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돌쇠는 댐 건설과 함께 곧 수몰될 동네에 살고 있는 소작농이다. 동네 사람들과 며느리는 살터를 잃을까 걱정하지만 돌쇠는 주인어른이 땅을 주겠다고 한 약속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뜰히 곡식을 가꾸는 것이 농사꾼의 소임이라 생각하며 일손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은 돌쇠 모르게 며느리를 탐하고 자기 이익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약속을 파기한다. 어느 날 돌산에 올라갔던 돌쇠의 손녀 점순이 공사 중에 터진 남포 파편에 맞아 죽는다. 뜻밖에도 남포는 댐 공사가 아니라 돌쇠에게 주기로 한 땅에 주인이 별장을 짓기 위해 터뜨린 것이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리지만 돌쇠는 동요하지 않고 새로운 농토를 일구겠다는 결심을 다질 뿐이다.
돌쇠의 처지는 선대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할아버지 덤쇠는 동학농민운동 때 땅을 줄 테니 도와 달라는 더큰어른의 목숨을 구한다. 이후 더큰어른은 괜한 트집을 잡아 오히려 덤쇠를 괴롭힌다. 그는 주인집 아들을 대신해 두 아들을 전쟁터에 보냈다가 아들 하나를 잃기도 한다. 이때 살아남은 한쇠 역시 소작농이 된다. 한쇠는 해방 직후 친일파로 몰린 큰어른을 도와 주지만 경찰 제복을 입고 나타난 큰어른은 자신을 밀고했다는 누명을 씌워 그에게 준 땅을 도로 빼앗는다. 돌쇠는 6·25가 터지자 어른을 대신해 군대도 가고 빈집도 지켰지만, 역시 약속한 땅은 받지 못한다. 일제시대, 해방, 전쟁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스러져 간 약자들의 모습이 덤쇠와 한쇠의 과거사를 통해 그려진다. 돌쇠 삼대는 결국 내 것이라 할 만한 땅 한 평도 갖지 못하고 지주에 맞서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한편 이런 삶이 싫어 도시로 떠난 손주들마저 몸과 마음에 상처만 입는다는 설정은 근대화를 모토로 등장한 새로운 시대에도 선대의 고통이 대물림됨을 드러낸다.
1981년 극단 에저또가 방태수 연출로 초연했다. 제5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작품상과 연기상, 18회 동아연극상 희곡상, 제4회 서울극평가그룹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1982년 제18회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에서 단체 대상, 작품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삼대째 소작농 신분을 이어 오고 있는 돌쇠의 삶을 통해 지주의 횡포와 무너져 가는 농촌의 모습을 예리하게 묘사한 장막 희곡이다. 풍부한 충청도 방언 표현으로 순박하고 우직한 돌쇠의 성격을 부각하고 농촌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간간히 남포 소리를 삽입해 마을을 수몰시킬 댐 공사가 진행 중임을 상기하며 동네 사람들의 불안과 스러져 가는 농촌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다.
지은이
윤조병은 1939년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중·고교 교사를 지내다가 1963년 월간 ≪국제영화≫ 시나리오 공모에 <휴전 일기>가 입선, 1967년 국립극장 장막 희곡 공모에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당선하면서 본격적으로 극작을 시작했다. 농촌, 탄광촌 등 도시화에서 밀려난 곳을 재조명한 다수의 작품을 통해 날카로운 역사의식과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심층적인 인물 심리 묘사를 위한 상징적인 장면을 다수 삽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는 <참새와 기관차>(1971), <농토(The Land)>(1981), <모닥불 아침 이슬>(1984), <풍금 소리>(1985)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Ⅰ
Ⅱ
Ⅲ-1
Ⅲ-2
<농토(The Land)>는
윤조병은
책속으로
돌쇠: 음지 땅 소작농이믄 워쩌구, 양지 땅 자작농이믄 워쩌어. (사이) 내가 아는 게 농사일이구, 조상 대대루 샛강, 한내, 지렁내서 정을 붙여 왔는디 워디루 가겄어. 색깔루 땅을 알어두 예구, 청개구리 소리허구 참새 깃털루 날씨를 알어두 예구, 뜸부기 소리허구 베가 자란 치수루 절기를 알어두 예여. (사이) 안 갈겨? (사이) 땅이 화내믄 겉잡지 못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