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김동인의 작품 세계는 ‘모순’이나 ‘이중성’으로 요약된다. 유아독존적인 성격을 지녔음에도 무력감을 느끼는 운명주의자의 처지를 거스르지 못한 점, 이상적으로는 절대적 모성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여성 혐오증을 지닌 점,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면서도 나중에는 대중소설을 집필한 점 등이 그렇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한국 근대문학이 형성되어 가는 미완성의 궤적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약한 자의 슬픔>(1919)은 김동인의 첫 작품이다. 여기서 ‘약한 자’는 ‘강엘니자벳트’다. 신식 교육을 받았으며, 조실부모한 고아다. 그녀는 왜 약한가.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라는 신분이 이미 약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가 의식적으로는 ‘리환’을 사랑하지만 가정교사로 있는 집안의 K 남작에게 겁탈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송사까지 벌였으나 패소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엘니자벳트’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눈뜨게 되고, 자존과 자립에 대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 약한 자임을 앎으로써 비로소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획득한다.
<배따락이>(1921)는 김동인의 소설 중 형식상 완성도가 가장 높다. 한국 근대문학사상 첫 액자소설로, 1인칭 화자 ‘나’가 배따라기를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겉이야기와, 영유 마을의 형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속이야기가 이중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런 액자 구성은 이후 <광염소나타>(1930)나 <광화사(狂畵師)>(1935)에서도 지속적으로 활용된다.
<감자>(1925)는 김동인을 자연주의 계열 작가로 간주하게 하는 작품으로서, 환경결정론적인 시각에서 주인공 복녀의 도덕적 타락을 조명하고 있다. 칠성문 밖의 빈민굴을 무대로 ‘가난’이라고 하는 물질적 조건이 ‘도덕’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어떻게 말살해 가는지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런 비극의 과정을 프로 문학적인 계급의식으로 풀지 않고, 또한 일제강점기 시대였지만 민족의식으로도 풀어내지 않는 개성적 면모를 보여 준다. 단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인간의 삶을 해부한다는 자연주의적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발까락이 닮엇다>(1932)는 방탕한 성생활로 인해 성병에 걸려 생식 불능이 된 남자가 결혼한 후 얻게 된 자식을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심정을 그린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염상섭을 실제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돌아 발표 당시부터 물의를 일으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설 속 M이 자기 자식일 수 없는 자식을 바라보며 ‘발가락이(라도) 닮았다’라고 합리화하는 의식의 메커니즘이다. 실체적 진실이나 현실적 사회와 유리된 채 자기 유폐에 빠진 돈키호테의 희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발까락이 닮엇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돈키호테적 인물이 예술지상주의와 만난 작품이 바로 <광화사>(1935)다. <광염소나타>와 더불어 오스카 와일드류의 예술지상주의적 면모를 보여 준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추한 외모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몇십 년 간 격리되었다가 소경 처녀를 만나 절대미를 완성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그 소녀를 죽이고 자신조차 파멸로 치닫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 예술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김동인의 시각을 유추할 수 있다.
200자평
평양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전통 유교사상에 비판적이고 유아독존식 엘리트 의식을 갖추게 된 작가 김동인. 패기만만하게 19세의 나이로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초의 문예 동인지인 ≪창조≫를 만들기까지 했던 작가의 중·단편을 발표 당시의 표기법 그대로 실었다.
지은이
김동인(1900∼1951)은 1900년 10월 2일 평양 하수구리 6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부호였다. 400평이 넘는 큰 집을 소유하고 개화사상을 지녔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전통적 유교사상에 대한 비판이나 유아독존적인 엘리트 의식의 배경이 된다. 일본 유학 중 약관 19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요한, 전영택, 김환, 최승만 등과 함께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초의 문예 동인지인 ≪창조≫를 1919년 2월 8일에 창간하여 1921년 5월 9호로 종간하기까지 3년 간 발간하면서 한국 문단을 주도했다.
춘원 이광수의 계몽적이고 민족적인 문학에 반대하면서 “소설은 인생의 회화이며, 소설가는 종래의 습관, 풍속의 불비된 점을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이 옳지만, 개선 방책까지 제시해 주거나 직접적인 사회 교화를 꾀해서는 안 된다”(<근대소설고>)는 반공리주의적인 문학관을 주장하면서 순문예운동을 이끌었다. 처녀작인 <약한 자의 슬픔>(1919)을 필두로 <배따락이>(1921), <태형>(1923), <유서>(1924), <감자>(1925), <명문>(1925) 등의 소설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대성 추구나 단편 양식의 확립에 공헌했다.
하지만 술과 여인으로 점철된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생활이 문제였다. 이로 인해 첫 번째 부인인 김혜인이 가출하고, 경제적으로 파산을 한 후 육체적으로도 몰락하여 불면증과 약물중독으로 인해 임종 시까지 고통받았다. 1930년에 김경애와 재혼하고, <광염소나타>(1930), <붉은 산>(1932), <발까락이 닮엇다>(1932), <광화사>(1935) 등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스스로도 ‘훼절’이라고 자탄하며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1934), ≪대수양≫(1941), ≪을지문덕≫(1948) 등 대중 역사소설을 집필한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김동인의 역사소설은 풍속사적인 의의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해석의 신선함을 제공한다. 가령 이광수가 ≪단종애사≫를 통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면서 단종의 처지를 옹호하는 보수적 명분론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김동인은 ≪대수양≫을 통해 수양대군의 진취적이고 혁명적인 모습을 긍정하는 진보적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준다.
그 후 친일 행위로 인한 갈등과 6·25 전쟁 체험을 거치면서 김동인은 중풍과 정신착란, 뇌막염 증세까지 보이면서 피난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전쟁 중 홀로 비참하게 자신의 집에서 최후를 맞았다.
엮은이
김미현(金美賢)은 1965년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6년 <한국여성소설의 페미니스트 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계간 ≪세계의 문학≫의 편집위원이다. 저서로는 ≪한국 여성소설과 페미니즘≫,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 ≪여성문학을 넘어서≫ 등이 있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락이
감자
발까락이 닮엇다
광화사(狂畵師)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으로 못 갓다. 王 서방은, 몃 번을 복녀의 집에, 복녀의 남편을 차저갓다. 복녀의 남편도 때때로 王 서방을 차저갓다. 둘의 새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잇섯다.
사흘이 지낫다.
밤ㅅ중에 복녀의 시톄는, 王 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옴겻다.
그러고, 그 시톄 압페는 세 사람이 둘러안젓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王 서방! 또 한 사람은, 엇던 漢方醫. 王 서방은, 말업시 돈주머니를 꺼내여, 十 圓짜리 지페 석 댱을, 복녀의 남편의게 주엇다. 漢方醫의 손에도, 十 圓짜리 두 장이, 갓다.
이튼날, 복녀는 腦溢血로 죽엇다는 漢方醫의 診斷으로, 공동묘지로 가저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