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응교는 중요한 시적 자질 중의 하나인 착한 마음을 타고났다. 터무니없이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권력이나 제도의 폭력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 등으로 무장되어 있기도 한 그의 착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 결과의 언어적 표현, 그게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현종(시인)
김응교는 고요히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는 씨앗이 품고 있는 ‘고요한 운동성’을 지닌 시인이다. 한 번 방향을 잡으면 쉼 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한 번 생명을 품으면 반드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그의 시는 멈추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그는 무엇보다 분단 조국에 대한 가슴 뜨거운 고뇌와 분단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폭력과 불의에 대한 미움을 껴안고 있는 사람이다. 옳은 일을 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나 감옥 밖의 세상에서나 그는 늘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이들의 편에 서 왔다. ‘너무 오래 춥고, 너무 오래 서러웠으’면서도 수직으로 날아오르는 새 떼처럼 그의 시정신도 그의 시와 삶도 외롭고 망막하던 허공을 뚫고 수직 상승하기를 기대한다.
-도종환(시인)
시인 김응교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세상은 좀체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그의 시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의 풍경도 많이 등장한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 못지않게 아름답지 못한 세상도 힘껏 사랑하기 때문이다.
-박상률(시인)
200자평
온 우주를 잉태하는 식물의 자궁이자 새로운 개체로 자라날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 물질 ‘씨앗’. 김응교의 시는 바로 이 ‘씨앗’의 상상력의 결실이다. 시인의 말씀[言]이라는 씨앗은 사원[寺]에 안착함으로써 시가 된다.
1999년 하늘연못에서 출간한 그의 첫시집을 복간했다. 시인의 뜻에 따라 일부 시는 새로이 고쳐 썼다.
지은이
김응교는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실천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 ≪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사회적 상상력과 한국시≫,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 新幹社, 2007), 장편 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오스기 사카에의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 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 2007) 등이 있다.
차례
늙은소
1부 사시미에 대한 명상
책
냄비
외짝 구두
콩나물국
통조림
雪國
집으로 가는 길
얼큰싱글
오뎅
낡은 구두
오, 묘한 맛사지
이력서
오사카 카나리아
까마귀
꽃제비·1
꽃제비·2
동경에 가신다구요
빈방
홀로 있어도 숲이다
2부 얼얼 초록힘
아기 먼동
메주
喪家는 아늑하다
초당에 오르다
번개
사천
노다지
막걸리
시냇물
길
철탑
배짱
堤防
얼얼 초록힘
3부 다시 찾은 뒷골목
쑥국새야
항해
눈
애인에게 보내는 葉書
수감자
탈영병
버드나무
실십자가
청부업자
엄마
코미디
다시 찾은 뒷골목
프리지어
묘비명
민들레 밥상
무쇠다리
立秋
마지막 한 잔
쇠창살 편지
새 떼
추신
햇살
4부 씨앗에게 인사한다
바다
저능아의 어머니날
첫 교실
손
묘
굴비
월롱리 까망머리
파주
再會
봄들이 하는 말
시든 잎
씨앗에게 인사한다
<씨앗>의 상상력 / 유성호
낡고 오래된 씨앗도 싹이 튼다 / 안상학
김응교는
책속으로
씨앗에게 인사한다
사과 한 알, 땡볕 씨앗이 기른 거야
저녁 밥상, 아버지 지친 어깨 씨앗이 차린 거야
꽃 한 송이, 凍土 씨앗이 낳은 거야
온갖 어둠도, 씨앗이 품고 있어
라고 말하려는 게 아냐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몇 천 년 명상한다 하더라도
씨앗의 엄청난 알힘,
고요한 운동성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네 흐느낌 속에
벌써, 굳은살 씨앗이 움트고 있어
책
씨앗은 몸을 갈라 떡잎을 만들고
떡잎은 비밀을 모아 나무로 자란다
통나무는 무수히 살을 갈라
한 장 종이쪽이 되고
종이는 몸을 벌려 역사를 받아들인다
무거운 역사, 그래서 책은 무겁다
그런데 진짜 역사는
폭풍우의 심장까지 직시하는 잎사귀에 적혀 있거나
잎새 사이를 나는 새의 반짝 숨결에 적혀 있지
진짜 책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