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저자는 ‘공명’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인 인과적 영향 관계에 있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라는 고유한 태생적 조건에서 연유하는 물질적, 관념적 반복”이라고 정의하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공명의 관점에서 기술한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기술 비평서다. 사전처럼 나열한 디지털 미디어의 기술적 장치나 요소들은 과거의 장치나 관념과 공명한다.
저자는 여기 실린 글을 학생들에게도 읽히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인문학자들은 이 자신들이 다루어 온 인문학의 고전적 자료들이 이렇게 현대적 기술과 접목될 수 있다는 데에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하는 기술이 이런 인간학적, 문화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학제 간 융합 연구의 성격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급속도로 전파되고 하이테크 이용이 일상화된 현대 기술 사회에서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일반인에게도 필수다. 여느 책과 달리 이 책은 용어사전과 같은 성격도 가지고 있기에 어떤 항목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관심이 가는 항목을 먼저 읽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다른 관심 항목으로 옮겨가면 된다.
2014년 ≪전자신문≫에 게재한 필자의 기술 비평 칼럼 “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 45편을 수정, 보완했다. 이 책은 공명의 관점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200자평
공명의 관점에서 미디어 기술을 비평한다. 공명이란 직접적인 인과적 영향 관계에 있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라는 고유한 태생적 조건에서 연유하는 물질적, 관념적 반복을 뜻한다. 공명의 관점은 미디어의 기술적 장치나 관념의 반복이 드러내는 세 가지 측면을 강조한다. 첫째, 공명은 인간 본연의 발상과 욕망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둘째, 공명은 시간적, 공간적 간극을 넘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공명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이다.
지은이
이재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연구 분야는 미디어 이론 및 기술 철학,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 소프트웨어 연구, 미디어 수용자 조사 분석, 기술 비평 등이다. 저서로 『인공 지능 기술 비평』(2019), 『모바일 문화를 읽는 인문사회과학의 고전적 개념들』(2013), 『SNS의 열 가지 얼굴』(2013), 『뉴미디어 이론』(2013),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2004), 『모바일 미디어와 모바일 사회』(2004), 『인터넷과 사이버사회』(1999) 등이 있고, 역서로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2014), 『재매개』(2006), 『뉴미디어 백과사전』(2005), 『디지털 모자이크』(2002), 『인터넷 연구방법』(2000)이 있다. 편저로 『트위터란 무엇인가』(2012), 『컨버전스와 다중 미디어 이용』(2011),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2001)이 있다.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미디어 공명
01 시각적 욕망의 기술: 재현 또는 재연
윈도 가상의 세계를 보는 창문
비트맵 이미지 픽셀로 짜는 자카르 직조기
3D 그래픽 디지털 시대의 트롱프뢰유
디지털 합성 여러 레이어를 합치는 중첩의 시각화
혼합현실 가상과 실재를 매끄럽게 통합하는 파노라마
크롬캐스트 N스크린 시대의 판타스마고리아
태그 디지털 에크프라시스
02 청각적 욕망의 기술: 듣기, 말하기
MP3 플레이어 홀로 음악을 듣는 오디세우스
오디오북 축음기 책이 종이책을 죽인다?
보이는 라디오 탈어쿠스마틱 청취로의 전환
TTS 그림, 그리고 알고리듬이 만들어 내는 음성
음성 시뮬레이션 부활한 괴테의 음성
03 촉각적 욕망의 기술: 조작하기, 만들기
오려두기와 붙이기 제록스가 만든 보편적 명령어
전자펜 손 글씨의 부활
스타일러스 고대 수메르인의 유산
원격조작 거리와 접촉의 절묘한 화해
어라운드뷰 관점과 조작의 결합
3D 프린팅 알고리듬 종이접기
04 교호적 욕망의 기술: 소통과 상호작용
트위터 1935년의 로봇 메신저, 사적 메시지의 공적 게시
SNS 현대의 서신 공화국
메신저 아이리스인가 헤르메스인가
가상공동체 테크놀로지와 휴머니즘의 놀라운 만남
심스팀 감각을 생중계하다
원격섹스 육체적 접촉의 두려움
셀카 자화상이 주는 나르시시즘
소셜 읽기 고독한 읽기의 종언
05 공간적 욕망의 기술: 정보의 공간, 가상의 공간
페이지 책의 영원한 유전자
웹 테세우스의 미궁
문서 매직 랜턴 쇼와 같은 퍼포먼스로
증강 텍스트 디지털 팔림세스트
다중 스크린 정보 공간의 물리적 확장
다중 윈도 다른 세계, 다른 이야기
온라인 저널리즘 축음기 언론, 인터넷 언론
디지털 광통신 봉수대에 이은 기간통신망
06 시간적 욕망의 기술: 기록, 기억, 미래
태블릿 수메르인의 점토판, 셰익스피어의 태블릿
텍스트 캡처 메모 도구가 된 폰카
블로그 글쓰기 강박과 관음증
로그 디지털 항해일지
기억 기술 기억의 왕 푸네스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우리 시대의 분터캄머
타임머신 디지털 기술로 떠나는 시간 여행
미래기술 예측 문학적 상상력과 전매개 방법
07 물활론적 욕망의 기술: 사물, 그리고 지능
사물인터넷 스파임이 되는 사물들
자동체 헤파이스토스의 시녀
에필로그: 기술 문명
찾아보기
책속으로
디지털 미디어는 시각적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미디어의 세계를 재현하고 또 재연한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알베르티의 창문을 통해 회화의 세계를 재현하고 또 그것을 들여다보았다면, 우리는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가상의 세계를 창문, 즉 윈도를 통해 들여다본다. 자카르가 레이스 문양을 직조기로 짜냈다면, 디지털 미디어는 시각적 재현물을 비트맵 이미지로 짜낸다. 트롱프뢰유와 입체경이 근대의 3D 재현물을 만들어 내려는 욕망을 구현해 주는 장치라면, 3D 컴퓨터그래픽은 디지털 시대의 트롱프뢰유다.
_ “01 시각적 욕망의 기술: 재현 또는 재연” 중에서
3D 프린팅의 핵심은 알고리듬이라는 정보를 물질로 전환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정보의 물질화는 탈가상화다. 추상적인 문자와 숫자로 구성되는 알고리듬을 통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3D 형태를 원하는 소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알고리듬으로 3D 자체를 만드는 것은 3D 프린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종이접기도 알고리듬으로 3D를 만든다. 유튜브에 종이접기의 일본어인 ‘오리가미(origami)’란 말에 상상하는 물체의 단어를 결합해 검색해 보라. 배나 비행기와 같이 흔히 생각하는 2D 종이접기가 아닌 입체적인 종이접기를 안내하는 수많은 동영상이 검색된다. 3D의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종이접기는 최종 완성품에 이르는 세세한 과정을 사전에 단계별로 구상해야 하는 일종의 알고리듬이자 프로그래밍의 구현이다. 길게는 한 시간씩 걸리는 이런 과정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딩하면 수백 줄이 될 것이다. 알고리듬을 글로 쓰지 않고 머리로 구상하는 사람은 천재임이 분명하다! ?
_ “03 촉각적 욕망의 기술: 조작하기, 만들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