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최만성(崔晩成)이 창작한 한문 장편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당나라 이공좌의 소설 《남가태수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주인공 순우분이 꿈에 괴안국의 왕녀와 결혼해 20년간 남가군의 태수가 되어 영화를 누렸는데, 그것이 한갓 꿈에 불과했다는 내용으로,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성어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성취 정도나 주제 형상화 측면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남가록》은 구성이 아주 치밀하고 등장인물과 채용된 사건을 포함한 내용이 매우 방대하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품고 있지만, 한 순간의 꿈이 아닌 인물들의 인생 전체와 나라의 운명을 대상으로 훨씬 거시적인 구도에서 전개된다.
《남가록》은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 남가국에 닥친 전쟁의 위기를 사천왕(四天王)의 현신인 최석홍, 황석태, 석천장, 석화주 네 인물의 활약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때문에 군담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여타 고전소설에서 ‘전쟁’은 단지 조정에 도전하는 번국의 침입이나 시위적 성격이 강하며, 중앙에서 파견된 유능한 장수에 의해 일거에 진압되는 싱거운 싸움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이런 소설들에서 전쟁은 단지 주인공의 영웅성을 드러내고 ‘출장입상(出將入相)’이라는 당대인들의 욕망을 성취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수십만의 적군이 쳐들어와도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위기나 사실적인 전투 장면은 그려진 적이 없다.
《남가록》은 다르다. 거시적인 사건으로서의 전쟁 수행 과정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전투에서의 전술과 장수들 사이의 수 싸움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더군다나 남가국과 달달국 사이에서 벌어진 지상의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하계, 즉 지옥에서의 전쟁도 그려진다. 전쟁 그 자체를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전개해 간 ‘전쟁소설’은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남가록》이 유일하다.
《남가록》의 또 다른 특징은 ‘불교’를 배경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소설에서 포교의 목적을 배제한 채 불교를 일관되게 종교적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남가록》이 유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국난이 안정된 뒤, 부처를 독실하게 믿는 남가국 왕은 공자의 초상을 그려 오게 하는 한편 공자가 살았던 마을을 그대로 본떠서 조성한다. 이것은 통치술로서의 유교와 개인 신앙으로서의 불교가 서로 대립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행위다. 역사적으로 불교는 교조적인 유학자들에게 이른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도라고 비난을 받아 왔는데, 《남가록》은 이러한 논란을 전면적으로 반영하면서 전개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비록 인물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여러 인물들이 도교에 입각한 무위의 삶도 중요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공업을 이루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사람들은 산림이나 한적한 곳에 처소를 마련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에 귀의해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조작하려 하지 않는 도교적인 삶에 가깝다. 《남가록》은 고전소설 가운데 유일하게 유불도(儒佛道) 3교의 통합을 가장 이상적으로 형상화해 낸 소설이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공존하고 개인과 정치 속에서 온전하게 통합되는 것이 작가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200자평
18∼19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 장편소설이다.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 남가국에 닥친 전쟁의 위기를 사천왕(四天王)의 현신인 최석홍, 황석태, 석천장, 석화주 네 인물의 활약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방대한 내용과 치밀한 구성, 체계적인 주제 형상화 과정, 5원 세계를 넘나드는 광활한 공간 배경. 우리나라 고전소설사의 압도적인 성취인 《남가록》을 발굴한 조용호 교수가 세련된 번역과 정밀한 주석, 친절한 해설을 통해 소개한다.
