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김우창의 비평은 한국 비평의 지적 깊이와 넓이를 표상한다. 이는 이성을 토대로 하는 사유 방식에서 기인하는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와 판단은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명제를 낳는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일관하는 형상과 법칙을 이성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전체에 대한 통찰은 심미적 이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개념이나 표상 이전의 구체적인 체험과 형상의 세계를 드러낸다. 이때 이성 주체의 심미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답은 인간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데에서 구할 수 있다. 의식의 주체로서 인간은 어떤 상황이나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한 행동의 결과를 추구하고 기억하는 존재’다. 인간의 기억과 체험은 각각 ‘내면화된 경험으로 기억되는 것’, ‘내면의 주관적 삶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내면은 ‘존재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이 내면성을 심화하면 ‘의식을 모든 인간과 사물을 포용할 수 있는 보편성으로 확대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확대된 보편성은 개체의 내면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의 속성을 지닌다. 그러한 사회에는 ‘강제력이 아니라 자유에 기초’하는 혹은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해방하는 기능’이 내재해 있다. 개체의 내면성이 폐쇄적인 것을 너머 ‘보편에의 길을 트’는 경우를 문학작품이나 예술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문학이나 예술에서의 체험이 ‘개인의 것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가 어떤 문학작품이나 예술 작품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체의 내면성의 보편화라는 원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심미적 이성의 구조에 대한 탐색을 통해 인간 삶의 내면성과 존재의 전체성을 드러내려는 김우창 비평의 의도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그의 사유가 시대와 역사의 실존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근현대사의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우리 근현대사의 상황은 좌우의 극단적인 이념의 득세와 파시즘적 정치 체계의 만연으로 인한 합리성의 부재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자유주의적인 합리성의 부재는 그로 하여금 이것에 대한 비평적인 갈망과 실존적인 추구를 표 나게 옹호하고 지지하게 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가 내세운 자유주의적 합리성은 민중이나 노동의 이념과 길항 관계를 유지하면서 불화, 모순, 부조리, 파열, 불일치 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시도한다.
200자평
한국 비평의 지적 깊이와 넓이를 표상하는 김우창의 비평 일곱 편을 엮은 책이다. 그의 비평은 심미적 이성의 구조에 대한 탐색을 통해 인간 삶의 내면성과 존재의 전체성을 드러낸다. 이로써 구체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시도하며, 인간과 존재의 진리에 이르는 길을 탐색한다.
지은이
김우창(金禹昌)은 1936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출생했다. 1948년 광주서석초등학교, 1951년 광주서중학교, 1954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영문학과로 전과, 1958년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에서 수학했고, 1961년에는 미국 코넬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1975년에는 하버드대학에서 미국문명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학과 전임강사, 1969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학 미국학 과정 연구원, 1970년부터 1972년까지 같은 대학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이후 귀국하여 1974년부터 2002년까지 고려대 문과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2003년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08년에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되었다.
1976년부터 1996년까지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비평≫ 발행인을 지냈다. 2000년 제1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2004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 2005년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08년 동아시아포럼 한국집행위원회 위원장, 2011년 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국내외의 여러 행사를 주관했다.
저서로는 평론집으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과 ≪지상의 척도≫(1981)가 있고, 평론 선집으로 ≪심미적 이성의 탐구≫(1992)와 ≪체념의 조형≫(2013)이 있으며, 평론 전집으로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과 ≪지상의 척도≫에 ≪시인의 보석≫, ≪법 없는 길≫,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를 더해 출간한 ≪김우창 전집≫(전 5권, 1993)이 있다. 이 밖에도 역서 ≪비의 왕 핸더슨≫(1971), ≪가을에 부쳐≫(1976), ≪미메시스≫(1987, 유종호와 공역), ≪나, 후안 데 파레하≫(2008) 등이 있고, 칼럼집 ≪시대의 흐름에 서서≫(2005)와 ≪성찰≫(2011), 대담집 ≪행동과 사유: 김우창과의 대화≫(2004)와 ≪세 개의 동그라미−마음·지각·이데아≫(2008), 편저 ≪예술과 사회≫(1979)와 ≪문학의 지평≫(1984, 김흥규와 공편), 미술 에세이집 ≪풍경과 마음≫(2003), 인문 에세이집 ≪자유와 인간적인 삶≫(2007)과 ≪정의와 정의의 조건≫(2008), 인문 강연집인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2012) 등이 있다.
1981년 서울문화예술 평론상, 1993년 제4회 팔봉비평문학상, 1994년 제2회 대산문학상, 1997년 제14회 금호학술상, 1998년 고려대학술상, 2000년 제41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2005년 제19회 인촌상을 수상했고, 2003년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엮은이
이재복(李在福)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상 소설의 몸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2001)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소설과 사상≫ 겨울 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문화계간지 ≪쿨투라≫, 인문·사회 저널 ≪본질과 현상≫, 문학계간지 ≪시와 사상≫, ≪시로 여는 세상≫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에 제9회 고석규비평문학상과 제5회 젊은평론가상, 2009년에 애지문학상(비평), 2013년에 제23회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겸 한양대 미래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등이 있다.
차례
궁핍한 시대의 詩人
산업시대의 물건과 욕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산업 시대의 미학과 인간
상황과 판단
문학의 발전−문학적 지각의 본질에 대한 한 고찰
예술의 삶: 그 일치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
自由·理性·政治
해설
김우창은
엮은이 이재복은
책속으로
義士의 시대는 영웅의 시대보다 조금 더 불행한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말할 수 있다. 의인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고 또 의인다운 시인일망정 시인만을 가진 시대는 그보다 더 불행하다고. 韓龍雲은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跋詩에서 ‘여러분이 나의 詩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를 슬퍼할 줄을 압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의 자손의 시대에 있어서 그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 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불행의 종말을 예상하고 그 종말과 더불어 그의 시가, 지난 계절의 꽃이 될 것을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늦은 봄의 꽃 수풀에 있는가?
韓龍雲의 시는 우리 현대사의 初半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대까지를 포함한 ‘궁핍한 시대’에서 아직껏 가장 대표적인 국화꽃으로 남아 있다.
―<궁핍한 시대의 詩人>
예술은 삶의 전체에, 그것의 내면적이고 외면적인, 욕망과 현실의 전체적인 변증법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그것은 우리의 삶에 불가결한, 그것을 깊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형성적 힘이 될 수 있다.
―<예술의 삶: 그 일치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