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풍부한 주석과 처음 공개되는 사진
이 책은 1962년 출간된 <백 년 한(百年恨)>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1968년 민갑완이 71세로 작고하기까지의 근황을 취재하여 보완했다. 민갑완은 1958년 이후 연이은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서 그런지 <백 년 한>에서도 이 시기의 삶은 아주 짧게 언급하고 만다.
상하이시절 민갑완의 사진과 장례식 사진이 조카 민병휘씨의 제공으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민갑완이 상하이 시절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검은 옷을 주로 입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민갑완이 <백 년 한>을 처음 출간했을 때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한 탓인지 여기 저기 많은 오류가 발견된다. 이 책은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문일웅 씨가 풍부한 주석을 달아 <백 년 한>의 많은 오류를 바로 잡았다.
일본인 오구리 아키라가 발굴한 상하이 사진
민갑완의 <백 년 한>을 읽고 감동하여 한국어까지 배워가며 일본어 번역 출간을 준비해온 오구리 아키라(국제문화포럼 사무국장 역임)가 상하이대학교 도서관에서 발굴한 1920년대 사진이 공개된다. 오구리 아키라는 자비를 들여 민갑완이 살았던 상하이 일대를 여러 차례 답사했다. 이 과정에서 1925년에 발간된 암마시스쿨 연보를 상하이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굴하는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이밖에 유원로, 보유리 공원, 남경로, 자오저우로 등 민갑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모은 자료 사진도 함께 공개된다.
200자평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의 정혼녀였던 민갑완의 회고록. 민갑완은 구한말 주영공사를 지낸 민영돈의 장녀로, 열한 살 때 세자비로 간택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파혼당하고 평생을 수절한 비운의 여인이다. 한번 간택되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왕실의 법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결혼시켜 영친왕과의 연을 끊으려는 일제의 집요한 공작을 견디다 못해 상하이로 망명한 민갑완은 외로운 이국땅에서 고독과 고통의 세월을 보낸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김규식 박사가 독립운동을 권유했지만 결혼하지 않고 평생 절개를 지키는 것을 일종의 독립운동으로 여기고 자신을 지킨 운명의 여인 민갑완. 영친왕, 마사코(이방자) 공주와 함께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지은이
구한말 동래부사와 주영공사를 지낸 민영돈의 장녀로 189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활달하고 총명해 열한 살 때 영친왕 이은의 비로 ‘간택’되었다. 1907년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후 10년간 귀국을 기다렸으나, 영친왕은 결국 일본의 마사코(이방자)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강제 파혼당한다. 일제에 의한 강제 파혼의 충격으로 할머니에 이어 아버지가 급사하고 온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한번 간택되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왕실의 법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결혼을 시켜 영친왕과의 연을 끊으려는 일제의 집요한 공작을 견디다 못해 상하이로 망명, 고독과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상하이 시절 임시정부의 김규식 박사가 독립운동을 권유했지만 “나 하나의 희생으로 만사가 평온하기를 바랄 뿐”이라며 거절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일종의 독립운동이요, 자신을 지키는 일로 여기며 평생 절개를 지켰다. 1945년 해방 후 귀국, 사업에 손을 댔으나 실패하고 빈곤한 삶을 살다가 1968년 3월 후두암으로 71세의 생을 마감했다.
차례
머리말: 이 책을 내는 심정
서시 1
난봉, 자신이 있나? 3
병판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22
세자비에 뽑히던 날 32
동짓달 스무날의 약혼지환 51
기막힌 서약서 59
의혹의 구름이 삼천리 강산에 78
망망대해의 두 남매 104
천행이를 살린 이상한 약 132
수수께끼와 같은 날들 140
학교도 집도 쫓겨나고 155
상하이의 유혹 178
치꾸꾸의 슬픔 196
가슴을 파고든 망짱뉴의 노래 206
냐냥은 왜 신랑이 안 계시냐? 227
양쯔강의 눈물 239
외로운 귀국 248
그 규수가 살아 있다 265
맺음말 ‘백 년 한’ 그 후 이야기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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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2014년 7월 21일자