지은이
지은이 최만성(崔晩成)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서문에서 객(客)의 입을 빌어 ‘글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글이라는 것은 사실의 손님이기 때문이다. 지금 소설에 풀어 놓은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은 허공에 사다리를 놓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지나고 보면 허황된 말이요 실상이 없는 것이니, 불태워 버리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강력한 비난을 받도록 만들었다. 비록 객이 말한 것으로 처리했지만, 이런 비난은 경(經)과 사(史)를 중시하던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지닌 일반적인 소설관과 맞닿아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매우 의도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허공에 사다리를 놓는다’는 말은 허구를 본질로 하는 소설에 대한 촌철살인의 통찰이다. 이것은 가장 강력한 비난의 말을 뒤집어 소설의 본질과 가치를 설명하겠다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과 소설을 쓰는 일은 겉으로는 허공에 사다리를 놓는 허황된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 진리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경서와 사서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 숨어서 보는 하찮은 글이 아니라, 어떤 글보다도 가치가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인식과 관점을 단지 말로만 주장하지 않고 소설 속에 구현해 냄으로써, 그의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충분히 증명했다. 최만성이 보여 준 진보된 인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작이 지식인들에 의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 자력으로 근대화를 성취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강제로 망국의 길로 접어든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옮긴이
조용호는 1963년에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출생 신고도 1년 가까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용인군 강원도라 불릴 정도로 깡촌에서 태어난 관계로, 한국 나이로 아홉 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태어난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며, 1983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낯선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에 SK 산하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연수장학생 8기로 선발되어, 3년간 사서삼경을 위주로 한문 공부를 했다. 이 일은 이후의 삶의 향방을 크게 결정하게 된다.
고전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에는 고전 시가를 공부해 향가를 해독해 보겠다는 야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2학년 때 이재선 선생님께서 강의하시던 ‘현대소설론’ 시간에 ‘학교 도서관 고서실에 《조씨삼대록》이라는 40권짜리 소설이 있는데 국내 유일본이고 가치가 크지만 아무도 읽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요지의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나밖에 없겠구나’라는 약간의 의무감과 건방진(?) 생각으로 그 소설 읽기에 도전했다. 약 1년간 고서실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정리해 학부 졸업 논문으로 제출했는데, 그것으로 끝내 버리기는 너무나 아까워 좀 더 깊이 분석하고 체계화시켜 석사 학위 논문으로 냈다.
이때쯤 전북대에 계시던 선배인 이종주 선생께 ‘네가 교수가 되고 싶으면 고전 시가로 논문을 쓰는 것이 좋다. 고전 소설을 전공하는 교수들의 연배는 이미 한창때지만, 고전 시가 전공 교수들은 조만간 줄줄이 퇴임을 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기차역을 떠난 기차와 같은 상태이고 온전히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서 어쩔 수 없이 삼대록 소설 읽기를 계속했다. 그 결과로 《유씨삼대록》·《임씨삼대록》·《조씨삼대록》을 분석해, 〈삼대록 소설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과정을 수료한 1993년부터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게 되었으며, 한남대·청주대·서강대·중문의대(현 차의과학대)에서 도합 9년 반 동안 강의를 했다. 시간강사를 하는 동안에는 주로 글쓰기와 읽기 과목을 담당했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 읽기와 쓰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아직도 대학교수는 개인적인 연구보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며,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온전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전공보다 교양을 더 중시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
2002년 9월에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전임으로 임용되어 처음으로 붙박이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국문과에는 고전 문학 전공자가 혼자만 있어서(구비문학 및 민속학 전공자는 따로 있음), 고전 산문·고전 운문·한문학 과목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부담이 되거나 거북하지 않고 성향에 더 맞으며 자유스럽다고 느낀다. 이는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고전 시가에 관심이 많았고, 한문을 공부했으며, 고전 산문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말하자면 목포대학교는 옮긴이에게 ‘득기소재(得其所哉, 딱 알맞은 자리를 얻었구나!)’의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곳인 셈이다.
대학에서는 교양과정부장과 기초교양교육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양 교육을 위한 교육 과정의 개발에 노력했으며, 교양과정부에 교양 교육을 전담하는 교수를 둘 수 있도록 관심을 환기해 철학과 심리학 전공 교수를 뽑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교수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대외적으로는 국립 대학의 위상 제고와 교수들의 권익 향상에 노력했고, 대내적으로는 평교수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학교의 행정이 원활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견제의 기능을 했으며, 총장추천위원장으로서 총장 선거를 중립적이고도 엄정하게 관리했다.
그동안 《삼대록 소설 연구》 외에 단독 및 공저서를 여러 권 냈고, 《19세기 선비의 의주·금강산 기행》·《여영웅》 등의 번역서를 출간했으며, 소설·시가·한문학 등 고전 문학 영역 전반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을 썼다.
