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소설가 김동리는 뛰어난 비평가였다. 1937년 <이태준론>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40년 전후 문단을 뜨겁게 달군 세대 논쟁, 민족문학 건설의 성격과 방향을 둘러싼 민족문학 논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면서 이른바 민족주의 문학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솟아오른다. 그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과격한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공략했다.
1930년대 후반에 시작된 세대 논쟁의 전선에 서서 이른바 신인 작가의 대변인 격으로 평필을 세운 김동리가 주된 비판 대상으로 설정한 이는 유진오다. 그는 유진오가 대변하는 30대 작가의 문학이 이데올로기에 ‘봉쇄 내지 예속’된 문학임을 들어 일축하고, 신세대 문학이 작가 개개인의 ‘개성과 생명의 구경’을 추구하는 작가 정신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생’을 그리고 있다고 하여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김동리의 구경적 의의 추구의 문학론은 더 나아가 ‘공통된 운명’을 문제 삼는 ‘문학하는 것은 구경적 생의 형식’이라는 명제를 낳는다. 이를 통해 인간 모두는 천지(우주, 자연)와 유기적 관련을 맺는데, 이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에 노력하는 것’이 곧 구경적 삶이고 문학하는 이유 또는 문학하는 것의 목표라고 주장한다.
김동리의 구경적 의의 추구의 문학론은 작가 개개인의 자기실현과 관련된 것이면서 대상으로서의 인간 탐구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을 품고 있는 문학론으로 무장한 김동리는 해방 공간 문단의 격류 속으로 뛰어들어 프로문학 진영과 혈투를 벌였다.
김동리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문학관을 밝히는 글과 자신이 창작한 소설 작품을 해설하는 글을 여러 편 쓰기도 했다. 제1장에 실린 세 편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 자신의 문학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인상적이다. 이 글들은 내밀한 창작 과정을 드러내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독자는 작가의 안내를 따라 <무녀도>, <역마> 등 김동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과 깊게 만날 수 있다.
작가론·시인론 등에서도 동시대 다른 평론가들과는 구별되는 높은 수준을 보였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동시에 문제 삼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체로 내용만을 다루는 비평들과는 구별되고, 한 작품 또는 어떤 작가의 문학을 다룰 때 그 핵심을 포착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지엽말단에 치우치는 낮은 수준의 비평들과 날카롭게 구별된다. 제4장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김동리 비평의 이 같은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들이다. 이 평문들은 이들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기왕의 해석과는 다른 차원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것들로서 새로운 해석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후 이들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연구는 김동리의 이들 평문에서 시작했다고 말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200자평
훌륭한 소설가이자 뛰어난 비평가였던 김동리. 1940년대 문단을 뜨겁게 달군 세대 논쟁과 민족문학 논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면서 민족주의 문학 진영의 대표 논객으로 솟아올랐다. 이 책은 김동리의 문학관, 세대론과 ‘구경의 문학’론, 작가론 등 비평가 김동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표 평론을 뽑아 엮었다.
지은이
김동리(金東里, 1913∼1995)는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시종(始鍾)이고 근대의 사상가로 유명한 범보(凡夫) 김정설의 아우다. 대구 계성중학을 거쳐 서울 경신중학에 전학했으나 중퇴했다. 이후 학교 교육은 받은 적이 없으며, 맏형인 범보의 지도 아래 독학했다. 1934년 <백로>(시), 1935년 <화랑의 후예>(소설), 1936년 <산화>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 창작과 소설 창작을 병행하는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경남 사천의 다솔사에서 운영한 ‘광명학원’의 교사로 일하는 등 지방에 은거하여 시대의 광풍을 피했으며, 당시의 대부분 문인들과는 달리 친일의 욕된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김동리는 문인 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깊이 관여하며 오랫동안 문단을 이끌었다. 1946년 좌익 진영의 문인 조직에 맞서 ‘전국문필가협회’ 결성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곽종원, 서정주 등과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여 그 초대회장이 되었고, ‘한국문학가협회’ 부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위원장, ‘한국문화예술원’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한편 김동리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취임한 이래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이후 한국 문단을 주도하는 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김동리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어려운 상황 속에 들었지만 끝끝내 자신을 지켜 내는 강한 주체가 그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는 점이다. 그 강한 주체는 무당, 주모, 낙백한 전향자 등 하나같이 주변부 존재로서 중심부를 장악한 지배 질서 밖으로 밀려났으며 동시에 스스로 그 같은 소외를 선택한 외로운 존재다. 말하자면 그는 ‘소외된/스스로를 소외시킨’ 존재다. 그는 또한 세계의 억압에 눌려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제약당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한 주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김동리는 뛰어난 비평가이기도 했다. <이태준론>(≪풍림≫, 1937. 3)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한 김동리는 1940년 전후의 세대 논쟁,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 논쟁 등에서 이른바 민족주의 문학 진영의 대표적인 비평가로서 평필을 휘둘렀다. 이들 논쟁 과정에서 생산된 평문들을 중심으로 엮은 평론집 ≪문학과 인간≫(1948)은 이 시기 한국 비평계의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김동리의 비평은 위에서 살핀 바 그의 소설이 그러했듯이 문학 주체의 개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비평을 이끄는 문학론이 ‘개성과 생명의 구경적 의의 추구의 문학론’이라는 것, 정치적인 이념을 강조하여 문학 주체의 개성을 억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속시키는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시기 진보적 문학 진영에서 주장한 ‘당’과 ‘인민’에 복무하는 문학이 대표적이다)을 근본 부정했다는 것 등은 이와 관련된 것이다.
