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네기달인은 아무르 연안의 퉁구스계 토착 소수민족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아무르 연안의 암군강에 정착했고, 상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과 하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의 문화, 생활 방식, 생업 등이 서로 다르다. 하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은 어획을, 상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은 주로 사냥을 해 왔다. 이동 수단도 하류 네기달인은 개를 이용한 데 반해, 상류 네기달인의 이동 수단은 사슴이다. 이들은 주변의 예벤키인, 나나이인, 니브흐인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특히 예벤키인과 주거, 문화, 생활 양식 등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
대부분의 시베리아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네기달인의 토착 신앙 또한 지하, 지상, 천상의 세 세계의 존재를 근간으로 하는 정령 숭배와 샤머니즘이다. 고대 네기달인은 만물의 정령인 스벤(свен)과 사악한 정령인 암반(Амбан)이 있고,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샤먼이라 믿었다. 하늘, 타이가, 물, 불의 주인신이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관장하며, 하늘의 주인신은 사냥을, 물의 신은 어획을 책임진다고 믿었다. 네기달인은 사냥과 어획을 떠나기 전 이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 화살로 곰을 죽인 후 고기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분해하고 뼈를 버리지 않고 모아서 특정한 곳에 묻는 의식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네기달인의 곰 숭배 전통을 알 수 있다.
네기달인의 이야기들은 성씨의 유래와 과거 조상들의 삶을 구술하는 역사 전설, 민담, 구비 민요, 수수께끼, 어획할 때 부르던 노래 등을 전한다. 이 책에 실린 설화 32편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네기달인의 뿌리와 삶의 흔적, 신앙, 풍속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이경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비노그라도프대학원에서 의미통사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어휘ᐨ통사 층위에 나타나는 언어문화적 변이>, <담화연결어의 의미와 기능>, <언어적 세계상에서의 놀이와 도박> 등이 있으며, 저역서로 ≪도박하는 인간≫(공저),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공역), ≪북아시아 설화집 5(알타이족)≫, ≪셀쿠프인 이야기≫, ≪토팔라르인 이야기≫, ≪시베리아 타타르인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메헤길에서 유래한 아윰칸
축차길 성씨의 유래
우단칸산
호랑이
세 길
부유한 신부 칼마그다
하늘의 사람
개구리
쿠이예미
장대 귀신
교활한 사람과 힘센 사람
입찬
까마귀와 매
거북이
늑대로 변한 다섯 여자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
세 태양
달과 소녀
곰을 낳은 여자
세한에서 있었던 이야기
호랑이와 남자
청년과 골뱅이 아내
탑칼 씨족과 힘구
힘구의 거처
날아가 버린 아이
고아와 개
지하 세계 이야기
소그됴콘
푸딘과 개구리
날다람쥐
친데케와 여우
네얍칸과 여우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 돼지의 임자는 나야. 내가 꾀를 내서 너에게 돼지를 잡아 오라고 했으니까.”
힘센 사람이 말했다.
“돼지를 훔쳐 온 내가 돼지의 임자야.”
그러자 교활한 사람이 말했다.
“제단에 가서 물어보자. 우리 중 누가 돼지의 임자인지 하늘에 계신 신이 알려 줄 거야.”
힘센 사람은 화가 나 집으로 갔다. 그런데 교활한 사람은 제단으로 가서 나무 밑에 불을 피우고 죽을 끓였다. 그런 다음 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고 어머니를 묻었다. 구덩이에 묻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게 이 돼지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말하면 교활한 사람이라고 말하세요.”
그때 힘센 사람이 왔다. 교활한 사람이 힘센 사람에게 말했다.
“하늘에게 물어보자. 하늘이 우리 중 누가 돼지의 임자인지 알려 줄 거야.”
“하늘이시여! 우리 둘 중 누가 돼지 임자인지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나무뿌리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교활한 사람이 돼지 임자다!”
-<교활한 사람과 힘센 사람>, 5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