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러 문학 연구자들이 발라드의 정의를 기술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발라드’라는 용어 자체의 기원이 분명하지 않고 또 각기 다른 민족에게도 유사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라드를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정의한 설명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주장에 따르면, 발라드는 켈트어 “qwaelawd(wallad)”에서 유래했으며, 그 본래 의미는 ‘설화체의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발라드는 ‘춤을 추다’를 의미하는 라틴.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발라드 작품들은 보다 오래전에는 노래로 불렀을 뿐만 아니라 그 곡조에 맞추어 춤도 추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만들어졌다.
서사적 또는 서정적 민요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젊은 장르로 인식되는 발라드는 14∼15세기 이후가 되어서 비로소 등장한다. 때문에 헝가리인들은 중세 후기 사회에서 형성된 이 새로운 장르를 ‘긴 노래’, ‘이야기’, ‘이야기 노래’, ‘옛 노래’, ‘오래된 노래’ 등으로 불렀다. 즉, 발라드는 곡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말로써 나타내고, 서정 시가들보다 긴 길이를 가지며,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헝가리 땅에서는 16세기부터 발라드 작품들에 관한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헝가리 발라드 장르의 시작은 프랑스 발라드 작품들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41년부터 1242년까지 몽골 침입의 결과로 헝가리 왕국의 인구가 반감하게 되어 헝가리 왕 벨러 4세는 국가 재건을 위해 많은 외래인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폈다. 특히 11세기부터 14세기 말까지 프랑스, 왈론인들이 헝가리 지역으로 이주 정착했다. 상당히 많은 수의 헝가리 발라드 작품이 직접적으로는 프랑스에 근원을 둔 것으로 추정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실제로 이 두 민족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헝가리 발라드들이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이 입증되었다.
헝가리 민중 발라드는 전통적인 농민 문화 가운데 민담이나 민요에 비해서는 보다 좁은 사회적 계층에게만 알려졌고, 대개는 역사적이거나 전설적인 중세적 주제 또는 낭만적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헝가리 발라드 연구자인 그레구시 아고슈트는 “발라드는 비극적인 노래로 이야기된다”라고 정의했고, 버르저시 러이오시는 “발라드는 극적이고 서정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는 이야기 시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발라드의 서사적 요소이고, 가창된 텍스트 형식은 서정적 요소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발라드의 주인공들은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종종 그것이 낭송되는 것을 듣는 청중 가운데서 누군가 그다음 연(聯)을 짓는 경향이 있었고, 그 운율은 단순하다. 그리고 발라드에서는 관객과 청중을 위해서 등장인물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는 필요하지 않다. 발라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가운데 주로 비극적인 에피소드 한 가지만을 잘 알려진 스토리를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발라드는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만을 끄집어낸다. 선택, 요약, 집중을 통해서 잘 알려진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을 보여 주는 발라드는 극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가장 극적이고 신나는 것들만 묘사하고, 그 사이에 생략된 부분은 우리의 상상력으로 보충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에만 근거해서 과감하게 생략하기 때문에 발라드 작품에는 주인공과 그를 방해하는 자들만이 등장한다. 우리는 등장인물들 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알게 된다. 발라드에 자주 사용되는 반복 구조는 구연자의 기억을 도울 수 있고, 청자들에게 전달된 내용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발라드에서 흔히 있는 특정 어구의 반복은 시의 극적인 긴장을 증대해 주기도 한다.
헝가리 민중 발라드의 구연자는 개인 또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데, 그들의 전통적인 구연 태도는 곧고 바른 자세와 엄숙한 표정으로, 오른쪽 손을 오른쪽 귀 옆으로 들어 올린 채 유지한다. 곡조와 가사는 자신들의 기억에서 불러내며, 그들이 배우고 익혔던 대로 재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연인 등에게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부여하기도 하고 가사를 약간 변형하기도 하며, 또는 다른 곡조에 맞춰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구연자는 작품 속 등장인물과 완전히 일치되어, 마치 자신이 등장인물의 정신세계에 살고 있는 듯 이야기의 주제에서 벗어남이 없도록 가능한 한 관점을 바꾸지 않고 그 전달 방식과 일치시킨다.
