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김준오의 비평은 ‘탈규범적 확장의 비평’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탈규범적 확장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규범적 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는 말했다. “시적이란 것이 무엇인가가 근본적인 관심사였고 그래서 저 나름대로 ‘동일성의 시론’이라는 성격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 서정 장르에 대한 정의 자체는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는 역사적 국면을 갖고 있습니다. (…) 변화하는 현대시들을 관찰한 소산입니다.” 이 인용에서 동일성을 규범적 전제로 삼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현대시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려는 탈규범적 확장의 시 비평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김준오가 평생 심혈을 기울인 것은 시 비평과 시론을 아우르는 시학이었다. 시학을 넘어선 장르론에도 선구적이고 독보적인 자취를 남겼는데, 이 장르론도 시에 대한 조명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비평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의 시 비평에서 ‘퍼소나’, ‘시 유형론’, ‘전이’ 등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주제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의 시적 지향을 ‘퍼소나(Persona, 탈)’의 다양한 양상과 관련해 깊이 있게 해석했다. 이는 ‘동일성’의 문제와 연결된다. 자아 동일성의 문제는 시적 자아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관련된다. 실제 시인과 시적 화자의 관계 문제는 문학관의 차이에 따라 인식을 달리한다. 실제 시인과 구분되는 ‘퍼소나’라는 비평 용어를 부각해 실제 자아와 구분되는 허구의 시적 자아를 탐색한 것은 근본적으로 반낭만주의의 몰개성론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모더니즘시학과 포스트모더니즘시학 정립에 힘을 기울였다. <한국 모더니즘의 현 단계>에서는 “사회 역사적 상황을 정면으로 수용하면서 갖가지 형식 해체의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문학을 ‘비판의 기능’에 정립시키고 있는” 198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규명하고, <도시시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정신사적, 사회·역사적, 미학적 문맥들을 포괄하면서 통시적인 변화와 공시적인 다양화로 현대시의 유형론을 살펴본다. <현대시의 패러디화와 이데올로기>는 패러디시에 집중한 평론인데, 패러디시는 김준오의 시 유형론에서 특별히 강조된 유형이다. <서술시의 서사학>에서는 “서술시는 일차적으로 장르 비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분명히 하면서, 서술시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장르 비평을 수행한다.
김준오의 시 비평에서 ‘전이’의 문제 또한 특별한 관심사다. <전이의 시론>은 이 관심사에 집중한 글이다. 그는 전이를 흔히 생각하는 은유와 결합할 뿐만 아니라 환유, 나아가 패러디와도 결합해 해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200자평
시를 대상으로 ‘탈규범적 확장의 비평’을 선보인 김준오. 그의 시학을 엿볼 수 있는 평론 여섯 편을 선별해 실었다. 그는 규범적 체계를 전제하고 역사적 국면에 따라 여기에서 벗어나는 현대시의 다양한 변화 양상에 대하여 이론적이고 실제적으로 접근했다. 이로써 이론 구조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비평문을 쏟아내던 평단 일각의 풍토에 경종을 울렸다.
지은이
김준오는 1937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에는 ≪사상계≫ 편집원을 지냈다. 1975년 <현대시와 영원의 재발견>(≪심상≫)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 <현대시의 현상학적 고찰>로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현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이후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지냈다. 1987년 <한국 근대문학의 장르론에 대한 연구>로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1994년 부산대학교 교무처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1999년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 지병으로 작고했다.
대표 저서로는 ≪시론≫을 들 수 있다. 이 저서는 1982년 문장사에서 제1판이 나온 이래, 1988년 이우출판사에서 제2판, 1991년 삼지원에서 제3판이 나왔다. 1997년 삼지원에서 나온 제4판은 2014년 8월 30일 현재 32쇄를 발행했다. 이외에 저서(비평집)로 ≪가면의 해석학≫(이우출판사, 1985), ≪한국 현대 장르 비평론≫(문학과지성사, 1990), ≪도시시와 해체시≫(1992년, 문학과비평사), ≪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살림, 1997), ≪신동엽≫(건국대학교출판부, 1997)이 있으며, 작고한 뒤 유고집(저서)으로 ≪문학사와 장르≫(문학과지성사, 2000), ≪현대시와 장르 비평≫(문학과지성사, 2009), ≪현대시의 방법론과 모더니티≫(새미, 2009), ≪현대시의 해부≫(새미, 2009)가 있다.