차례
서문
남가기화 1
제1회 남가왕이 불당을 크게 일으키고, 석가모니가 비게를 읊어 전하다
제2회 거짓을 희롱하여 참을 이루니 마을 노인이 곧 월노라, 진실 같으며 거짓이 아니니 석씨가 기린을 안아 보내다
제3회 호랑이 같은 장수가 호랑이를 잡을 수 있고, 승냥이가 승냥이를 이해하고 아낀다
제4회 황응은 다리를 놓아 음덕을 닦고, 석태는 마음 가는 대로 옥포에서 놀다
제5회 회심이 바야흐로 발칵 일어나니, 신력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제6회 사내가 불행하게 구리 냄새 나는 세상에 빠지니, 의로운 선비라면 누구라도 보살심을 갖지 않으랴
제7회 최고를 양보한 백수춘은 말없이 달아나고, 세 사람의 익우(益友)를 얻은 황보살은 희망을 펼친다
제8회 법사가 내전에 머무를 때는 부인이 안을 어지럽혔으나, 보위가 동궁에게로 돌아가니 대신들이 충성을 다하다
제9회 넓은 도량을 좁은 도량과 어찌 비교하겠으며, 온 힘으로 법을 따르지 않으니 죽음을 면할쏜가
제10회 작은 여우는 바야흐로 머리를 내주고, 큰 고래는 다시 죄에 연루되다
제11회 장곤은 사사로운 원한으로 나라를 그르치고, 재우는 혈기에 의지해서 화를 불러일으키다
제12회 꽃이 옥천에 떨어지니 꽃이 서로 만나고, 용이 어하에 귀의하니 용이 기쁘게 맞는다
제13회 고립된 성에서 승리를 엮어 내니 어찌 남가국에 사람이 없겠는가, 피를 바르고 다시 바로잡으니 사직을 지키는 신하가 있다
제14회 힘을 다해 싸운 3석은 참된 영웅이요, 지략으로 승리한 장화화 역시 용병에 능하도다
제15회 종일이 기이한 계책을 내어 선봉을 꺾고, 최용이 계산하여 후일을 도모할 것을 생각하다
제16회 김종일은 패배를 돌려 이기는데 오로지 8인의 꾀에 의지하다, 개조지는 거짓 항복의 꾀를 내고 풍류의 형국을 꾸미다
제17회 좀 전에 패배한 병사가 관 위로 달아나는 것을 보았는데, 승리했다는 편지가 암자에서 나오는 것을 금방 또 보네
제18회 선생이 계책을 주니 귀신이 기이함을 보내고, 영웅이 손을 벌리니 천지의 빛깔이 변하다
남가기화 2
제19회 붉은 비단은 옥녀산의 빛을 움직이고, 흰 물결은 양갑성의 성을 두른다
제20회 술책을 쓰기는 진실로 어려우나 깨기는 쉽고, 머리를 들이미는 것은 비록 쉬우나 꺼내기는 어렵다
제21회 홍관장군 이무기를 만나 결연을 맺으니 이가 곧 월노(月老)이고, 망령되게도 스스로 크다고 믿었던 황구 백구는 양처럼 죽임을 당하다
제22회 옥구가 수부에 들어가니 잠긴 용이 하늘로 날고, 종이 연이 갑성에 떨어지니 마른 붕어가 뜻을 얻다
제23회 목마른 곳에서 단 샘이 솟으니 어찌 경공의 기도를 기대했겠는가? 패전한 후에 뜻밖의 변화가 생겨 완연하게 장수의 국면이 되다
제24회 천 가지 백 가지로 기이하게 변신하는 석홍은 가슴에 만 가지 둔갑을 감추었고, 반신반의하는 장화화는 바둑을 한판 두다
제25회 날개가 돋고 입으로 바람을 토하던 날치가 스스로 죽는 것이 우습고, 곤사를 주머니에 감추고 신물을 아울러 가진 것을 기뻐하다
제26회 붉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아침에 결혼하고, 급한 물길에 노를 돌려 저녁에는 갈매기를 희롱하다
제27회 들 까마귀가 도리어 단산의 봉황을 꾸짖는데, 깊은 절구만이 긴 것을 용납할 수 있도다
제28회 향내 나는 풀과 누린내 나는 풀은 같은 그릇에 담을 수 없고, 귀신과 물여우는 서로 악을 돕는다
제29회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도적이 어느 시대에 없었겠는가, 유영의 화진이 진정한 장군이라
제30회 복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으니 오직 나에게 있으며, 속임수로 피할 수 없으니 네가 누구를 속이랴
제31회 이승에서 이미 승패의 계산이 끝났는데, 명부라고 어찌 선악의 판가름이 어긋나리오
제32회 신물이 무사히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고, 기이한 공은 운수에 달려 있으니 감히 요행을 구하겠는가