문학 주체의 개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김동리의 문학관은 근본적으로 논쟁적이다. 소설 창작인 본업인 김동리가 논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당대 한국 문단의 중심을 장악한 문학 진영과 맞서 싸운 것은 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김동리는 비평에서 또 휴머니즘을 강조했는데 ‘제3 휴머니즘’, ‘인간성 옹호’ 등의 말은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김동리 비평은 또 동서 문학 정신의 지양을 통해 세계문학의 한 부분으로서의 민족문학을 건설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관류해 온 외국 문학 추수주의와 배타적인 국수주의의 두 극단적 이념과 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산물이다. ‘세계문학의 한 부분으로서의 민족문학’이란 김동리의 명제는 외국 문학과 우리 문학의 바람직한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의 정립이라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김동리는 소설 창작과 대학에서의 문학 교육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 개론과 소설 창작론을 저술하기도 했다. ≪문학개론≫(1953), ≪소설 작법≫(1965), ≪문예 창작법 신강≫(1976) 등이 그것들이다.
엮은이
정호웅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이래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서 우리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에 ≪우리 소설이 걸어 온 길≫, ≪한국 현대소설사론≫, ≪임화−세계 개진의 열정≫, ≪반영과 지향≫, ≪한국문학의 근본주의적 상상력≫, ≪한국의 역사소설≫, ≪김남천 평전≫, ≪문학사 연구와 문학 교육≫ 등이 있다. ≪김동리 작품집≫과 ≪김남천 작품집≫을 엮었으며, 이주형·권영민 교수와 함께 ≪한국 근대 단편소설 대계≫(전 35권)와 ≪한국 근대 장편소설 대계≫(전 30권)를, 손정수 교수와 함께 ≪김남천 평론선집≫(전 2권)을 편집하는 등 우리 근대문학 자료를 엮어 간행하는 작업도 많이 했다.
차례
제1장 작가 수업의 기록, 자작 해설
나의 小說 修業−‘리알리즘’으로 본 當代 作家의 運命
主題의 發生−創作 過程과 그 方法(<黃土記> 篇)
원작과 映畵−<역마(驛馬)>와 <까치 소리>를 중심으로
제2장 세대론과 ‘구경의 문학’론
‘純粹’ 異議−兪 氏의 歪曲된 見解에 對하야
新世代의 精神−文壇 ‘新生面’의 性格, 使命, 其他
文學 하는 것에 對한 私考−나의 文學 精神의 志向에 對하여
제3장 정치주의 문학과의 대결
純粹文學의 眞義−民族文學의 當面 課題로서
本格文學과 第三世界觀의 展望−特히 金秉逵 氏의 抗議에 關하여文學과 自由를 擁護함−詩集 ≪凝香≫에 關한 決定書를 駁함
文學과 文學 精神
文學과 政治
제4장 작가론, 서평
散文과 反散文−李孝石論
靑山과의 距離−金素月論
自然의 發見−三家詩人論
徐廷柱의 <鞦韆詞>
靑馬의 ≪生命의 書≫
해설
김동리는
엮은이 정호웅은
책속으로
이까지 적어 놓고 보니 이 口氣가 그러니 정말 진정한 리알리즘은 내밖에 시험한 사람이 없었노라는 듯키도 들려진다마는, 그까지는 實相 過한 말이겠고, 그렇다고 짜정 謙辭 투를 뺄 腹膓도 안이다.
―<나의 소설 수업>
우리는 첫째 사는 것이다. 모든 文學的 創造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참되게 높게 아름답게 깊게 살 수 있느냐 하는 데 集中되어야 할 것이다. ‘究竟的 生’은 文學을 通해서던 政治를 通해서던 宗敎를 通해서던 哲學을 通해서던 或은 敎育을 通해서던 科學을 通해서던 꼭 같이 可能한 것이 原則이며 實地로 또 可能했던 것도 事實인 것이다.
―<순수문학의 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