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일본에는 남색(男色)이란 용어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그만큼 남색의 역사가 길 뿐만 아니라, 남색을 일본적 문화의 특성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에서 남색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神功)황후 섭정 원년(201년)의 기록이다. 헤이안시대 후기부터는 불가(佛家)나 무가(武家)에서는 정당한 애욕으로서 용인되었던 경향이 있었고, 에도시대에는 조닌(町人) 사회에서도 행해졌고 사이카쿠의 《남색대감》과 같이 남색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이 다수 등장했다. 따라서 남색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고, 주로 문화와 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색대감(男色大鑑)》(8권 10책)은 1687년 1월에 간행된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의 우키요조시[浮世草子, 덧없고 살기 힘든 이 세상, 세속적이고 향락적인 인간 세상 등을 의미하는 ‘우키요(浮世)’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과 세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품]다. 각 권 5화씩, 총 8권 40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부터 제4권까지의 전반부 20화는 주로 무가(武家) 사회의 남색(男色)을 다루었고, 제5권부터 제8권까지의 후반부 20화는 주로 가부키 연극계의 남색을 다루었다. 사이카쿠의 이전 작품들이 주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호색(好色)을 다루었다고 한다면, 이 작품은 남자와 남자 사이의 남색을 다루었으며, 호색 이야기에서 남색 이야기로 작가의 관심과 작품 주제의 확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와카슈(남색 관계에서 동생 역할을 하는 10대의 미소년)는 때로는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조선 시대의 열녀 못지않은 기개와 정조를 보이기도 하며, 그들이 보여 주는 사랑과 의리, 그리고 인정은 지고지순한 사랑과 정절이 남녀 사이에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상식에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총 8권 40화 중 이번 무사편에는 제1권부터 제4권까지의 전반부 20화를 담았다. 이야기마다 원전의 삽화를 실어 당대의 문화를 시각적으로 살필 수 있다. 부록인 대표 역자 문명재의 논문 <일본 고전으로 본 남색과 지고>는 일본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하여, 남색의 역사와 문화를 통시적으로 고찰했다.
200자평
≪호색일대남≫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하라 사이카쿠가 또 한 번 에도를 뒤흔들었다. ≪남색대감≫은 헤이안시대 후기부터 유행하였고 불가(佛家)나 무가(武家)에서 정당한 애욕으로서 용인되었던 남색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그들이 보여 주는 사랑과 의리, 그리고 인정은, 지고지순한 사랑과 정절이 남녀 사이에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상식에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총 8권 40화 중 이번 무사편에는 제1권부터 제4권까지의 전반부 20화를 담았다. 원전의 삽화 20컷과 대표 역자 문명재의 논문 <일본 고전으로 본 남색과 지고>를 부록으로 실어 독자의 작품 이해를 돕는다.
지은이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는 일본 근세 시대 오사카에서 활약한 문인이다. 1642년경, 현 와카야마현 나카쓰 마을(中津村)에서 태어나 15세에 하이카이(俳諧)의 세계에 뛰어든다.
그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웃음의 요소를 구(句)로 표현하는 단린파(談林派)를 대표하는 하이카이시(俳諧師)로 높이 평가받는다. 사이카쿠는 한정된 시간에 누가 더 많은 홋쿠(発句, 하이카이의 5·7·5 17문자)를 짓는지를 경쟁하는 야카즈 하이카이(矢数俳諧)를 창시하기도 했다. 1682년경부터는 무가(武家)와 서민의 생활 실태를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한 우키요조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며 작가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1693년 9월 9일에 생을 마감했다. 유골은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中央区)에 위치한 세이간사(誓願寺)에 안치되어 있다.
옮긴이
일본고전명저독회는 일본 고전 문학과 명저의 윤독을 통해 일본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다. 구성원은 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또는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동문의 교강사 대학원생이며,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근원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를 지속해 그 결과를 연구자 및 일반 대중과 공유하고자 한다.
