혁은 물론이고 각종 정치 이론을 정립했다. ≪경제문감≫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난국을 해결하기 위한 정도전의 고뇌에서 나온 저서로서 시대를 통관하고 국운을 전망하고 국정을 계획한 삼봉 리더십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200자평
조선 왕조의 초석을 쌓은 삼봉 정도전의 고뇌를 담은 책이다.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 국가 경영에 관한 핵심적인 지침서로 무엇이 올바른 정치인지, 임금의 다스리는 도리는 어때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고, 어떻게 공명정대한 정치 체제를 만들지를 풀어냈다. 권근의 주해와 정총의 서문으로 더 풍부해진 이 책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올바른 정치이론과 치국의 도를 살펴보고, 태조와 정도전이 이루고자 한 국가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지은이
정도전은 고려 충혜왕 복위 3년에 3남 1녀 가운데 첫째로 태어났다. 상경한 뒤로 이색(李穡)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해 공민왕 11년(1362)에 급제해 하급 관리를 지내다가 공민왕 15년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내려가 학문과 교육에 전념했다. 공민왕 19년에 성균관 박사에 임명되어 이색·정몽주·이숭인·이존오 등과 성리학을 강론했다. 1374년 우왕이 즉위한 이후 신진 학자들에게 시련이 닥쳐와 친원(親元) 정책에 반대했던 탓에 나주 근처로 유배되었다. 풀려나와 고향에서 4년간 지내고 삼각산 집으로 와서 살다가 권신들의 외압에 부평·김포 등지로 이사하는 등 굴욕과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그 뒤 우왕 9년에 함주로 가서 이성계를 만난 뒤로 왕조 건국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게 되고, 우왕 14년(1388) 위화도 회군 이후에는 밀직부사를 맡아 전제(田制) 개혁부터 단행했다. 그리고 1392년 조선왕조가 창건되면서 1등 공신으로 책봉되고 새로운 왕조의 요직을 장악했다. 새로운 도읍지 결정과 경복궁 창건, 군제(軍制) 개혁과 병법 개혁 등 새로운 왕조를 위해 수많은 업적과 공적을 쌓았다. ≪조선경국전≫, ≪감사요약≫,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 ≪불씨잡변≫ 등을 지었으며, 태조의 창업을 기리는 <문덕곡>, <몽금척> 등의 노래도 지었다.
그리하여 당시 정도전의 권세는 왕이나 왕족을 능가할 정도였으며, 항상 이방원과 대립했다. 결국 태조 7년에 일어난 무인의 난에 역적의 누명을 쓰고 이방원의 칼날 아래 쓰러지고 말았다.
옮긴이
조기영(趙麒永)은 강원대 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홍만종 시학 연구>로 석사, <하서 김인후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도회 한문연수원과 중앙승가대학 불전국역연구원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대학원 은사인 연민 이가원 선생에게 아호 인재(仁齋)를 받았고, 연수원 은사인 권우 홍찬유 선생에게 아호 지어재(之於齋)를 받았다. 연세대 국학연구원·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연세대 철학연구소·충북대 우암연구소에서 연구했으며, 연세대·강원대·경찰대·공주교대·방통대·목원대·상지대·한성대·경희대·경민대에서 강의했다. 서정대에서 명예퇴직했으며, 유도회 한문연수원과 한국고전교육원에서 강의했다. 현재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개혁≫·≪삼봉 리더십≫·≪하서 김인후의 시문학 연구≫·≪하서시학과 호남시단≫·≪한문학의 이해≫·≪정보사회의 언어문화≫·≪한국시가의 정신세계≫·≪한국시가의 자연관≫ 등과, 번역서인 ≪화랑세기≫·≪동몽선습≫·≪백련초해≫·≪명심보감≫·≪백유경≫·≪반야심경≫·≪초발심자경문≫·≪완역 명심보감≫·≪논어집주상설≫·≪대학장구상설≫·≪역주행명재시집≫ 등이 있다.
차례
≪경제문감≫
경제문감서(經濟文鑑序)
경제문감 상(上)
재상(宰相)
1. 재상의 명칭
2. 주(周)의 관제(官制)
3. 총론
4. 재상의 직분
5. 재상의 업무
경제문감 하(下)
대관(臺官)
1. 총론
2. 대관의 직분
간관(諫官)
1. 총론
2. 간관의 직분
위병(衛兵)
1. 총론
감사(監司)
1. 총론
2. 감사의 직분
주목(州牧)
1. 총론
군태수(郡太守)
1. 총론
현령(縣令)
1. 총론
2. 현령의 직분
경제문감후서(經濟文鑑後序)
≪경제문감별집≫
경제문감별집서(經濟文鑑別集序)
경제문감별집 상(上)
군도(君道)
1. 당(唐)
2. 우(虞)
3. 하(夏)
4. 은(殷)
5. 주(周)
6. 한(漢)
7. 삼국(三國)
8. 진(晋)
9. 남북조(南北朝)
10. 수(隋)
11. 당(唐)
12. 오대(五代)
경제문감별집 하(下)
13. 송(宋)
14. 원(元)
15. 고려국(高麗國)
의논(議論) − 임금의 다스리는 도리를 의논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임금 아래에서 도덕을 의논해 임금 한 사람을 돕고, 종묘사직의 맨 위에서 도견(陶甄)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治亂)과 천하의 안위(安危)가 항상 반드시 그에게서 말미암으니 진실로 그 사람을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다.
-77쪽
인종(仁宗)은 지극히 어진 임금이라고 할 수 있으니, 사형(死刑)이 의심되면 죄를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여 소생한 이가 한 해에 1000명을 헤아렸다. 불에 구운 양고기를 먹지 않고 말하기를, “하루 저녁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 끝없는 살생을 시작해야 되겠는가”라고 했으며, 어쩌다 바지락조개를 바치면 말하기를, “한 젓가락으로 28000원의 돈을 소비하는 것은 내가 감히 행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북방의 절도사가 말하기를, “고려를 무력으로 공격하자” 하면 “백성들이 아무 죄 없이 죽게 된다” 하여 마침내 전쟁을 중지했고, 궁궐 안에 위아래로 관통한 무소뿔을 내어 서울의 천연두를 구호하면서 말하기를, “짐이 어찌 특이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백성들을 천하게 여기겠는가”라고 했다.
-444~445쪽
아! 하늘로 하여금 왕안석을 그사이에 내지 않게 하고, 여러 군자들로 하여금 사도(斯道)로써 천자를 도와서 크게 할 수 있는 뜻을 성취하게 했다면, 나는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가 요순(堯舜) 임금의 융성했던 때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그러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도다.
-4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