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구려·수 전쟁 사료의 보고, ≪수서(隋書)≫
서기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동북아시아를 뒤흔든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이 펼쳐졌다. 바로 598년부터 614년까지 4차에 걸쳐 일어난 고구려·수 전쟁이다.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612년의 2차 고구려·수 전쟁은 지금까지 그 규모에서 동북아시아 최대의 전쟁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구려·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자세하게 다룬 저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구려·수 전쟁의 일차적 사료라 할 수 있는 ≪수서≫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된 방대한 원전의 벽이 고구려·수 전쟁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막고 있던 셈이다.
≪수서≫는 수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 사서로, 고구려·수 전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천 자료다. 수나라 통치자들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 요동에서의 고구려·수 전쟁 양상, 수 양제의 등극 과정과 죽음, 대운하 건설과 고구려·수 전쟁 전후의 민란 등에 대한 많은 사료가 ≪수서≫에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은 85권 분량에 달하는 ≪수서≫를 국내 최초로 완역 소개한 저자가 고구려·수 전쟁 관련 사료를 틈틈이 모아 저술했다.
수나라의 흥망성쇠, 살아 숨 쉬는 인물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대제국 수나라는 불과 3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 책은 고구려·수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 전쟁의 준비 과정과 진행 양상, 전쟁 이후의 상황 등을 시대순으로 기술하며 수나라의 짧은 역사를 숨 가쁘게 따라간다. 대제국을 형성했던 왕조의 흥망성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로운 내용과 교훈을 제공한다.
고구려·수 전쟁의 전개 과정을 들여다보면 개성 넘치는 인물이 가득하다. 이 책은 풍부한 인용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폭군의 대명사 양제를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면모를 생동감 있게 그려 낸다. 살아 숨 쉬는 그들의 말과 행동은 재미있게 읽힐 뿐 아니라 당대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천자관념에 사로잡힌 수나라 황제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중국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0자평
≪수서(隋書)≫를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가 고구려·수 전쟁 관련 사료를 틈틈이 모아 저술한 책이다. 고구려·수 전쟁의 배경, 준비 과정과 진행 양상, 전쟁 이후의 상황 등을 시대순으로 기술했다. 풍부한 인용 및 생생한 묘사로 고구려·수 전쟁이나 수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흥미로운 일화들로부터 당대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앞으로 중국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지은이
권용호
권용호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전 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兪爲民)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남희곡률연구(宋元南戱曲律硏究)>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국 고전 문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역서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와 세종도서(학술부분)에 네 차례 선정된 바 있다(2001년, 2007년, 2018년, 2020년).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문학 1≫, ≪아름다운 중국문학 2≫, ≪중국문학의 탄생≫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역대곡률논선≫, ≪송원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그림으로 보는 중국 연극사≫, ≪초사≫, ≪장자내편 역주≫, ≪꿈속 저 먼 곳−남당이주사≫(공역), ≪송옥집≫, ≪서경≫, ≪한비자 1∼3≫, ≪경전석사역주≫, ≪수서 열전 1∼3≫, ≪수서 경적지≫, ≪수서 지리지≫, ≪수서 제기≫, ≪수서 백관지≫, ≪수서 식화지·형법지≫, ≪수서 예의지≫ 등이 있다.
차례
들어가며
고구려의 요서 공격
1차 고구려·수 전쟁(598)
수 양제의 등장
왕자들의 반발
통제거 개통과 북방 순시
영제거 개통과 전쟁 준비
2차 고구려·수 전쟁(612)
3차 고구려·수 전쟁(613)과 양현감의 반란
4차 고구려·수 전쟁(614)
고구려·수 전쟁의 여파
수 양제의 죽음
수 양제, 최악의 황제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부록
인물 사전
동한(東漢)∼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왕조 계통도
수 황실 가계도
수나라 영토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경로
수나라 연표
참고문헌
책속으로
양량은 천하의 정예병을 거느린다고 자부했다. 수 문제 역시 한왕 양량의 군사력을 믿고 혹 도성에서 일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문제가 한왕 양량을 병주로 파견할 때 몰래 언질을 주었다. “너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다. 그것도 친필로 쓴 조칙에 한한다. 내가 쓴 조칙에서 ‘칙(勅)’이라는 글자 옆에 점을 한 개 더 찍어 둘 테니 그것을 표식으로 삼거라. 점이 없는 조칙은 가짜이니 조심하거라.”
-75~76쪽
또 공연을 보여 준 뒤 족장과 그 일행을 시장으로 안내했다. 시장 안 점포들은 미리 명령을 받아 외관을 새롭게 단장하고 장막을 쳐서 흥을 북돋았다. 가게 앞에는 갖가지 진귀한 물건을 잔뜩 쌓아 놓고 손님을 불러들였다. 음식점에는 골풀로 만든 돗자리를 새로 갈아 자리를 마련했고, 족장과 그 일행에게는 술을 무료로 무제한 제공했다. 값을 치르고 먹겠다고 말해도 술값을 받지 않았다. 상인들은 족장과 그 일행을 속여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풍요하니 술을 마시고 밥을 먹어도 모두 값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족장과 그 일행은 모두 놀라고 감탄하며 ‘중원 사람들은 신선이다’라고 했다.
-112~113쪽
7월 24일 우문술이 이끄는 수나라 군사들이 살수에 도착했다. 수나라 군사들은 물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강에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이때 갑자기 고구려의 승려 일곱 명이 나타나 강물 속으로 들어가 걸으며 “물이 오금에도 차지 않네”라고 했다. 이를 본 수나라 군사들은 하나둘씩 앞다투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수나라 군사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상류의 모래주머니를 터 놓았다. 강물이 거세게 밀려오자 수나라 군사들은 당황하며 서로 먼저 강을 건너려고 했다.
-142~143쪽
세 번의 원정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수서·식화지≫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처음에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가 점차 나뭇잎을 먹었다. 나무껍질과 나뭇잎을 다 먹고 나면, 흙을 삶거나 볏짚을 가루로 빻아 먹었다. 이후에는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