제33회 비로소 인과응보는 터럭만큼도 어긋나지 않음을 알았으니, 천지가 허물을 용납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아! 나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다. 어려서부터 시서를 배우고 다섯 수레의 책을 두루 읽어 사리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학식이 넓은 것으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머리가 하얘지도록 이룬 것이 없으며 빈궁하고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가 어찌 내가 궁핍해지기를 바랐겠으며, 천지가 어찌 내가 곤궁해지기를 바랐겠는가? 그 곤궁한 이유를 찾아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운명일 것이다.
그래서 달리 꿈나라를 열고 스스로 저자를 만들었다. 조정에 들어와 임금을 바로잡았으니 〈익모(益謨)〉와 〈우모(禹謨)〉가 모두 나의 모(謨)이며, 나라를 경영하고 인민을 구제하니 〈주고(周誥)〉와 〈소고(召誥)〉가 모두 나의 고(誥)이며, 만군을 지휘하니 손무(孫武)와 오기(吳起)가 나이며, 기린각(麒麟閣)에 초상을 그려 걸게 하니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이 나이며, 각건(角巾)과 포의로 산림에 돌아와 눕게 하니 바다로 떠난 범려(范蠡)와 머물 곳을 안 소광(疎廣)이 또한 나다.
붓이 날고 먹이 날며 눈썹이 춤추고 손이 춤추니, 비록 세상에서는 얻지 못했으나 책에서는 풍족하게 얻었다. 그러니 나의 한 편 문자는 괴안국(槐安國) 40년의 풍류에 당할 만하다. 하필 김성탄의 통곡이며, 하필 굴원의 원한이며, 더욱이 장자의 거리낄 것 없음이겠는가?
– 저자 서문 중에서
천장 등은 포위를 뚫고 탈출하고자 했으나, 짙은 안개가 눈을 혼란시켜 방향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신승(神僧)이 하늘에서 한 개의 물건을 던지는 것이었다. 얼른 주워서 보니 다음과 같은 주문 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옴마니반메훔
唵嚒呢叭口爾吽
마음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여겨 입으로 암송하기를 그치지 않고 칼을 휘두르면서 포위를 열고 나아가니 검은 안개가 다 없어져 버리고 하늘이 맑게 빛났다. 세 장수가 좌충우돌하면서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의 적들을 죽여 나가니 달달의 도적들은 넘어지고 달아나며 흩어졌다. 달아나지 못한 자들은 몸통이 쪼개져서 살과 피가 땅을 흥건히 적셨다.
– 제14회 중에서
여기는 고혼국(孤魂國)입니다. 위로는 하늘을 보지 못하고 아래로는 땅을 밟지 못합니다. 양계(陽界)에서도 천 리나 떨어져 있고 음계(陰界)에서도 역시 천 리나 떨어져 있는 중간으로, 영역이 수천 리에 걸쳐 있는데 벌레가 떨어져도 닿을 곳이 없습니다. 세간에서 제멋대로 굴며 떳떳한 도를 어지럽혀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이승에 머물고 싶어도 형체가 없어져 버렸고, 저승에 기탁하고 싶어도 기한이 아직 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이곳에 붙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고혼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제30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