역서로 ≪문학과 시간 형상학≫(심상사, 1979), ≪장르론≫(문장사, 1983)이 있으며, 편저로 ≪김영랑≫(서강대학교출판부, 1997)이 있다. 공저로 ≪한국 문학 연구 입문≫(지식산업사, 1982), ≪한국 현대시사 연구≫(일지사, 1983), ≪한국 현대시 연구≫(민음사, 1989),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현대미학사, 1996), ≪중국 조선족 문학의 전통과 변혁≫(부산대학교출판부, 1997), ≪한국 서술시의 시학≫(태학사, 1998)이 있으며, 유고 공저로 ≪동서시학의 만남과 고전 시론의 현대적 이해≫(새미, 2001)가 있다. 대표 평론으로 이 책에 실린 작품 외에 <탈의 시론 서설>, <시의 형식과 이데올로기>, <시와 서정성, 그리고 신서정> 등이 있다.
1985년 부산시문화상, 1992년 대학민국문학상 평론 부문 우수상, 1997년 제2회 시와시학상 평론상을 수상했다. 2011년 현대시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김준오 평론가가 끼친 시학의 깊이와 그 정신을 기리고 현대시학의 발전을 목적으로 ‘김준오시학상’이 제정되어 2013년 현재 제3회까지 시행되었다.
엮은이
고현철은 1961년 제주도 성산포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조교수로 부임한 이래 부교수를 거쳐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부터 부산대학교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 매체 협동 과정 교수도 같이 맡고 있다. 2011년부터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비평집)에 ≪현대시의 패러디와 장르 이론≫, ≪구체성의 비평≫, ≪현대시의 쟁점과 시각≫, ≪비평의 줏대와 잣대≫,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 시학≫, ≪문학과 영화의 지평과 해석≫, ≪재현과 탈식민주의≫, ≪영화서술학과 영화의 유형학≫이 있다. 편저로 ≪문학과 영상 예술≫, ≪영화 읽기와 문학≫이 있다.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연구≫, ≪한국 서술시의 시학≫, ≪현대문학과 양가성≫, ≪동서 시학의 만남과 고전 시론의 현대적 이해≫, ≪시론≫, ≪시선의 축제와 담론의 향유: 부산국제영화제연구 1≫, ≪세계화와 지역성을 중심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연구 3≫이 있다.
차례
假面의 解釋學−산업사회와 서정 양식
한국 모더니즘의 현 단계−모더니즘과 마르크시즘의 만남
도시시와 포스트모더니즘
현대시의 패러디화와 이데올로기
서술시의 서사학
轉移의 시론
해설
김준오는
엮은이 고현철은
책속으로
한국 현대시사에서 전에 없이 탈에 대한 집중된 관심으로 70년대 이후의 인간상 제시의 시는 ‘탈의 시’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假面의 解釋學>
전이는 인간 사고의 원형이다. 단지 시인의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인 공감각에 의해 시적인 것으로 정립되었을 뿐이다. 이런 전이를 새삼스럽게 강조한 것은 이 글의 모두에서 지적했듯이 현대시가 현저하게 은유 원리에서 환유 원리로, 곧 언어 선택의 강조로부터 언어 배열의 강조로 시 쓰기의 방법론이 변화하고 있는 데서 촉발된 것이다. 이런 현대시의 변화는 문학의 위기, 혼돈, 암중모색, 변혁을 체감하는 90년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크게 은유와 병치로 가시화되는 전이의 시 문법은 문학사의 각 시기마다 다양한 변형들을 낳으면서 전개되는 역사적 국면을 갖는다. 따라서 시인의 방법론적 채용은 시 쓰기의 기반의 변화와 시인 개개인의 독특한 시론의 산물로서 필연성을 갖는 것이다.
―<轉移의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