차례
서문
권1
제1화 색은 남색과 여색의 경쟁
제2화 이 세계의 기본
제3화 축국장 울타리는 소나무와 단풍나무, 내 님의 허리는 버드나무4
제4화 농어에 넣어서 보낸 편지
제5화 수묵화로 그려진 원망 가득한 겐비시 문양 ·
권2
제1화 당신이 주신 2척 3촌의 검
제2화 우산을 갖고도 젖은 몸
제3화 꿈속의 사카야키
제4화 동쪽 지방의 향목나무 가게 도련님
제5화 눈속의 두견새
권3
제1화 덧씌운 삿갓에 쌓인 원한
제2화 혼내 주려다 죽인 소맷자락의 흰 눈
제3화 중간 와키자시는 타고 남은 연모의 마음
제4화 약도 듣지 않는 상사병 베갯머리 ·
제5화 사랑에 눈먼 것은 황매화 활짝 피었을 때
권4
제1화 연정에 잠긴 앵무조개 술잔
제2화 대신 바치는 목숨은 이름하여 마루소데
제3화 고대하던 것은 3년 만의 목숨
제4화 한결같이 바라보는 늙은 나무의 꽃 피던 시절
제5화 호색 소동은 아소비사의 민폐가 되다
부록 : 일본 고전으로 본 남색과 지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느 때는 흐트러진 채 잠들어 있으면 베개를 고쳐 베어 주시고 내 벌어진 가슴을 속에 입은 흰 고소데(小袖)로 가려 주셨다. 또 바람이 불면 감기라도 걸릴세라 걱정하시는 마음 씀씀이가 꿈결에서도 느껴져 분에 넘치는 사랑이 두렵기도 했다. 잠에서 깨면 “우리 둘 말고는 듣는 이도 없다” 하시며 집안의 대사, 큰 도련님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은 일들까지 들려주셨다. 또한 서로가 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말자시며 내 옆얼굴에 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사마귀까지도 신경이 쓰이신다며 손수 솔잎 바늘로 떼어 주셨다. 이래저래 감사한 일만 가득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 은혜, 지금이라도 영주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상이 금지한 일인 걸 알지만 주인님을 따라 깨끗이 죽으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때 입을 수의로 무늬 없는 가미시모(上下)와 자결할 때 쓸 단도를 마련해 두고 유서와 함께 이미 내 혼은 서찰함에 봉해 두었으니, 이 일을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 꽃다운 자태 지금이 절정이라 조금은 자만했는데 분하구나. 지난달 초순부터 지가와 모리노조(千川森之丞)에게 주인님의 마음이 옮겨 가시니, 세상만사 믿을 게 없어 늦가을 비 내리는 10월 3일에 자결하리라 마음먹었다.
-79~80쪽
오미(近江) 지방 쓰쿠마(筑摩)의 마쓰리를 보니, 그 마을의 미녀로서 이혼당한 여자나 또는 남편과 사별한 여자 또는 내연관계가 들통 난 여자들에게, 관계한 남자의 수만큼 냄비를 뒤집어쓰고 행렬을 지어 걷게 하는 것이었다. 모습도 곱고 얼굴도 어여쁜 나이 찬 여인이 냄비 하나를 뒤집어쓰고 그마저도 부끄러워하는가 하면,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아 후리소데를 입은 여자가 이도 검게 물들이지 않고 눈썹도 밀지 않았는데 큰 냄비를 일곱 개나 겹쳐 쓴 채 머리가 무거워 비틀비틀 걸어가고 그 뒤를 모친이 딸의 무거운 냄비들을 손으로 받쳐 주며 손주들을 업고 안고 또 한 아이는 손을 잡아 이끌며 걷는 경우도 있다.
-145~146쪽
다이묘가 총애하던 소년이 자라서 처자식이 생긴 뒤에도, 다이묘께서 왠지 모르게 남색 연인 시절을 잊지 않으시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남색은 여색과는 각별히 다른 색이다. 여자는 일시적이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요염함은 남색의 도를 깨닫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들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의 풍속’이라고 여겨, 시내에 살면서도 동쪽의 이웃과는 불씨도 교환하지 않았다. 어쩌다 시작된 부부싸움에 냄비나 솥을 부수더라도 “본인들 손해일 뿐”이라며 중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벽 너머에서 거들면서 “주인장, 때려죽이고 소년을 들이시오”라며 이를 가는 것도 우스꽝스러웠다.
-245~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