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교수된 자들의 숲≫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다.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의 상호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양심이 어떤 전개양상을 보여 주는지 엄격한 논리적 전개를 통해 묘사했다.
소설의 서문에서 “1917년 루마니아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의해 처형된 나의 동생 에밀을 추모하며”라고 밝힌 것처럼 오스트리아-헝가리 장교로서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 탈영을 시도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한 작가의 동생 에밀이 주인공의 원형이다.
모두 네 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반역죄로 고소된 체코인 스보보다 소위의 교수형으로 시작된다. 사형 집행을 침묵과 슬픔으로 일관되게 지켜본 클라프카(Klapka) 대위와 달리 주인공 볼로가 중위는 체코인 장교를 죽음으로 내몬 군사법정에 참석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교수형을 당하던 스보보다 소위의 눈에 교차하는 분노와 자유를 본 뒤 깊은 충격을 받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하다 마침내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자아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이 소설은 자신의 민족인 루마니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전선으로 내몰리고, 또 자신과도 같은 루마니아인 병사들을 위한 군사법정에서 형 집행을 담당하도록 강요당하며, 탈출구 없는 벼랑의 끝으로 내몰리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전쟁의 사실적 묘사와 결부되어 그려졌다.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는 12세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헝가리와 오스만 터키, 합스부르크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의해 순차적으로 지배를 받았던 지역이다. 다수 민족을 구성하고 있던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으며, 생존에 필요한 기득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헝가리 상류층과 동일한 위치인 지식인 사회로 진입해야만 했다. 민족의식과 국가의식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비극을 기반으로 한 ≪교수된 자들의 숲≫은 물질과 정신적 삶마저도 유린당하며 숙명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당시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을 전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했다.
200자평
루마니아 전쟁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리비우 레브레아누의 작품이다. 191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장교로 근무하던 동생이 탈영과 반역죄로 처형당한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했다. 주인공 볼로가의 죽음 속에서 인간주의적 확신과 신념, 그리고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지은이
리비우 레브레아누(Liviu Rebreanu)는 1885년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9년 일련의 단편들을 발표하면서 데뷔한 작가는 루마니아 문학에 있어서 사실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자연주의적 심리 분석을 작품 속에서 시도했다. 작가의 짧지 않은 군생활과 장교였던 동생이 탈영과 반역죄로 처형당한 아픔은, 그가 루마니아 문학에 있어서 사실주의 작가 및 전쟁문학의 대가로 평가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국가문학상을 받았으며, 작가협회 부회장과 학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옮긴이
김정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를 졸업하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루마니아 상징주의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동유럽 구비문학 비교연구≫(공저)가 있고, 역서로 ≪납-제오르제 바코비아 시선집≫, ≪동유럽 사람들은 삶을 어떻게 노래했을까≫(공역)가 있다. ≪천상병 시선집(Cheon Sang Byeong-Întoarcerea în Cer)≫과 이상 선별집 ≪날개(Yi Sang-Aripi, opere alese)≫ 등 한국 문학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루마니아 시와 구비문학, 민속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에서 강의하며, 같은 대학 동유럽발칸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편
3편
4편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포스톨 볼로가는 죄수의 얼굴에 그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닿자 붉게 달아올랐다. 망치질하듯 고동치는 심장 소릴 들었고, 작은 것을 억지로 씌운 듯이 철모가 두개골을 조여 왔다.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이 그의 뇌 속에서 들끓었다. 왜냐하면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종이를 쥔 채 집행관이 범죄를 열거하는 동안, 올가미 줄 아래 소위의 얼굴에는 생명의 원기가 충만했고, 그의 동그란 눈동자는 마치 다른 세계에까지 비추듯이 불타오르는 자부심으로 광채를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이 광경은 볼로가를 두렵게 만들었으며, 또한 그의 감정을 자극했다. 조금 지나지 않아 죄수의 눈에서 발하는 불꽃이 고통스러운 오명(汚名)처럼 그의 마음속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애써 다른 곳을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결수의 눈은 죽음에 대한 경멸의 시선과 거대한 사랑으로 미화되어 그를 반하게 만들었다. 첫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강요된 죽음의 순간에 놓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급기야 볼로가는 죄수의 입에서 구원의 소름 끼치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