200자평
헝가리 최고의 민속학자가 가장 헝가리적인 괴뫼르 지역의 민중 발라드를 묶었다. 헝가리 민중의 삶의 애환과 해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로 우리 민중의 노래이기도 하다. 코슈트 상을 수상한 홀로 라슬로의 삽화와, 우이바리 졸탄이 채록한 발라드 악보도 함께 실었다.
엮은이
우이바리 졸탄은 1932년 1월 25일 헝가리 헤트에서 출생했다. 리머솜버트에서 시작한 중등학교 과정을 미슈콜츠에서 마쳤다. 1955년 데브레첸대학교헝가리어과에서 학위를 취득한 이후, 동대학 민속학과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부터 정교수로 임명되어 20여 년 동안 민속학과 학과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우크라이나 웅그바르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레바르트, 헤트, 마테설커, 니러차드에서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피트레, 죄르피 이슈트반, 모러 페렌츠, 오르투터이 줄라, 쾰체이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헝가리 학술원상을 받았다. 우이바리 졸탄은 민속 시가, 풍습, 민속 드라마, 문학과 민속학의 연관성, 문화, 신화 등 폭넓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문화와 전통≫, ≪민속학과 민족학≫, ≪Studia Ethnographica et Folkloristica≫ 시리즈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고, 잡지 ≪민족≫의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민속 시가 모음집인 ≪괴뫼리 민요와 민중 발라드≫(1977), ≪날아라, 제비야≫(1980), ≪농부의 속담과 격언≫(1996), ≪속담모음집≫(2001), ≪속담과 격언 대 사전≫(2003) 등을 출간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일화모음집으로 ≪화덕 안의 새색시≫(1986), ≪괴뫼리에서 마차시 왕≫(1990), ≪괴뫼리의 유쾌한 일화≫(1995)이 있다. 헝가리 민속 드라마를 다룬 업적들은 이전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결과물로, 드라마사적인 관점에서도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워 주는 역할을 했다: ≪놀이와 가면 1∼4≫(1983~1988), ≪사육제 풍습≫(1991), ≪민속극과 가면 풍습≫(1997). 소설적 가치가 있으며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인들 추방에 관해 다룬 ≪고향에서 실향민이 되다≫는 외국어로도 출판되었다. 1999년 보르네미서 페테르의 ≪악마의 공포≫에 들어 있는 민속학적인 요소들, 그리고 2004년 모러 페렌츠의 작품에 들어 있는 민속적인 요소들을 개작해서 출판했다. 일생의 업적을 정리하는 의미로 ≪가르침과 연구≫를 1992년에 처음으로 출판했고, 같은 해에 ≪60년의 기념물≫과 그간의 연구 논문들을 정리한 ≪문화와 전통≫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했다. 그리고 60세 생일을 기념해 그 일생의 업적에 대한 서지를 출간했다.
옮긴이
이상동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헝가리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헝가리 데브레첸대학교에서 헝가리 발라드 장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헝가리 발라드와 한국 서사민요에 대한 다수의 비교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차례
서문
남우세스러운 처녀
사형 선고 받은 죄수의 누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춤추게 된 처녀
탈곡기 안으로 떨어진 처녀
세 명의 고아
공작(孔雀)을 돌보는 처녀
신붓감을 찾아 나선 왕자
거위를 돌보는 소녀
기만(欺瞞)당한 남편
로저 샨도르
보가르 임레
비드로츠키
야게르 요슈커
버르너 피슈터
감옥에 갇힌 무법자
감옥에 갇힌 두 청년
살해당한 총각
부록
해설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보르처, 내 예쁜 딸아,
치마 앞이 왜 자꾸 짧아지누!
재단사가 재단을 잘못하고,
재봉사가 재봉을 잘못했죠!
자 가거라, 어서 가거라
저 캄캄한 감옥으로.
저 캄캄한 감옥에서
단두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